지난번 블로그에서 부킷티마 자연보호 구역(Bukit Timah Nature Reserve)에 있는 부킷티마 힐의 하이킹 코스를 다룬 적이 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부킷티마 자연보호 구역에 대한 이해와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서밋(Summit)을 보고 와도 좋을 듯하다)
[싱가포르] 부킷티마힐을 품은 부킷티마 자연보호구역(Bukit Timah Nature Reserve) ①
싱가포르는 1960년대부터 친환경도시 개발정책이라는 한 가지 방향성을 지금까지 견지하며, 자연 속 도시, 도시 속 자연이라는 이상적인 도시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초기 정책에서의 슬로건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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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킷티마 힐(Bukit Timah Hill) 트레킹의 출발점인 부킷티마 탐방센터 주차장은 힌헤드 자연공원(Hindhede Nature Park)의 입구와도 맞닿아 있다. 이곳은 폐채석장이 공원으로 변모한 곳인데, 비슷한 사례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부킷티마 자연보호구역(Bukit Timah Nature Reserve)이 품고 있는 특별한 '채석장(Quarry)'인 힌헤드 채석장(Hindhede Quarry)과 싱가포르 채석장(Singapore Quarry)을 소개하려 한다. 과거 화강암과 모래를 채취하던 거친 채석장이 지금처럼 울창한 자연보호구역이자 시민들의 공원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은, 싱가포르 정부의 지속 가능한 도시 계획인 '자연 속 도시(City in Nature)' 비전 덕분이다. 인간이 파괴했던 자연을 다시 인간의 손으로 아름답게 되살려낸 대표적인 생태계 재생 성공 사례를 만나보자.
싱가포르의 채석장(Quarry) 이야기
싱가포르는 국토개발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 자체적인 건설 자재가 필요했는데, 특히 화강암은 도로포장, 주택건설, 항만 매립 등의 핵심 자재로 사용되었다. 2차 세계대전 전 후로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폭파 공법이 도입되면서 채석 사업은 점차 발전하게 되었다. 싱가포르에서도 건설업에 사용할 화강암 조각(골재)을 채취하기 위해 다이너마이트 폭약으로 거대한 암반을 폭파시키고 돌을 쪼개고 고르는 채석사업이 발전했다. 채석활동의 전성기는 1970년대로 싱가포르 전역에 25개의 화강암 채석장이 있었고, 약 1,200명의 노동자가 동원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걸쳐 환경 파괴 문제가 지속되면서, 싱가포르 정부는 자연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채석 활동을 단계적으로 축소했다. 현재는 싱가포르 본섬 내의 상업적 화강암 채석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건설 등에 필요한 골재는 현재 전량 수입하거나 재활용 자재로 조달하고 있다.

부킷티마 자연보호 구역(Bukit Timah Nature Reserve)에 위치한 채석장으로는 힌헤드 채석장(Hindhede Quarry), 싱가포르 채석장(Singapore Quarry), 데리 팜 채석장(Dairy Farm Quarry)이 있다. 힌헤드 채석장과 싱가포르 채석장은 채석이 중단된 후 깊은 웅덩이에 물이 차오르며 아름다운 호수가 되었고, 데리 팜 채석장은 흙과 돌로 매립해서 거친 지형을 활용한 산악자전거(MTB) 코스와 암벽 등반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1993년에 촬영된 위의 항공사진을 통해서도 각 채석장 주변이 숲으로 상당히 복원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폐채석장들은 현재 각각 힌데드 자연공원(Hindhede Nature Park)과 데리 팜 공원(Dairy Farm Quarry)에 편입되어 시민과 자연이 공존하는 친생태적 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하였다.
부킷티마 자연보호 구역 내의 채석장 이외에도 가까운 부킷바톡 타운공원(Bukit Batok Town Park), 부킷바톡 자연공원(Bukit Batok Nature Park)의 채석장, 풀라우 우빈(Pulau Ubin)에 있는 채석장들이 있는데, 이젠 모두 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남아있다. 다음 기회에 이곳들도 방문해 보도록 하겠다.
힌데드 자연공원(Hindhede Nature Park)과 힌데드 채석장(Hindhede Quarry)
힌데드 채석장(Hindhede Quarry)은 이곳을 운영한 덴마크 출신 사업가 옌스 힌헤드(Jens Hindhede)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00년대 초반에 채굴을 시작하여 198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었고, 그때까지 굴착되며 만들어진 구덩이는 깊이가 해수면 기준 18m, 표면적은 30,500m²에 달했다. 이 구덩이는 빗물이나 지표면에서 흘러온 유출수가 계속해서 채워지면서, 점차 거대한 내륙 호수로 변해갔다. 화강암을 채굴하던 채석장에 물이 빠지지 않고 그대로 고이게 된 이유는 화성암의 일종인 화강암의 불침투성의 성질 때문이다. 채석장의 작업이 중단된 고여있던 물의 수위가 계속 올라가면서 인공 배수시설을 통해 수량을 조절하게 되었다.

싱가포르 국립공원위원회(NParks)는 채석장이 만들어 놓은 호수까지 경사가 완만한 데크를 잇고 전망대크(Lookput Point)를 만들어 안전하게 호수와 채석장의 절벽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해서 '힌헤드 자연공원(Hindhede Nature Park)'이라는 이름으로 2001년 8월 17일 공식개장했다. 사실 20년이 조금 넘은 현시점에서 파괴된 폐채석장이 완전히 복원된 깊은 숲을 이루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부킷티마 힐을 오르기 위해 차를 세웠던 부킷티마 탐방센터 앞 주차장은 힌헤드 자연공원(Hindhede Nature Park)의 입구이기도 하다. 경사가 완만한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무성한 숲 길이 나오고, 산책하 듯 몇 분 안 가면 바로 전망대(Lookout Point)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전망대(Lookput Point)까지의 짧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가는 길은 변화무쌍하다. 숲길을 걷다가 계단을 올라가고 데크로 만든 다리를 지나다가 꿈틀이듯 땅 표면에 노출된 나무뿌리를 보는 여정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화분에서만 보던 관음죽이 거대한 숲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라면서...


산길(Trail)을 따라가다 보면, 숲 일대에서 나무가 잘려 나가거나 밑동만 남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싱가포르 국립공원위원회(NParks)의 철저한 안전관리와 생태계 복원사업과 관련이 있다. 왼쪽은 외래 침입종으로 알려진 알비지아(Albizia, Falcataria moluccana)라는 나무로 키가 아주 크고 웅장하고 빨리 자라지만, 목질이 연하고 약해 쉽게 부러지거나 통째로 쓰러지는 특성이 있다. 탐방객의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자생 식물이 자랄 공간과 햇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외래종 나무를 베어내고 있다. 오른쪽 나무는 싱가포르 토종 고목으로 보존 가치가 높지만, 폭우로 인해 지반이 약해져 쓰러질 징후가 보이는 나무들은 정밀 진단을 거쳐 불가피하게 선제적으로 벌목을 하기도 한다.

전망대(Lookout Point)에 도착했다. 싱가포르의 공원에는 갑자기 쏟아지는 큰 비(스콜)와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마련해 놓았다. 목재로 평평하게 만든 넓은 데크를 따라가면 정자 너머에 튼튼한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난간 너머로 거대한 호수와 수직으로 솟은 화강암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울창한 열대 우림의 캐노피 아래를 거닐다 마주한 이 탁 트인 풍경은, 마음에 깊은 평온과 벅찬 설렘을 동시에 안겨준다. 위에 보이는 높은 철탑 세 개는 지난번 부킷티마 힐(Bukit Timah Hill) 트래킹에서 갔던 곳으로 그곳에서 이 호수를 내려다본 기억이 났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어 파란색이 물이구나... 정도만 느낄 수 있었다. 텔레콤 타워도 그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전체의 모습을 알 수 없었다. 전체를 이해하려면 물러설 공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만 비로소 진정한 형태와 마주하게 된다.


이 전망대에서 호수 전체를 조망하기란 쉽지 않다. 우거진 나무들이 연신 시야를 가로막는 탓이다. 저 절벽 끝에 서면 호수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질 것 같지만, 절벽 위를 빽빽하게 메운 나무들 역시 조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곳은 그 어떤 장소에서도 온전한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 아름다움 속에 깊이 스며들게 만든다.

호수에 비친 구름은 잔물결을 따라 조금씩 이지러지고, 물속 깊이 침잠한 나무뿌리는 그 구름과 묘하게 엉켜 있다. 오른쪽 상단에서 선묘화처럼 사선으로 내려온 세 개의 구조물은 마치 텔레콤 타워를 가볍게 그려낸 크로키를 닮았다. 거울처럼 맑은 수면이 잔잔한 물결을 이용해 자연을 어떤 화폭으로 담아내고 있는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깊은 상념에 잠기게 된다.
호수를 뒤로 하고, 다른 길을 선택해 돌아가려고 한다. 풀라이 헛(Palai Hut)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데, 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집라인, 소그룹 모임 공간, 놀이터, 심지어는 발지압을 위한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




한편에는 발바닥의 어느 부위를 자극해야 어떤 효과가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둔 안내판도 있다. 발바닥을 세세하게 나누어 우리 몸의 장기들과 연결해 놓은 그림이 있다. 하지만 맨발로 걸으면서 지압점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다 보면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것이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편안하게 걷는 게 최고가 아닐까. 자칫 무리하게 지압을 의식하며 걷다가 발을 다치거나 더 아파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여기 있는 쉼터(정자)의 이름은 모두 이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 이름이다. 풀라이(Pulai)는 싱가포르 자생종으로 키가 최대 40m까지 자라는 우산같이 생긴 나무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하루(Gaharu)는 한국어로 침향(沈香) 나무이다. 와린진(Waringin)은 벤자민 고무나무 계열의 대형 나무다.
싱가포르에 있는 자연공원은 자연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패널을 곳곳에 설치하기도 하고, 표지판도 특색 있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동행자는 안내판을 보며 투덜거렸다.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인데, 공무원 캐릭터가 너무 환하게 웃고 있다는 이유였다. 들여다보니 정말 그랬다. 안내판 속 공무원의 얼굴은 조금 더 근엄하게 고쳐야 할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사소한 것도 트집 잡는 버릇이 생기는 모양이다.

부킷티마 자연보호 구역 탐방센터(Bukit Timah Nature Reserve Visitor Centre)로 돌아오며 힌헤드 자연공원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곳은 접근성이 훌륭해 지역 주민들에게 든든한 휴식처이자 동네 공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공간이다.
데리 팜 자연공원(Dairy Farm Nature Park)과 싱가포르 채석장(Singapore Quarry)
데리 팜 자연공원은 과거 낙농장이 있었던 역사적인 부지다. 1930년 콜드 스토리지(Cold Storage)의 전무이사 프레드 헤런(Fred Heron)이 열대 기후의 한계를 극복하고 네덜란드와 호주산 프리시안(Friesian) 젖소 사육에 성공하며 낙농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까지 이어졌던 이 낙농장의 유산은 오늘날 '데리 팜 로드(Dairy Farm Road)'라는 도로명과 공원, 그리고 내부 채석장의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아 전해진다. 한편, 데어리 팜 자연공원은 힌헤드 자연공원(Hindhede Nature Park)이 문을 연 지 8년 뒤인 2009년에 대중에게 공식 개방되었다.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공원 입구로 향하기 전 지난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 진입로와 레일 몰(Rail Mall)을 차례로 지나쳤다. 이곳 데리 팜 자연공원은 싱가포르 채석장(Singapore Quarry)뿐만 아니라 '월리스 트레일(Wallace Trail)'로도 무척 유명한 곳이다. 게다가 부킷티마 힐(Bukit Timah Hill) 정상(Summit)으로 향하는 몇 개의 코스가 이 공원에서 시작된다. (이 코스들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

오늘은 주차장 A 진입로에서 출발해, 평탄하게 닦인 아스팔트 산책로를 따라 싱가포르 채석장(Singapore Quarry)으로 향하기로 했다. 산책로와 월리스 트레일(Wallace Trail)이 교차하는 초입에는 커다란 화강암 바위 두 개가 웅장하게 서 있다. 과거 화강암 채석장이었던 이곳의 역사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 같기도 하고, 이제부터 인간의 도심을 벗어나 신비로운 대자연의 공간으로 들어선다는 시각적인 경계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넓고 평탄하게 잘 닦여 있어서, 발밑 대신 주변 풍경을 더 깊이 눈에 담을 여유가 생긴다. 사진 속에서는 나무의 크기가 온전히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저 멀리 점처럼 작게 걸어오는 사람들과 대비해 보면, 이 숲이 가진 압도적인 규모와 깊이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푸른 녹음 사이에서 홀로 잎을 모두 떨어뜨린 나무를 보았다. 열대지방에서도 수분 증발을 막거나, 화려한 개화를 위해 에너지를 집중하느라 낙엽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나무가 홀로 '가을'을 지나고 있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빈 가지와 쌓인 낙엽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괜히 쓸쓸해진다. 이 모습이 병으로 아파하는 과정이 아닌, 자연의 순리에 따른 나무의 현명한 생존 전략이기를 바란다.

채석장 이름이 싱가포르(Singapore)라는 게 조금 어색했다. 채석장의 오너 이름이나, 지명이 아닌 싱가포르라니? 원래 이 채석장은 치아엥사이(Chia Eng Say) 채석장으로 불렸다고 한다. 치아엥사이(Chia Eng Say)는 중국 푸젠성(福建省) 출신의 사업가로 1930년대에 부킷티마 능선 중서부 지역의 화강암 채굴권을 획득하고, 채석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세운 채석 회사 이름이 싱가포르 채석회사(Singapore Quarry Co. Pte. Ltd)였기에, 그가 사망한 후 '싱가포르 채석장(Singapore Quarry)라고 불리게 되었다.

채석장 입구 난간에는 벤자민 리(Benjamin Lee)의 시가 적혀있다. 이 시는 과거 인간의 채굴로 상처 입은 이곳이 이젠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동식물이 살아가는 '습지'로 변모한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도시개발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 조국의 이름을 딴 채석장,
1946년 당시 나의 별명은 '치아엥사이(Chia Eng Say)'였네.
광산 채굴은 내가 슬퍼 마지않는 흉터를 남겼고,
호랑이가 거닐던 부킷티마를 깎아내렸지.
한때 농장들이 번성했던 인근의 풍경은,
이제 하나만 빼고 모두 사라져 버렸네.
하지만 분명히 변화할 가치가 있는 곳이었으니,
소외양간(축사)에서 배움의 공간(월리스 교육 센터)으로 거듭났고,
수많은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내 곁을 질주하거나,
길고 굽이진 길을 따라 하이킹을 즐긴다네.
대피소 하나 보이지 않던 곳에,
이제는 그대들이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생겼구려.
누군가는 내 절벽을 기어오르려 했으나,
낙석의 위험으로 안전하지 않게 되었지.
그렇다고 걱정 마시라, 여전히 볼거리는 가득하니.
하늘을 활공하는 맹조류와 우뚝 솟은 나무들,
잠자리, 갈대, 그리고 논병아리들이 내가 복원한 습지를 가득 채우고 있네.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관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나처럼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곳은 이제 사라져 가는 부류이겠지,
도시 개발의 유혹이 다가올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이너마이트가 만든 화강암 절벽과 자연적으로 산화된 화강암 속 광물이 붉고 노란 색채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빽빽하게 자란 열대우림 나무와 덕굴 식물들이 이곳을 다시 아름다운 자연으로 되돌려 놓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수면에 번지는 투명한 파문이 참 아름다웠다. 물가에 자란 가늘고 푸른 부들 줄기 사이에 붉은 강아지풀 같은 것이 보인다. 초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 붉은빛은 단연 시선을 끌었다. 얼핏 보고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름 아닌 왕우렁이의 알이었다. 수중 천적들을 피해 물 밖에 알을 낳은 생존 전략이었다. 독성이 있어 절대 만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찾아보니, 신비롭던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묘한 거부감이 들었다. 이곳 싱가포르에서도 생태계를 위협하는 악성 외래 침입종으로 관리 대상이라 하니, 자연스레 몸이 먼저 멀어졌다.

비는 금세 그치고, 우리는 잘란 아사스(Jalan Asas)라는 길로 나가기로 했다. 잘란(Jalan)은 말레이어로 '길'이라는 뜻이니 길 이름이 '아사스'라고 하는 게 맞긴 하다. 이 길은 레일몰(Rail Mall) 뒷길과 이어지는 곳으로 싱가포르 채석장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소박하고 정감 어린 주택들이 이어지는 뒷길, 숲과 경계를 이룬 어느 집 뒷마당에는 토지신(土地公)이 모셔져 있다.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토지신은 이 마을은 관할하고 보호할 뿐 아니라, 손에 중국의 옛 금괴인 원보(元寶)를 들고 있어 재물운과 번창까지 가져다준다고 믿어진다.
트레킹의 끝자락에 이처럼 귀여운(?) 토지신을 만나니 절로 기분이 좋다. 싱가포르에서는 오래된 주택가 골목길이나 나무 아래에 이처럼 작은 감실을 만들고 토지신을 모셔둔 풍경을 종종 마주치게 된다. 과거 이 거친 땅에서 땀 흘려 일했던 이들의 무사안녕과 번역을 묵묵히 지켜준 골목길의 수호신. 그 오랜 정성이 오늘 나에게도 행복과 행운을 나누어 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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