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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깊게 읽기

[싱가포르] 최초의 저수지, 맥리치(MacRitchie Reservoir) 수변 산책로

by 조타 2026. 6. 22.

싱가포르에 와서 하이킹을 다녀왔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맥리치 트리탑워크에 다녀왔어요?"라고 묻곤 한다. 그만큼 싱가포르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큰 사랑을 받는 곳이 바로 맥리치 저수지(MacRitchie Reservoir)가 위치한 센트럴 캐치먼트 자연보호구역(Central Catchment Nature Reserve)이다.  싱가포르 최초의 인공 저수지인 맥리치 저수지(MacRitchie Reservoir)는 주변을 따라 멋진 트레킹 코스가 잘 조성되어 있어 누구나 반할 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참고로 지난번에 소개해 드린 '피어스 저수지(Peirce Reservoir)' 역시 이 보호구역 북쪽에 위치해 있으니, 함께 둘러보실 분들은 아래 블로그 글을 읽어 보시길 바란다.

 

 

[싱가포르] 피어스 저수지(Peirce Reservoir)에서의 잔잔한 산책

피어스 저수지(Peirce Reservoir)를 감싸고 있는 울창한 정글 숲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센트럴 캐치먼트 자연보호구역(Central Catchment Nature Reserve)에 속해 있다. 싱가포르 섬 전체지

booksharp.tistory.com

 

싱가포르는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라 곳곳에 수많은 저수지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싱가포르 국립 수자원청(PUB, Public Utilities Board)이 수자원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수도부터 하수처리, 배수까지 수자원의 전체  라이프 사이클을 통합관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환경부 산하 한국수자원공사(K-water)한국환경공단이 상수도와 하수도를 각각 나누어 담당하지만, 싱가포르는 정부기관인 PUB가 모든 과정을 일괄 챌임지고 있다.  본격적으로 맥리치 저수지를 산책하기에 앞서, 싱가포르 PUB의 스마트한 물 공급 현황을 살펴보고,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최초의 저수지 맥리치(MacRitchie)의 이야기와 수변 산책의 매력을 함께 즐겨보도록 하겠다.

 

물 부족 국가 싱가포르의 물 자립을 위한 노력

 

본래 영토가 좁고 큰 강이 없는 싱가포르는 빗물을 가둘만한 자연 지형이 부족했다. 이때문에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고질적인 물 부족에 시달렸다. 영국 통치 첫 해, 포트캐닝 기슭에 작은 저수지와 상수도 시설이 마련되었으나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주민들은 우물이나 개울물로 버텨야 했다. 심한 가뭄이 찾아올 때면 2시간만 물을 제공하는 제한 급수까지 시행되었지만, 영국 정부의 대책은 늘 사후 처방에 머물렀다. 아래의 글은 가뭄이 극심했던 1877년 <스트레이츠 타임즈(The Straits Times)>에 실린 익명의 시다. 완공되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저수지를 바라보는 당시 주민들의 답답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Address to the Waterworks Reservoir

Hail new created Lake, that shines
Brighter than ever the Chindrass Mines
In the tongue, or the brains of Fisher,
We’re waiting aweary to have you down
To cleanse, and refresh our fair, filthy town
And the skin of every ardent well-wisher.
How long we have waited, how much we have spent
This old aqueduct in bad brick and cement
Of dead dollars, can tell a sad tale
상수도 저수지에 바치는 글

새로 조성된 호수여 환영하노라,
피셔의 말과 머릿속에서,
친드라스 광산보다 더 밝게 빛나네.
우리의 아름답고도 추잡한 도시를 씻기고,
그대를 열렬히 바라는 이들의 살결을 씻겨주려,
지친 몸으로 그대 내려오길 기다리네.
얼마나 오래 기다렸나, 얼마나 많은 돈을 썼나,
부실한 벽돌과 시멘트의 낡은 수로 속에,
사라져 버린 달러들이 슬픈 이야기를 말해주리.

 

 

국가 차원에서 수자원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20년대, 말레이시아 조호르(Johor) 주에서 관로를 연결해 물을 수입하면서부터다. 이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에 속해 있던 1961년과 1962년, 싱가포르의 생존을 위해 말레이시아와 두 차례 물 협정(Water Agreements)을 체결했다. 현재는 조호르(Johor) 강에서 하루 최대 2억 5천만 갤런을 공급받는 조건으로, 99년간(2061년 만료예정) 유효한 제2차 협정이 유지되고 있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강제 독립이 될 당시, 리콴유 총리는 "1961·1962년 맺은 두 물 협정은 양국 독립 협정서에 귀속되며, 이를 어길 시 전쟁 사유가 된다"는 조항을 넣고 이를 UN에 정식 등록했다. 이 계약으로 싱가포르는 계약 종료 전까지 100% 물 자급자족을 달성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오늘날 세계적인 물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2001년부터 통합적인 수자원 관리를 위해 국립수자원청(PUB, Public Uilities Board)이 환경부 산하의 조직으로 개편되었다. 상수도, 하수도, 배수 업무를 통합해 하나의 물 순환 루프(Water Loop)를 일원화 했으며, 2020년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해안 보호업무도 추가되었다. PUB가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4개의 국가 사업(4 National Taps)은 아래의 표와 같으며, 이를 통해 물 자급 100%의 목표에 가까이 가고 있다. 

물 공급을 위한 4개의 국가 사업(4 National Taps)

1. 지역 집수 용수(Local Catchment Water) : 국토의 2/3는 빗물을 모으는 지역이며, 이 지역에 내리는 빗물은 32개의 강과 7,000km가 넘는 배수구 및 운하를 통해 수집되어 17개의 저수지로 보내져 저장
2. 수입용수 (Imported Water) : 말레이시아 조호르(Johor)주와의 수자원 협정을 통해 수입하는 물로 점차 의존도를 줄이고 있음
3. 뉴워터(New Wather) : 사용하고 버려진 하수를 최첨단으로 정수하여 초정정 고품질 물로 재사용(총수요의 40%에 해당)
4. 담수화 용수(Desalinated Water) : 해수 담수화 플랜트를 운영해 해수를 식수로 전환

 

싱가포르에 내린 빗물을 저장하는 17개의 저수지
싱가포르에 내린 빗물을 저장하는 17개의 저수지(출처 : pub.gov.sg)

 

싱가포르 최초의 저수지 맥리치(MacRitchie Reservoir)

 

1867년 도시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된 맥리치 저수지(MacRitchie Reservoir)는 싱가포르에서는 가장 오래된 인공 저수지이다.

1894년 9월 맥리치 저수지 정식 가동식 사진
1894년 9월 맥리치 저수지 정식 가동식 사진 (출처: 맥리치 저수지 안내판)

 

초기에는 계곡과 하천을 댐으로 막아 물을 가둔다는 의미를 담아 직관적인 이름인  '임파운딩 저수지(Impounding Reservoir)'라 불렸다. 그러나 고유명사로 저수지를 명명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는지 아니면 두 차례 확장을 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907년  '톰슨 로드 저수지(Thomson Road Reservoir)'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1922년, 저수지 확장 공사를 이끈 엔지니어 제임스 맥리치(James MacRitchie)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오늘날의 '맥리치 저수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제임스 맥리치의 기념명판부킷티마 클리어 워커 탱크(Bukit Timah Crear Water Tank)
제임스 맥리치의 기념명판(1896년 제작, 현 National Museum 소장)과 부킷티마 클리어 워터 탱크(Bukit Timah Crear Water Tank) (출처 : Linkedin.com)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Singapore National Gallery)에는 제임스 맥리치의 기념 명판이 남아있는데, 위의 사진처럼 싱가포르 엔지니어였던 맥리치의 흉상 부조와 그 배경에 네 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이 바로 맥리치의 주목할 만한 성과를 표현한 것으로 오른쪽 상단이 바로 맥리치 저수지이다. 그는 저수지를 4배로 확장하며 고질적인 식수난을 해결했으며, 왼쪽 상단의 그림처럼 부킷 티마(Bukit Timah)에 덮개형 여과조를 건설해 더 나은 수질의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싱가포르의 수자원 인프라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아래 두 개의 그림처럼  철제 다리인  리드 브릿지(Read Bridge)와 킴생 브릿지(Kim Seng Bridge)를 세웠다.  제임스 맥리치(James MacRitchie)는 1895년 47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현지 언론에서는 그를 "싱가포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The most important man in the community)"라고 애도할 정도였다고 한다.

 

1930년 경의 저수지 취수탑 인근 전경(좌) 및 1900년대 맥리치 저수지 사진(우) (출처 : 맥리치 저수지 안내판)
맥리치 저수지의 취수탑(Water intake tower)
맥리치 저수지 댐(MacRitchie Dam)
맥리치 저수지 댐(MacRitchie Dam)

 

맥리치 저수지에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취수탑과 댐이 있다. 곳은 담수 공급이라는 본연의 기능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휴양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 저수지를 따라 산책할 수 있는 수변길을 걸어보도록 하겠다.

 

맥리치 저수지(MacRitchie Reservoir) 수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 루트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 루트

 

가볍게 저수지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산책루트를 그려보았다. 출발지는 맥리치 저수지의 주차장 근처로 바로 앞에 탐방객센터가  있으며, 저수지 댐과 취수탑이 바로 보인다. 이곳에서 나는 붉은색 루트로 가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후 파란색 루트로 돌아서 왔다. 이 코스는 천천히 걸어도 약 1시간 남짓 걸리며 여유롭게 쉬면서 풍경을 감상한다 해도 2시간을 넘기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점선으로 표시한 부분이 물가에 설치한 보드워크(Boardwalk)인데, 멋진 풍경과 열대우림이 만든 캐노피가 어우러진 멋진 산책길이다. 

 

맥리치 저수지 편의시설 센터(MacRitchie Reservoir Amenities Centre)

 

이곳은 방문객들이 비바람과 햇빛을 피해 휴식을 취하고, 하이킹 코스 정보를 얻거나 간단한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맥리치 저수지 편의시설 센터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샤워 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액티비티로 땀에 젖은 탐방객들이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많은 이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곳을 찾는 만큼, 공공장소에서 타인에게 땀 냄새로 불편을 주지 않도록 배려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샤워 시설이라니, 세심한 센스에 감탄하게 된다.

 

탐방센터 옆 야외 공연장에서 아침 운동으로 댄스를 즐기는 주민들
탐방센터 옆 야외 공연장에서 아침 운동으로 댄스를 즐기는 주민들

 

오전 8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크게 틀어놓은 팝송에 맞춰 앞에서 박자를 지도하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다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도 아침마다 태극권을 하거나 춤을 추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이곳 싱가포르의 중국계 이민자들에게도 그 생활 습관이 이어져 오는 듯하다. 20세기 중국 본토를 휩쓸었던 공산주의식 집단문화와 국가 주도의 보건 체육 정책이 전 세계 화교 사회의 일상에 여전히 깊게 새겨져 있는 셈이다. 여기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싱가포르 정부의 '활기찬 노년(Active Ageing)' 정책까지 맞물리면서, 이들의 아침 운동 문화는 더욱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맥리치 저수지 댐 위의 긴꼬리 원숭이
맥리치 저수지 댐 위의 긴꼬리 원숭이
맥리치 저수지 댐 위의 긴꼬리 원숭이 가족
맥리치 저수지 댐 위의 긴꼬리 원숭이 가족

 

아침을 활기차게 보내려는 건 사람만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긴꼬리원숭이들이 저수지 댐을 점령하다시피 내려와 있었다.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녀석들 사이로, 사진 속 주인공처럼 깊은 사색에 잠겨 스스로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원숭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른 쪽에서는 아기 원숭이를 안고 있는 엄마 원숭이와 그 털을 정성스레 골라주며 이를 잡아 자기의 입에 넣는 수컷 원숭이의 손길이 분주하다. 재밌는 건 산책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의 풍경이다. 아침 운동으로 신나게 춤추던 사람들도, 댐 위를 점령했던 원숭이들도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많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가셨을까?

 

맥리치 저수지에 있는 패들 로지(Paddle Lodge)
맥리치 저수지에 있는 패들 로지(Paddle Lodge)

 

댐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카약과 카누를 즐길 수 있는 패들 로지(Paddle Lodge)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상수원 보호구역에서는 웬만한 액티비티가 제한되는 터라, 이곳에서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고 신기했다. 알고 보니 맥리치 저수지에서는 오직 '무동력' 액티비티만 허용된다고 한다. 저수지 위를 떠다니는 로봇 백조(Smart Swans)가 실시간으로 수질을 모니터링하는 데다, 첨단 고도 정수 시스템을 거친다고 하니 수질 오염 걱정은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싱가포르 국립수자원청(PUB)은 이른바 'ABC Waters'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저수지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을 통제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즐기게 해야 수자원의 소중함을 알고 더 깨끗이 보호한다는 취지다. Active, Beautiful, Clean을 모토로 삼아 마음껏 액티비티를 누리게 하되, 쓰레기를 버리면 어마어마한 벌금 폭탄을 투하하는 싱가포르식 밀당 정책! 역시 돈만큼 확실한 강제성은 없는 듯하다. ㅋㅋ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Boardwolk) 시작점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Boardwolk) 시작점

 

 

이제 본격적인 수변 산책로(Boardwalk)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잔잔한 물가를 따라 걷는 수변 산책로와 숲 속으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다. 트레킹 코스를 선택하면 맥리치 저수지의 명물인 '트리탑 워크(TreeTop Walk)'로 갈 수 있으며, 센트럴 캐치먼트 자연보호구역(Central Catchment Nature Reserve)의 다양한 트레킹 루트를 따라 깊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Boardwolk)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Boardwolk)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Boardwolk)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Boardwolk)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Boardwolk)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Boardwolk)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로(Boardwolk)

 

물가를 따라 길게 놓인 이 보드워크는 나무인지 철재인지 헷갈릴 정도로 매우 단단해 보였고, 표면은 비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이 파여 거칠게 처리되어 있었다. 물가에서 자란 울창한 나무들 덕분에 마치 깊은 숲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다가도, 나뭇가지 사이로 잔잔한 호수가 모습을 드러낼 때면 나무 액자 속에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맥리치 저수지의 수문과 수문제어탑
맥리치 저수지의 수문과 수문제어탑

 

다시 출발점인 맥리치 저수지 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올 때는 미처 몰랐는데, 다시 보니 이곳이 바로 홍수를 조절하는 수문이었다. 정자 모양의 구조물이 수문 제어탑으로, 폭우가 쏟아질 때 저수지가 넘치지 않도록 물을 안전하게 빼내는 방패 역할을 한다. 여기서 방류된 물은 체계적으로 설계된 지하 배수관과 수로를 거쳐 바다나 하천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기습성 폭우는 시간당 50~70mm를 웃돌고, 역대 최고 기록은 시간당 147mm에 달한다. 그토록 비가 무섭게 퍼붓다가도 그치고 나면 도로에 물이 하나도 고여 있지 않아 늘 신기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철저한 배수 인프라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지그재그형 보드워크와 물 위에 떠 있는 파빌리온(Pavilion)
지그재그형 보드워크와 물 위에 떠 있는 파빌리온(Pavilion)
맥리치 저수지 공원
맥리치 저수지 공원
맥리치 저수지 공원
맥리치 저수지 공원

 

댐을 지나 조금 걸어가니 지그재그형 보드워크와 물 위에 떠 있는 파빌리온(Pavilion)이 모습을 드러냈다. 싱가포르 전통 건축 양식의 뾰족하고 붉은 지붕을 얹은 파빌리온은, 잔잔한 호수와 초록빛 원시림을 배경 삼아 사진을 남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한참 풍경을 눈에 담고 있는데, 문득 공원 쪽에서 얼후(二胡, Erhu)의 구슬픈 가락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낯익은 음률에 이끌려 귀를 기울여 보니, 놀랍게도 조용필의 '친구여'가 연주되고 있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시선을 돌리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한 분이 중국의 대표적인 현악기인 얼후의 두 줄을 켜며 애절한 선율을 연주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맥리치 저수지의 로니 트레일(Lornie Trail) 입구
맥리치 저수지의 로니 트레일(Lornie Trail) 입구
맥리치 저수지의 로니 트레일(Lornie Trail)
맥리치 저수지의 로니 트레일(Lornie Trail)

 

맥리치 저수지의 남서쪽을 따라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인 '로니 트레일(Lornie Trail)' 입구에는 커다란 돌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표지석 뒤로 멋지게 뻗어 있는 고목은 내가 지금까지 본 나무 중 단연 손에 꼽힐 만큼 근사했다. 사진에 그 웅장한 전체 모습을 다 담지는 못했지만, 사방으로 자유분방하면서도 곧게 뻗은 가지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트레일 초입에는 하얀 파쇄석이 깔려 있어 걷기에 조금 서툴고 불편했지만, 한편으로는 꽤 공을 들여 조성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무 보드워크(Boardwalk)보다는 비용이 덜 들었겠지만 말이다. 이 파쇄석 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곧 호수를 곁에 둔 수변 산책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길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길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길
맥리치 저수지의 수변 산책길

 

입구의 왼쪽에 있는 수변 산책길은 물가와 바로 맞닿아 있어 아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그야말로 잔잔한 호숫가를 온전히 거니는 기분이다. 가로로 비스듬히 뻗은 나무의 생존을 위해 보드워크(Boardwalk)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든든한 버팀목을 괴어둔 모습을 보았다. 나무 한 그루도 결코 소홀히 대하지 않는 싱가포르 정부의 환경 정책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문득 이러한 세심한 배려가 사실은 철저히 계산된 포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이만큼 지켜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강력한 국가 홍보 전략이 또 있을까.

 

맥리치의 잔잔한 저수지 풍경
맥리치의 잔잔한 저수지 풍경
맥리치의 잔잔한 저수지 풍경
맥리치의 잔잔한 저수지 풍경

 

맥리치 저수지에서의 고요한 산책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과거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집수 시설이 오늘날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공간이자 시민들의 휴식과 액티비티를 위한 삶의 터전으로 거듭난 모습이 놀랍다. 싱가포르가 추구하는 '정원 속의 도시(City in a Garden)'라는 정교한 도시 철학을 체감한 특별한 시간이었다. 수많은 사람(그리고 가끔은 원숭이들까지)이 저마다의 목적으로 찾는 이곳에서, 나무 한 그루의 생존까지 배려해 우회시킨 영리한 보드워크도 인상적이다. 척박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낸 싱가포르의 저력 뒤에는, 언제나 일관성 있는 국가 정책과 이를 빈틈없이 실현해 내는 똑똑한 공무원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