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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깊게 읽기

[싱가포르] ② 아랍 스트리트(Arab Street)로 불리는 캄퐁 글람(Kampong Glam) 둘러보기 - 말레이 공동묘지와 모스크

by 조타 2026. 7. 7.

하지 레인(Haji Lane)의 화려한 골목을 지나 아랍 스트리트(Arab Street), 무스카트 스트리트(Muscat Street), 부소라 스트리트(Bussora Street)를 차례로 거닐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중심에서 마주한 황금 돔의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 혹시 1부를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먼저 확인하신 후 본 편을 즐기시길 권한다.

 

 

 

[싱가포르] ① 아랍스트리트(Arab Street)로 불리는 캄퐁 글람(Kampong Glam) 둘러보기 - 주요 거리와 술

관광객들은 아랍스트리트(Arab Street)와 인접한 부기스(Bugis)를 묶어 하루 여행 코스로 방문하곤 한다. 거대한 모스크와 함께 투르키에, 레바논 레스토랑 등 중동 음식점들이 눈에 띄어 마치 아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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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여행자는 아랍 스트리트를 찾아 1부의 장소들만 둘러본 뒤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이는 캄퐁 글람의 절반도 보지 못한 셈이다. 다시 한번 캄퐁 글람의 지도를 살펴보며, 이번 글에서 본격적으로 파헤쳐볼 핵심 장소들을 확인해 보자.

 

캄퐁 글람(Kampong Glam) 관광지도
캄퐁 글람(Kampong Glam) 관광지도(출처 : Cultural-Precinct-Maps, 부분편집)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Malay Heritage Centre)라고 적힌 건물 자리가 과거 말레이 술탄이 머물던 이스타나(Istana, 궁전)이다. 캄퐁 글람에 있어 이스타나 캄퐁 글람(Istana Kampong Glam)이라고도 한다. 말레이 술탄과 이 궁전에 얽힌 이야기는 이미 다룬 적이 있으니,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길...

 

 

[싱가포르] 조호르 술탄 궁전(Istana)에 얽힌 슬프고도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싱가포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아랍스트리트(Arab Street)' 일대는 말레이(Malay)와 이슬람 문화가 짙게 배어있는 곳으로 캄퐁 글람(Kampong Glam)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 싱가포르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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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모스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마을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이스타나 캄퐁 글람(Istana Kampong Glam, 현재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 그 북쪽으로 길게 이어진 길은 '잘란 쿠보르(Jalan Kubor)'라고 불리는데, 말리에어로 '무덤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이 길은 과거 왕궁과 왕실 전용 묘역을 직접 연결해 주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번 글에서는 술탄 궁전과 왕실 묘지, 말라바르 모스크(Malabar Mosque), 하지라 파티마 모스크(Masjid Hajjah Fathimah) 뿐만 아니라 캄퐁 글람을 거닐며 인상적으로 봤던 몇 군데 골목과 주요 건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옛 이스타나(Istana) 건축물과 알리왈 예술 센터(Aliwal Arts Centre) 골목의 벽화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과거 말레이 이스타나)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과거 말레이 이스타나)

 

1819년 싱가포르를 개항한 영국은 꼭두각시로 세운 말레이 술탄 일가를 이곳으로 이주시키고 목조 궁전을 지어주었다. 명색이 술탄의 거처였으나, 실제로는 니파야자 잎(Nipa Palm Attap)으로 지붕을 얹은 초라한 말레이 전통 가옥에 불과했다. 지금 남아있는 2층짜리 벽돌 궁전은 1843년에 재건축된 것으로, 왕권을 완전히 영국에 빼앗긴 이후에나 지어진 건물이다. 이때부터 술탄의 후손들은 이 궁전에서 숨죽인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스타나 주변에는 왕실 일가들이 모여 살았는데, 그 흔적으로 '노란 저택'이라는 뜻의 '게둥 쿠닝(Gedung Kuning)'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몰락한 왕가의 궁전은 이제 제 이름마저 잃은 채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Malay Heritage Centre)'가 되었다. 전시장 역시 특정 술탄 가문의 역사보다는, 다양한 부족들을 하나의 '말레이' 민족으로 융합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는 '지역에서 집으로(From Region to Home)'라는 전시 주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전시는 오랑 라우트(Orang Laut), 오랑 풀라우(Orang Pulau), 자바인(Javanese), 미낭카바우인(Minangkabau), 바웨안인(Baweanese), 반자르인(Banjarese), 부기스인(Bugis) 등을 모두 '말레이 민족'이라는 하나의 울타리로 아우른다. 비록 출신 지역은 제각각 다를지라도 이제 그들의 집은 싱가포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특히 전시 패널 중에 17세기 항 투아(Hang Tuah)의 어록을 소개하며 모두가 한 친척임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싱가포르라는 국가가 지향하는 다민족 융합의 의지를 뚜렷하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친척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마음에 불신을 품지 마십시오.
We are playing relatives! Don't harbour distrust in your heart


히카얏 항 투아(Hikayat Hang Tuah), 17세기 말레이 궁중 연대기

 

1930년 이스타나 마당에서 티파티를 하고 있는 장면
1930년 이스타나 마당에서 티파티를 하고 있는 장면. 술탄모스크 완공시기가 1932년이니 앞의 모스크는 일부 공사가 완공된 것으로 보임(출처 :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 안내판)

 

이스타나 정문 우측(이스타나 쪽에서 바라볼 때)에 위치한 게둥 쿠닝(Gedung KUning)
이스타나 정문 우측(이스타나 쪽에서 바라볼 때)에 위치한 게둥 쿠닝(Gedung KUning)

 

이스타나 캄퐁 글람 바로 옆의 '게둥 쿠닝(Gedung Kuning)'은 이스타나와 여러모로 유사한 팔라디안(Palladian) 양식의 건축물이다. 좌우 대칭의 균형미와 돌출형 중앙 현관의 구조가 쏙 빼닮았다. 특히 열대 기후의 강한 햇빛과 폭우를 차단하면서도 통풍과 채광을 확보하도록 설계된 루버창(살창)의 디테일까지... 과거 술탄 후세인 샤의 손자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지나, 왕가가 몰락하면서 결국 자바계 상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이후 정부의 재개발을 거쳐 현재는 '페르마타(Permata)'라는 할랄 뷔페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아우르는 동남아 제도의 전통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누산타라(Nusantara) 요리'를 선보인다.

 

게둥 쿠닝 앞마당의 닭들

 

게둥 쿠닝 앞마당에는 귀족처럼 자유롭게 노니는 닭들이 있다. 저 도도한 닭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인 누산타라 요리의 일부가 되기에는 그들의 걸음걸이가 너무나 당당하고 기품이 넘친다.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에서 바라본 술탄 모스크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에서 바라본 술탄 모스크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에서 바라본 쿠투리 갤러리 벽화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에서 바라본 쿠투리 갤러리 벽화

 

 

이스타나 구역의 좌우에는 술탄 모스크와 쿠투리 갤러리(Cuturi Gallery)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로 번화한 술탄 모스크 주변의 무스카트 스트리트(Muscat Street)와는 대조적으로, 쿠투리 갤러리 쪽 골목은 좁고 한적하다. 이 고즈넉한 갤러리 뒷골목으로 접어들면, 주변의 적막을 단숨에 압도하는 거대한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벽화 왼쪽의 배와 해변은 과거 비치 로드(Beach Road) 해안가에 정박하던 부기스(Bugis) 족의 무역선과 바다 유목민인 오랑 라우트(Orang Laut) 족이 만든 차양 및 돛을 묘사한 것이다. 이곳이 한때 번창했던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해 준다. 비록 지금은 대대적인 간척 사업으로 인해 '비치 로드'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만큼 바다가 멀어졌지만, 벽화는 당시 캄퐁 글람이 누렸던 풍요로운 황금기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 옆으로는 울창한 정글 속에 숨어 있는 천산갑 등의 야생동물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이 압도적인 벽화를 완성한 주인공이 바로 '자바(Jaba)'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스트리트 아티스트, 디디에 '자바' 마티유(Didier 'Jaba' Mathieu)이다.

 

알리왈 예술센터 옆 벽화
알리왈 예술센터 옆 벽화

 

또한, 알리왈 예술 센터(Aliwal Arts Centre) 옆 골목 입구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또 하나의 벽화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2019년에 제작된 싱가포르 1세대 그래피티(Graffiti) 작가 슬락사투(Slacsatu)의 작품이다. 이 벽화는 동남아 전통 천 염색 기법인 '바틱(Batik)'의 기하학적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선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표현했는데, 정교하게 얽히고설킨 거대한 패턴이 시각적 리듬감을 선사한다. 그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이 화풍을 소위 '루프 기법(Loop Technique)'이라 부른다.

 

잘란 쿠보르 묘지(Jalan Kubor Cemetery)와 말라바르 모스크(Malabar Mosque)

 

잘란 쿠보르 묘지(Jalan Kubor Cemetery) 전경
잘란 쿠보르 묘지(Jalan Kubor Cemetery) 전경

 

구글 지도를 찾아보면 이곳을 무슬림 묘지(Muslim Cemetery), 올드 말레이 묘지(Old Malay Cemetery)라고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 묘지의 공식적인 명칭은 잘란 쿠보르 묘지(Jalan Kubor Cemetery)이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무슬림 묘지로 알려진 이 곳은 술탄 후세인 샤 일가가 캄퐁 글램에 초기 목조 이스타나를 짓기 전 해인 1819년에 이미 말레이 왕실 묘지로 조성되었다.  술탄 후세인 샤의 아들 술탄 알리는 왕실 묘지의 일부를 말레이 묘지와 인도 무슬림 묘지로 할당하면서 이 지역은 세 구역으로 나뉘게 되었다. 

 

잘란 쿠보르 묘지(Jalan Kubor Cemetery) 왕실 묘지
잘란 쿠보르 묘지(Jalan Kubor Cemetery) 왕실 묘지

 

왕실 가족의 공식 매장지였던 이 곳에 술탄 후세인의 증손자가 1954년 안장된 것 외에는 더 이상의 정통 왕족의 무덤은 없고, 왕실 가문에 속하는 일가들만 묻힌 것으로 보인다. 술탄 후세인 샤와 그의 아들 술탄 알리는 말라카에 묻혔는데, 이들은 말라카 왕족의 후손이라는 정통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왕족의 무덤은 일반 무덤과는 달리, 이슬람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색 천이 비석을 감싸고 있거나 지붕이 있는 석조 묘당(Mausoleum) 형태로 특별하게 장식한다고 한다.

 

잘란 쿠보르 묘지(Jalan Kubor Cemetery) 왕실 묘지 구역 (추정)

 

이 구역은 석조 담장으로 둘러져 있어 외부와의 공간을 별도로 분리해 두고 있어 왕실 묘역으로 조성한게 아닌가 의심을 해보지만,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멀리서만 바라보았다. 

잘란 쿠보르 묘지(Jalan Kubor Cemetery) 말레이 묘지 구역
잘란 쿠보르 묘지(Jalan Kubor Cemetery) 말레이 묘지 구역
잘란 쿠보르 묘지(Jalan Kubor Cemetery) 말레이 묘지 구역

 

말레이 묘지(Old Malay Cemetery)로 불리는 이 구역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묘비들을 만날 수 있다. 우아한 호리병 모양의 묘비부터 양어깨가 뾰족하게 솟은 판형 묘비까지, 그 다채로운 외형만큼이나 비석에 새겨진 언어와 문자 역시 무척이나 다양하다. 현지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이곳의 비석들은 말레이어(Malay)와 아랍어(Arabic)는 물론, 자바어 악사라(Javanese aksara), 부기스어 악사라(Bugis aksara), 영어, 중국어, 그리고 인도 서부의 구자라트어(Gujarati)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하나의 묘역 안에 이토록 다양한 문화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과거 캄퐁 글람이 전 세계의 상인과 이주민을 품어 안았던 거대한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아랍 귀족 가문인 알주니드(Aljunied) 전용 묘역
아랍 귀족 가문인 알주니드(Aljunied) 전용 묘역

 

이 구역에는 당대 최고의 아랍 귀족 가문이었던 '알주니드(Aljunied)'의 전용 묘역도 자리 잡고 있다. 1840년대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지난 2004년 후손들이 조상의 유해를 다른 곳으로 전면 이장하면서 지금은 지붕 없이 벽체와 문틀만 덩그러니 남은 기묘한 폐허가 되었다. 사실 잘란 쿠보르 묘지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오랜 세월 방치된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이곳에서 가장 빠르게 도망치게 만든 주범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방에서 달려든 모기떼의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 묘비를 유심히 관찰하던 중 종아리가 가려워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시꺼먼 모기떼가 내 다리에 붙어 있었다. 한두 마리 수준이 아니다 보니 온몸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산 모기는 청바지도 뚫는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떼로 몰려와 피를 빨아대는 집요한 묘지 모기이다. 손으로 때려잡기조차 두려울 만큼 징그러운 광경이었다. 결국 다급하게 내리친 손바닥에 두어 마리가 죽음을 맞이했는데, 과장해서 선혈이 낭자했다. 거기에 공포를 부채질한 것은 최근 싱가포르에 뎅기열(Dengue Fever)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지만, 결국 허겁지겁 공동묘지를 벗어난 후 가장 강력한 모기 퇴치제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기존의 모기 퇴치제는 모기 유인제인 듯...)

 

하지 암복 술로 빈 하지 오마르(Haji Ambok Sooloh Bin Haji Omar)의 무덤
하지 암복 술로 빈 하지 오마르(Haji Ambok Sooloh Bin Haji Omar)의 무덤

 

인도 무슬림 묘지의 정확한 경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는 지금에 와서 명확히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현재 잘란 술탄 교차로에 우뚝 서 있는 푸른빛의 말라바르 모스크(Malabar Mosque) 주변 일대였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술탄 알리가 고향을 떠나온 인도계 이주민들을 위해 흔쾌히 내어준 공동묘지 부지가 바로 이곳이었고, 세월이 흘러 그들의 정신적 안식처인 말라바르 모스크가 바로 그 무덤들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란 쿠보르 묘지 깊숙한 곳에는 부기스(Bugis)족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이자 무슬림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였던 하지 암복 술로 빈 하지 오마르(Haji Ambok Sooloh Bin Haji Omar, 1891~1963)의 무덤이 위엄 있게 서 있다. 그는 말레이 언론의 새벽을 연 '우투산 말레이' 신문의 공동 설립자이자, 젊은 나이에 영국의 치안판사로 임명될 만큼 사회적 신망과 덕망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당대 싱가포르 무역을 주도했던 부기스 거상답게, 숲 한가운데에 독립적인 형태로 세워진 그의 웅장한 지붕식 석조 무덤은 주변의 다른 비석들을 압도한다. 주변의 다른 무덤들에 비하면 그나마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워낙 오랜 세월 방치하다 보니, 보존 대책이 시급해 보였다.

 

말라바르 모스크(Malabar Mosque)
말라바르 모스크(Malabar Mosque)

 

이 푸른색 타일의 모스크가 바로 잘란 쿠보르 묘지 구역에 세워진 인도 '말라바르인'의 중심이 되는 말라바르 모스크(Malabar Mosque)이다. 인도 남부 케랄라(Kerala) 주 출신의 무슬림 이주민을 '말라바르인'이라고 하는데, 이들뿐 아니라 싱가포르의 다른 무슬림 커뮤니티의 기부와 나아가 비신자들까지도 기부에 동참해 지은 사원이라고 한다. 파란색 타일 때문에  '싱가포르의 블루모스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1963년 완공당시에는 평범한 페인트 벽면이었다. 1995년 리모델링을 통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1970년대 촬영한 말라바르 모스크
1970년대 촬영한 말라바르 모스크 (출처: National Heritage Board 촬영)

 

장모와 사위의 통 큰 기부가 만든 역사적 건물

 

헤리티지 컬렉션 온 빅토리아(Heritage Collection on Victoria)
헤리티지 컬렉션 온 빅토리아(Heritage Collection on Victoria)

 

말라바르 모스크(Malabar Mosque) 건너편에 있는 헤리티지 컬렉션 온 빅토리아(Heritage Collection on Victoria) 외벽에 그려진 사실주의 초상화를 보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건물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 잘란 술탄(Jalan Sultan)이고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비치로드(Beach Road)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가다가 우연히 아랍 학교가 눈앞에 나타났다.

알사고프 아랍 학교(Alsagoff Arab School)
알사고프 아랍 학교(Alsagoff Arab School)

 

바로 알사고프 아랍 학교(Alsagoff Arab School)이다. 정확한 명칭은 마드라사 알사고프 알-아라비아(Madrasah Alsagoff Al-arbiah)'로 싱가포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학교이다. (Madrasah는 학교를 뜻하는 아랍어임)  이 학교는 시에드 모하메드 빈 아메드 알사고프(Syed Mohamed bin Ahmed Alsagoff, 1836~1906)가 무슬림 소년들에게 이슬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했다. 그는 예멘 출신의 무역상으로 가업을 이어받아 사업을 키운 거상이다. 이 학교는 1940년대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한 이후 여학생 등록률이 계속 증가해서 1960년대부터 여학교로 전환했다고 한다.(쪽수의 힘이 중요하는 사실!)

 

시에드 아메드 알사고프(Syed Ahmed Alsagoff)는 하지 파티마(Hajjah Fathimah)의 딸인 라자 시티(Raja Siti)와 결혼했는데, 그의 장모 이름을 딴 모스크가 바로 하지 파티마 모스크(Masjid Hajjah Fathimah)이다. 

 

하지 파티마 모스크(Masjid Hajjah Fathimah)
하지 파티마 모스크(Masjid Hajjah Fathimah)
1975년 촬영한 하지 파티마 모스크 (출처 : National Heritage Board 촬영)

 

하지 파티마(Hajjah Fathimah)는 말레이시아 멜라카(Melaka) 출신으로 부기스족 왕자와 결혼했으나 젊은 나이에 사별했다. 하지만 그녀는 탁월한 상업적 수완을 발휘하여 여러 척의 범선과 증기선을 거느린 거상으로 당당히 성장했다. 1830년대 무렵 저택에 강도가 두 번이나 드는 위기를 겪었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녀는 자신을 무사히 지켜준 알라(Allah)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지와 건축비용을 헌납하여 1846년 이 모스크를 세웠다. 파티마(Fatima)라는 이름 자체에서도 두 종교의 기묘한 연결고리를 느낄 수 있다. 이슬람에서 파티마는 창시자 무함마드의 딸이자 '악으로부터 멀어진 순결한 사람'이라는 영적인 의미를 지닌다. 반면 가톨릭에서는 포르투갈의 파티마 지역에서 일어난 성모 마리아 발현 사건을 계기로 '파티마 성모'라는 칭호가 정착되었다. 전혀 다른 교리를 가진 두 세계가 이 고결한 이름 하나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이름이 모스크에 명명된 것 자체도 독특하지만, 이곳의 진짜 명물은 하늘로 높게 솟은 첨탑, 즉 '미나레트(Minaret, 예배 소리탑)'이다. 과거 연약한 모래 지반 탓에 탑이 약 6도 정도 비스듬히 기울어졌는데, 다행히 지금은 대대적인 지반 보수 공사를 거쳐 더 이상 기울어지지는 않는다. 이 흥미로운 구조 덕분에 사람들은 이 첨탑을 '싱가포르의 피사의 사탑'이라는 거창한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앞서 본 '블루 모스크'도 그렇고, 이번 '피사의 사탑'까지 들어보니 이 동네 별명들은 아무래도 과장이 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문득 과거 강원도 철원에 놀러 갔을 때, 동네 작은 직탕폭포를 두고 '철원의 나이아가라'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터져 나왔던 실소가 이곳 싱가포르 한복판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캄퐁 글람에 있는 벽화
캄퐁 글람에 있는 벽화
캄퐁 글람에 있는 벽화
캄퐁 글람에 있는 벽화
캄퐁 글람에 있는 벽화
캄퐁 글람에 있는 벽화

 

아랍 스트리트로 대표되는 캄퐁 글람의 여정을 이제 마무리하고자 한다. 핸드폰에 저장된 수많은 사진과 발걸음이 스쳐 지나간 모든 곳을 이곳에 다 소개할 수는 없었지만, 부지런히 다리품을 판 덕분에 이 지역 곳곳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어 무척이나 즐거운 여정이었다.

 

이제 벽화는 캄퐁 글람을 넘어 싱가포르라는 국가 전체의 상징물이 된 듯,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골목 곳곳에 박제된 역사적 흔적을 보며, 무슬림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종교 공동체로 엮여 살아온 이 지역만의 독특한 특색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