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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깊게 읽기

[싱가포르] 조호르 술탄 궁전(Istana)에 얽힌 슬프고도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by 조타 2026. 6. 29.

싱가포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아랍스트리트(Arab Street)' 일대는 말레이(Malay)와 이슬람 문화가 짙게 배어있는 곳으로 캄퐁 글람(Kampong Glam)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 싱가포르의 지명에는 말레이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캄퐁 글람(Kampong Glam) 역시 '글램나무 마을'이라는 말레이어이다. 한국의 배나무골, 밤골, 복사골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지명이다. 만약 캄퐁 글람의 심장이 황금빛 돔의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라면, 나는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Malay Heritage Centre)를 캄퐁 글람의 '뿌리'라고 부르고 싶다. 이 건물은 과거 말레이 왕족들이 거주하던 궁전(이스타나)이었으며 캄퐁 글이 탄생한 역사적 기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 전경(Mayay Heritage Centre)

 

 

싱가포르 도심에 왜 말레이 왕족의 궁전이 덩그러니 남겨진 걸까?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는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를 닮았다.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무역 기지로 키우려던 스탬퍼드 래플스 경의 과감한 전략이, 말레이반도 일대를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래플스의 신의 한 수, 버려진 장남을 부르다.

 

19세기 초, 싱가포르를 포함한 말레이반도 남부는 조호르-리아우 왕국(Johor-Riau Sultante)의 영토였다. 이 왕국이 세워진 배경은1511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당시 해상 제국이었던 말라카 왕국(Malacca Sultanate)이 포르투갈(Portugal)의 침략으로 멸망하자, 왕실의 생존자들은 남쪽으로 피난해 1528년 조호르강(Johor River) 유역에 새롭게 '조호르 왕국(Johor Sultanate)'을 건설했다.  이 왕국은 말라카의  정통성을 그대로 계승한 덕분에, 옛 영토였던 말레이반도 남부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의 리아우-링가(Riau-Linnga) 제도까지 빠르게 영향권을 넓혀갈 수 있었다. 당시 '말라카의 술탄(Sultan)'이 가진 권위와 정통성은 절대적이었기에, 강력한 해양 세력인 오랑 라웃(Orang Laut) 역시 충성을 바치며 싱가포르와 리아우 제도(Riau Islands) 전체를 조호르 영토로 편입시키는 데 앞장섰다. (리아우 제도의 대표적인 섬이 '빈탄(Bintan)'이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정통 말라카 혈통의 술탄이 암살당하면서 왕권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이 틈을 타 술라웨시섬(Sulawesi Island) 출신의 강력한 해양 전사 집단인 '부기스 족(Bugis)'이 조호르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들은 왕국의 2인자 자리를 독점하며 술탄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상왕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신들의 정치적·군사적 본거지인 리아우 제도의 빈탄섬(Bintan Island)으로 수도를 옮겨버리면서, 왕국의 중심지는 본토에서 섬 지역으로 완전히 이동하게 된다.

 

1812년, 조호르-리아우 왕국에 또 한 번의 비극적인 왕위 계승 분쟁이 발생했다. 술탄 마흐무드 샤 3세(Mahmud Shah III)가 후계자를 명확히 지목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본래 정통 왕위 계승권자였던 장남 텡쿠 후세인(Tengku Hussein)이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파항(Pahang) 지역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실권을 가진 부기스 족은 통제하기 쉬운 차남 압둘 라만(Abdul Rahman)을 기습적으로 술탄에 즉위시켜 버렸다. 뒤이어 인도네시아 전역을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Netherlands) 역시 조호르 왕국을 포섭하기 위해 차남 압둘 라만을 정식 술탄으로 공식 인정했다. 결국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장남 후세인은 왕위를 빼앗긴 채, 리아우 제도의 페니엔가트섬(Pulau Penyengat)으로 망명하여 숨죽인 채 은둔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동인도 제도 지도(말레이 제도 포함), 1710년 제작
동인도 제도 지도(말레이 제도 포함), 1710년 제작,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소장, 말레이헤리티지 센터 전시촬영

 

이때 영국 동인도회사의 스탬퍼드 래플스 경(Sir Stampord Raffles)이 등장한다. 두둥! 당시 래플스는 동남아에서 네덜란드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는 동시에, 영국의 새로운 무역항으로 가장 적합한 땅이 바로 싱가포르라고 생각했다. 당시 싱가포르는 조호르-리아우 왕국의 영토였으며, 부기스족(Bugis) 출신의  다엥 압둘 라만(Daeng Adbul Rahman)이 ' 테멩공(Temenggong)'이라는 관직을 받아 다스리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 설명을 추가하자면... 술탄이 된 압둘 라만(Abdul Rahman)과는 동명이인이므로 헷갈리지 않길 바라며, 다엥(Daeng)은 부기스족 귀족들에게 붙이는 왕실 호칭이다. 하지만, 그의 부친 쪽은 조호르 술탄 왕가의 정통 핏줄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이 부분이 훗날 그의 후손이 술탄이 되는 중요한 명분이 된다.) 

 

그는 술탄(국왕)의 승인을 받아 '테멩콩(Temenggong)'이라는 작위를 받았지만, 이는 최고위 세습 작위라서 싱가포르의 실질적인 '영주'에 가까웠다. 래플스는 이 테멩공을 최고의 파트너로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땅을 마음대로 넘길 주권이 없었다. 싱가포르가 조호르-리아우 왕국의 영토인 데다 네덜란드가 인정한 공식 술탄이 따로 있다 보니, 영국과 테멩공 둘만으로 독점 계약을 맺을 명분이 부족했다. 고민 끝에 래플스가 비밀리에 불러들인 인물이 바로 망명 중이던 장남 텡쿠 후세인(Tengku Hussein)이었다. 

 

<항구에서 바라본 싱가포르의 전경(Panoramic View of Singapore from the Harbour)>
<항구에서 바라본 싱가포르의 전경(Panoramic View of Singapore from the Harbour)>, Robert Wilson Wiber 작, 1849년, 말레이헤리티지 센터 전시 촬영

 

래플스는 텡쿠 후세인을 조호르의 정통 술탄으로 전격 추대했고, 마침내 1819년 2월 6일 '싱가포르 조약(Singapore Treaty of Friendship and Alliance)'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이 싱가포르 조약은 새로 즉위한 술탄 후세인 샤(Sultan Hussein Shah), 영주 테멩공 압둘 라만, 그리고 영국의 래플스 삼자 간에 맺어졌다. 이를 통해 영국 동인도회사는 싱가포르에 대한 합법적인 독점 무역권을 확보했으며, 그 대가로 영토 관리권 설정, 관세 수익 분배, 그리고 말레이 왕족의 안전 보장과 연간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다. 이 계약으로 빈털터리 망명객이었던 술탄 후세인은 매년 5,000 스페인 달러(Spanish Dollars)를, 테멩공 압둘 라만은 매년 3,000 스페인 달러를 받으며 막대한 부를 쥐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복잡한 당시 제국주의 국가간 영토를 정리하는 조약이 체결된다. 바로 1824년 체결된 런던 조약(Anglo-Dutch Treaty)이다. 이 조약은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말라카를 영국이 넘겨받으며 영국은 말라카, 페낭, 싱가포르를 묶어 말레이시아 반도를 지배하는 발판을 마련했고, 네덜란드는 영국이 지배하던 수마트라섬의 벵쿨렌(Bencoolen)을 넘겨받으며, 말라카 해협을 기준으로 영토가 나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조호르-리아우 왕국(Johor-Riau Sultante)술탄 후세인 샤(Sultan Hussein Shah)의 조호르 술탄국술탄 압둘 라만의 리아우-링가 술탄국으로 나뉘게 되었다. 조호르 술탄국의 영토는 말레이반도 남부의 조호르(Johor), 파항(Pahang) 그리고 싱가포르였다.  

  

지키지 못한 왕국 - 이스타나 캄퐁 글람(Istana Kampong Glam)의 슬픈 역사

 

말레이 왕족의 궁전(Istana)이었던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
말레이 왕족의 궁전(Istana)이었던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

 

영국은 1822년부터 1824년까지 싱가포르 근대 도시 계획인 ‘래플스 타운 플랜(Raffles Town Plan)’을 추진하면서, 술탄 후세인 샤와 그의 가족, 추종자들을 위해 약 56에이커(약 23만 ㎡)의 전용 토지를 할당했다. 이 지역이 바로 오늘날 말레이 무슬림 문화의 중심지가 된 아랍스트리트 일대, ‘캄퐁 글람(Kampong Glam)’의 시작이 되었다. 술탄 후세인 샤(Sultan Hussein Shah)는 이곳에서 다소 허름한 목조 방갈로를 짓고 생활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석조 궁전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인 술탄 알리 이스칸다르 샤(Sultan Ali Iskandar Shah)가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중건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 '왕실의 위엄'이라는 거창한 수식어에 비하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첫인상은 살짝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비극을 이해하고 나니, 이 정도 규모라도 지켜낸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식민지 개척 전략이 늘 그렇듯, 처음에는 작은 돈과 호의를 베풀며 환심을 사다가 결국에는 야금야금 모든 것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영토와 술탄의 실권 역시 그렇게 영국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캄퐁 글람의 전경을 시대별로 그린 벽화(1920년대와 2023년)

 

1819년 조약 이후 싱가포르가 급성장하자, 영국은 거추장스러워진 말레이 왕족의 실권을 빼앗기로 결심한다. 1824년, 영국은 군함까지 동원해 술탄과 테멩공을 압박했고, 결국 ‘싱가포르의 주권과 영토를 영국 동인도회사에 통째로 영구 양도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기에 이른다. 이때 테멘공과 술탄이 조약 서명을 거부하자 '과거에 지급한 지원금은 불법이니 토해내라'며 3개월간 연금 지급을 중단하고 빚 독촉을 하는 치졸한 수법으로 이들을 굴복시켰다는 뒷 이야기도 있다. 주권을 강탈당하고 상심한 1대 술탄 후세인 샤는 멜라카(Melacca)로 이주해 그곳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텡쿠 알리(Tengku Ali, 훗날의 술탄 알리 이스칸다르 샤)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영국은 그를 공식 술탄으로 임명해주지 않았고, 궁전을 짓느라 빚더미에 앉은 그는 무려 20년 동안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Istana Kampong Glam(The Last Sultan's Palace), 왼쪽사진 (1957년 촬영, 출처 remembersingapre.org)

 

반면, 신하 가문이었던 테멘공(Temenggong) 집안은 훨씬 영리하게 움직였다. 초기에는 영국의 조약 체결에 거세게 반대했고, 삶의 터전이던 싱가포르 강 하구(현재의 보트 키 및 포트 캐닝 힐 아래쪽)를 빼앗긴 채 텔록 블랑가(Telok Blangah)로 강제 이주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하는 대신 본토의 주석과 후추 무역, 그리고 귀한 천연고무인 '구타페르카' 독점권까지 쥐며 막대한 부를 쌓아 올렸다. 나아가 영국의 골칫거리였던 해적 소탕까지 도우며 영국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냈고, 결국 새로운 실권자로 당당히 도약했다. 

 

텔록 블랑가에 자리잡은 Istana Lama(왼쪽 사진)와 철거 후 사유지에 남아있는 모스크와 왕실묘지(오른쪽)

 

1824년 테멘공 압둘 라만은 영국에 의헤 텔록 블랑가로 강제 이주당한 직후 이스타나 라마(Istana Lama)를 지었다. 훗날 손자인 술탄 아부 바카르가 조호르바루에 거대하고 화려한 새 왕궁인 이스타나 베사르(Istana Besar)를 지으면서, 새 궁전에 대비되어 '옛 궁전'이라는 뜻의 이스타나 라마로 불리게 된 것이다.

 

돈과 힘을 쥔 테멩공 가문은 벼랑 끝에 몰린 텡쿠 알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진다. 빚을 탕감해 주고 매달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대가로, 조호르 본토 전체의 통치권을 테멩공에게 양도하라는 계약이었다. 당장 굶어 죽을 처지였던 텡쿠 알리는 이 계약을 받아들이고서야 비로소 '2대 술탄'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껍데기뿐인 술탄의 직위를 얻기 위해 왕국의 알맹이를 신하에게 통째로 넘겨준 비극적인 맞교환이었다. 이후 술탄 알리가 사망하자, 테멩공 가문은 이름뿐이던 술탄의 명예마저 완벽히 빼앗아 조호르 왕국의 정통 왕위(현재 말레이시아 조호르 주 왕실)를 이어받게 된다.

구분 술탄 후세인 샤 가문(정통 술탄 계보) 테멘공 압둘 라만 가문
1대
(1819년~)
술탄(Sultan) 후세인 샤(Hussein Shah)
- 직위 : 조호르 술탄 (영국령 싱가포르 초대 술탄)
- 거주지 : 캄퐁 글람 (소박한 목조 궁전)
테멘공(Temenggong) 압둘 라만(Abdul Rahman)
- 직위 : 싱가포르 영주(테멘공)
- 거주지 : 싱가포르 하구 → 텔록 블랑가(이주)
2대
(1830년대~)
술탄(Sultan) 알리(Ali)
- 직위 : 술탄(이름뿐인 작위, 1822년 영토지배권 박탈)
- 거주지 : 캄퐁 글람(현재 이스타나 건립)
테멘공 다엥 이브라힘(Daeng Ibrahim)
- 직위 : 테멘공 (실질 권력자)
- 거주지 : 텔록 블랑가 (이스타나 라마)
3대
(1860년대~)
텐쿠(Tengku, 왕자) 알람(Alam)
- 직위 : 왕자 (비공식 술탄)
- 거주지 : 캄퐁 글람(세력상실, 궁전 방 한 칸 점유)
* 지지자들이 독자적으로 술탄을 선포해서 '술탄 알라우딘 알람 샤(Sultan Alauddin Alam Shah)라고 칭하기도 함
술탄(Sultan) 아부 바카르(Abu Bakar)
- 직위 : 마하라자(Maharaja, 왕중의 왕) → 술탄(1885년 즉위) *여론 때문에 바로 술탄으로 직위하지 않음
- 거주지 : 텔록 블랑가 → 조호르바루 이스타나 베사르
4대 이후~현재 술탄의 후손들
- 직위 : 일반 시민(평민으로 전락)
- 거주지 : 1999년 궁전이 국가로 귀속되면서 2001년까지 이주
현재 조호르 왕가(직계 후손)
- 직위 : 말레이시아 조호르 술탄 및 말레이시아 국왕(앙디페르투안 아공)
- 거주지 :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 이스타나 베사르

 

실권을 모두 빼앗긴 채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은 구(舊) 술탄의 후손들은 영국의 연금에 의존하며 궁전 안에 머무는 신세가 되었다. 1890년대 들어 영국 식민지 정부는 법원 판결을 통해 궁전 부지의 소유권마저 정부로 귀속시켰고, 후손들에게는 오직 거주권만을 허용했다. 이들은 싱가포르가 독립(1965년)한 이후에도 수십 년간 대를 이어 궁전 방 한 칸씩을 차지한 채 숨죽여 살아왔다. 마침내 2001년, 싱가포르 정부가 노후화된 궁전 부지를 보존하고 개발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살고 있던 술탄의 후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이주를 마무리 지었고, 결국 이들은 평범한 싱가포르 소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로써 백 년 넘게 이어져 싱가포르의 말레이 왕족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말라카 술탄 왕족

 

그럼  술탄 압둘 라만의 리아우-링가 술탄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도 역시 식민지 열강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피하지 못했다. 싱가포르에 있던 형님 술탄보다 그저 조금 더 오래 버티었을 뿐.... 술탄 압둘 라만은 말레이 반도(조호르)와 싱가포르에 대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뒤, 빈탐섬에서 인도네시아의 링가 제도(LinnagIslands)의 외딴섬 다익(Daik)으로 처소를 옮겨 궁전을 짓고 살았다. 네덜란드 동인도 정부는 술탄을 철저히 고립시켰고,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술탄국의 자치권을 빼앗기 위해 굴욕적인 조약 서명을 압박했다. 하지만 술탄은 주권을 넘겨주느니 왕위를 버리겠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결국 1911년 네덜란드 군대가 궁전을 무력 점령하면서 술탄군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소멸했다. 

 

나라 잃은 마지막 술탄, 압둘 라만 무아잠 샤(Abdul Rahman Muazzam Shah)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네덜란드 군대를 피해 그가 망명길에 오른 곳은 다름 아닌 '싱가포르'였다. 그는 과거 자신들의 신하 가문이었던 테멘공의 거처, 즉 텔록 블랑가의 이스타나 라마로 찾아가 몸을 의탁하며 보호를 요청했다. 그는 1930년 싱가포르 텔록 블랑가에서 쓸쓸히 사망했고, 현재 그곳에 있는 조호르 왕실 묘지에 묻혀있다. 

텔록 블랑가에 위치한 조호르 왕실 묘지(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음)

 

하나만 덧 붙이자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또 하나의 궁전이 있다. 이스타나 우드뉴크(Istana Woodneak).  테멘공에서 결국 조호르의 술탄이 된 아부 카카르(Sultan Abu Bakar)가 그의 부인을 위해 지었다는 궁전으로, 지금의 보타닉가든 옆에 위치하고 있다. 거듭된 화재와 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다.

 

이스타나 우드뉴크의 과거 와 현재

 

싱가포르의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 잡은 이 부지는, 말레이시아 조호르 왕가의 치외법권적 사유지라는 특성상 싱가포르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발하거나 관할할 수 없었다. 이후 2006년 마약 투약자들의 방화로 인해 건물 전체가 소실되며 흉물로 변하자, 현재는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통제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2025년 싱가포르 정부와 조호르 정부 간의 국유지 양도 협정이 극적으로 체결되었다. 인근 홀랜드 로드(Holland Road) 지역의 국유지와 이 부지를 맞교환하면서, 이스타나 우드뉴크는 마침내 싱가포르 정부의 소유가 되었다. 서구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복잡한 영토의 실타래가 풀린 지금, 앞으로 이 역사적 부지가 어떻게 재탄생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