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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깊게 읽기

[싱가포르] 옛 철도길을 따라 걷는 숲길 -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

by 조타 2026. 6. 9.

싱가포르에는 지하철(MRT, Mass Rapid Transit)과 지하철과 주거단지를 이어주는 지선 경전철(LRT, Light Rail Transit)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싱가포르에도 철도가 있을까? 지금은 싱가포르 최북단 우즈랜드(Woodlands)에서 말레이시아 조호바루(Johor Bahru)까지 가는 단거리 국경열차(Suttle Tebrau)와 말레이시아 철도(KTM)를 타고 쿠알라룸프르 등 말레이시아 본토 깊숙이 올라가는 장거리 열차 노선으로 연결되는 국제 여객열차가 있다. 우드랜드에는 말레이시아로 넘어가는 우드랜드 출입국 검문소(Woodlands Checkpoint)가 있으니, 한마디로 싱가포르 영토를 오가는 열차는 없고, 싱가포르 최북단에서 말레이시아로 가는 열차만 남은 셈이다. 

 

싱가포르 MRT Network Map
싱가포르 MRT Network Map (출처 : mrt.sg/map)

 

열차는 모두 말레이시아 국영철도 소유(KTM, Keretapi Tanah Melayu Berhad)로 운영되며, 싱가포르 우드랜드역(Woodlands Train Checkpoint)의 건물과 부지만 싱가포르 정부 소유인 것이다. 따라서 기차표도 말레이시아 KTM 공식 예매 시스템을 통해 구매해야 한다.

 

그럼 옛날부터 싱가포르에는 열차가 다니지 않았을까? 싱가포르에 지하철이 처음 개통된 시기가 1987년이니, 그 이전에는 당연히 열차가 운행되었다. 기차도 처음엔 싱가포르 섬 안에서만 다녔고, 화물을 실은 기차는 통채로 배(바지선)에 실어 말레이시아로 보내졌다. 1923년 바다를 메워 만든 코즈웨이(Causeway,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잇는 제방도로)가 완성되면서, 기차는 싱가포르 남부에서 말레이시아 본토까지 한 번에 쭉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싱가포르를 관통하는 철도 노선 건설

싱가포르 초기 철도 노선(1903-1932)
싱가포르 철도 초기 노선(1903-1932), 출처 : 레일 코리도 안내판

 

싱가포르의 철도 노선 건설계획이 1900년 초 시작되어 탱크로드(Tank Road, 포트캐닝 공원 근처)에서 부킷 티마(Bukit Timah)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1903년 개통되었고, 같은 해 4월 우드랜드(Woodlands)까지 추가로 연결되었다. 1907년에는 부두와의 연결을 위해 남쪽의 파시르 판장(Pasir Panjang)까지 연장되었다.  

 

1903년 개통된 크란지(Kranji 철도라인
1903년 개통된 크란지(Kranji 철도라인 (출처 : 레일 코리도 안내판)
1910년대 우드랜드 종착역
1910년대 우드랜드 종착역 (출처 : 레일 코리도 안내판)
1923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잇는 코즈웨이(Couseway) 개통
1923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잇는 코즈웨이(Couseway) 개통 (출처 : 레일 코리더 안내판)

 

1932년 철도 노선이 한차례 변경되는데 기존의 노선에서 서쪽 노선으로 우회하게 되었다. 부킷티마(Bukit Timah) 옛 역사에서 뉴튼(Newton), 탱크로드(Tank Road)의 기차역들은 철거되고, 새로 정비된 부킷티마(Bukit Tima) 새 역사에서 알렉산드라(Alexandra)를 지나 탄종 파가(Tanjong Pagar)로 이어지는 변경된 노선이 세워졌다. 

 

싱가포르 철도 변경 노선(1932-1990년대)
싱가포르 철도 변경 노선(1932-1990년대), 출처 : 레일 코리도 안내판

 

노선 변경의 주요 원인으로는 기존 철로가 도심을 평면으로 관통함에 따라 발생하던 고질적인 교통 체증과 빈번한 안전사고를 들 수 있다. 식민지 정부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도심 한복판의 철로를 서쪽으로 이설하였다. 아울러 당시 싱가포르 남부의 탄종파가르와 케펠 항이 대규모 무역항으로 급성장하고 있었기에, 증가하는 항만 물동량을 효율적으로 수송할 수 있는 신규 간선 철로의 확보가 필수적이었던 점도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탄종 파가르(Tanjong Pagar) 역사 개통 당시(1932년), 출처 : 레일 코리도 안내판
부킷티마(Bukit Timah) 역사 개통 당시(1932년)
부킷티마(Bukit Timah) 역사 개통 당시(1932년), 출처 : 레일 코리도 안내판

 

이 블로그를 쓰기위해 자료를 찾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싱가포르 국토를 관통하는 철도 노선이 말레이시아 소유라는 사실이다. 이런 황당한 일이 가능한 이유는 영국 식민지와 말레이시아 연방이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20세기 초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와 말레이반도는 모두 영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말레이 제도였다. 1918년 말레이 반도 측 정부(말레이 연방)는 싱가포르 내의 철도 노선을 413만 달러에 전격 매입했고, 영국 식민지 정부에 999년간 대여해 주는 조례를 만들었다. 만약 싱가포르가 지금도 말레이 연방에 속해있었다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1965년 연방에서 쫓겨나듯 강제 독립하게 되면서 싱가포르 영토 안에  '말레이시아 소유의 철길과 기차역'이 남아있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2011년 이전까지 싱가포르 남단에 위치한 탄종파가(Tanjong Pagar)기차역의 주권과 관리권은 말레이시아에 귀속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싱가포르 영토 내에 위치한 탄종파가역에서 기차를 탑승할 때 말레이시아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하는 이례적인 국경 절차가 시행되기도 했다. 싱가포르 정부 역시 도심 핵심 요지인 탄종파가 부지를 활용하지 못해 도시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에 양국은 장기 협상 끝에 2011년 역사적인 토지 맞교환(Land Swap) 협정을 체결했다. 말레이시아가 철도 부지 및 기차역을 싱가포르에 반환하는 대가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합작투자법인이 대토(代土)로 지정된 도심 요지의 공동 개발권을 획득하는 조건이었다.( 해당 합작법인의 지분은 말레이시아가 60%를 보유함)

 

기차가 멈춘 자리, 레일 코리도(Rail Corrido)로 피어난 숲

 

2011년  말레이시아와 타결된 토지 교환 협정으로 같은해 6월 30일 마지막 열차가 탄종파가(Tanjong Pagar) 역을 떠나며, 1세기가 넘은 싱가포르 종단 철도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마지막 열차는 말레이시아 조호르 주의 술탄(Sultan Ibrahim Ismail of Johor)이 직접 운전하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열차 운행이 종료된 이후, 싱가포르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로 부지는 막대한 개발 가치를 지닌 요충지로서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싱가포르 도시개발청(URA)은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방향으로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철교의 방수공사, 철로, 나무 침목과 자갈 등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고증을 거쳐 그 자리에 다시 재건했다. 야생 동물과의 상생을 위해 산책로에 가로등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기차역은 헤리티지 갤러리로 탈바꿈되었다. 10년간의 세심한 재정비로 2021년 총 24km의 레일 코리도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부킷티마 역사(Bukit Timah Railway Station)에 세워진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 사인물
부킷티마 역사(Bukit Timah Railway Station)에 세워진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 사인물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의 코스 안내판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는 안내판에 표시된 것처럼 북쪽의 크란지(Kranji)에서 남쪽의 탄종파가(Tanjong Pagar)까지 이어진다. 총길이가 24Km이니 마음만 먹으면 하루 코스로 완주할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이는 자전거를 타거나 숨을 허덕이며 달리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고온 다습한 오후에 전체 구간을 모두 걷기 부담스럽다면, 여러 번에 나누어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트레일을 따라 약 50여 개의 진입로(Access Point)가 있어 접근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체 코스를 북부, 중부, 남부의 세 구간으로 나누어 탐방하기도 한다.

- 북부 구간 (크란지 MRT 역 ~ 힐뷰 MRT 역, 약 6.3km)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는 구간으로 수풀이 우거져 있고, 잔디와 자갈길 위주라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에는 조금 불편할 수 있다.
- 중부 구간 (힐뷰 MRT 역 ~ 라이플 레인지 로드, 약 4km)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구간으로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를 이해하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 부킷티마 철도 철교(Truss Bridge)나 옛 부킷티마 기차역을 볼 수 있다.
- 남부 구간 (라이플 레인지 로드 ~ 탄종파가 옛 기차역, 약 13.7km)
시내 중심부로 이어지는 곳이라서 공사가 많아 우회구역이 많으며,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기 좋다.

 

레일 코리도는 침목과 철로, 과거 역무원들이 사용하던 신호 장치 등 철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함으로써 도시 재생의 성공적인 선례를 남겼다. 우리나라의 경의선 숲길이나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이 유사 사례라 할 수 있지만, 철로의 일부 구역만을 활용한 기존 산책로들과 달리, 철도 노선 전반을 울창한 숲길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싱가포르 정부의 대담한 결단과 노력이 돋보이는 결과물이라 하겠다.

 

레일 코리도(Rail Corrido)에서 걷는 즐거움

 

나는 레일 코리도의 중부 구역을 걷기로 했다. 아래의 지도(아래가 북쪽이라 조금 헷갈릴 수 있음)처럼 힐뷰역(Hill View Station)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어퍼 부킷티마 트러스 브릿지(Upper Bukit Timah Truss Bridge)를 향해 걸어갔다. 

레일 코리도 Hill View에서 Bukit Timah Railway Station 까지의 경로
레일 코리도 Hill View에서 Bukit Timah Railway Station 까지의 경로
더 레일몰(The Rail Mall) 전경
더 레일몰(The Rail Mall) 전경
더 레일몰(The Rail Mall) 전경
더 레일몰(The Rail Mall) 전경

 

인근에 있는 더 레일 몰(Rail Mall)은 레인 코리도 입구에 바로 위치하고 있어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식 스트립 몰(Strip Mall) 형태의 단층 구조라 소박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벽면에는 이 지역의 역사를 담고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볼거리와 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더 레일 몰(The Rail Mall)을 지나서 얼마 안 가면  어퍼 부킷티마 트러스 브릿지(Upper Bukit Timah Truss Bridge)가 보인다. 여기가 어퍼 부킷티마 도로(Upper Bukit Timah Road) 위를 가로지르는 검은색 철교, 어퍼 부킷티마 트러스 브릿지이다. 트러스 브릿지는 삼각형 모양으로 정교하게 짜 맞춘 철골 구조물로 만든 다리를 뜻한다. 그중에서 수직 지지대와 사선으로 내려가는 대각선 철골 구조를 프랫 트러스(Pratt Truss)라고 하는데 이 다리가 프랫 트러스 구조이고, 싱가포르에서는 유일한 양식이라고 하니 일단 의미 있는 역사적 건축물임에는 틀림없다.  

 

1957년 항공 촬영한 Upper Bukit Timah Truss Bridge
1957년 항공 촬영한 Upper Bukit Timah Truss Bridge (출처 : 레일 코리도 안내판)

 

이 철교는 1932년 도로와 평면으로 교차하면서 생기는 교통체증과 사고를 줄이기 위해 도로 위를 지나가도록 철로를 재조정하여 만들어졌다. 1957년에 찍은 항공사진에서 철교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주변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이 일본국에게 항복했던 장소인 옛 포드 자동차 공장(The Former Ford Factory), 지금의 흄(Hume) 지하철 역 이름이 된 흄 인더스트리(Hume Industries), 유니온 카바이드(Union Carbide Co. Ltd) 등의 주요 산업단지도 자리하고 있었다. 

 

철로에서 바라본 Upper Bukit Timah Truss Bridge
철로에서 바라본 Upper Bukit Timah Truss Bridge

 

점점 멀어지는 Upper Bukit Timah Truss Bridge
점점 멀어지는 Upper Bukit Timah Truss Bridge

 

이 철로를 따라 걸어가면 싱가포르의 북쪽 크란지(Kranji) 역까지 이어진다. 촘촘히 깔아놓은 자갈과 견고하게 보이는 철길이 트러스 브릿지와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 구간 중에  인기가 높은 포토존이 되었다. 나는 이 철로를 뒤로 하고, 남쪽을 향해 걷기로 했다.

 

아낙 부킷 고가교(Anak Bukit Viaduct) 교각에 그려진 벽화
아낙 부킷 고가교(Anak Bukit Viaduct) 교각에 그려진 벽화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 위를 지나는 이 고가차도는 싱가포르의 대표 고속도로인 PIE(Pan Island Expressway)의 일부인 '아낙 부킷 고가교(Anak Bukit Viaduct/Flyover)' 이다. 트레일에서 올려다보는 거대한 콘크리트 교각들은 압도적인 인상을 주지만, 주변 경관과 이질감이 없도록 표면에 초록색 잎사귀와 새들을 그려 넣어 자연스러운 조화를 유도했다. 특히 벽화에 묘사된 식생은 실제 싱가포르에 서식하는 토착 조류와 열대 식물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자국의 생태계를 소개하려는 세심한 의도가 담겨 있다. 고가교 아래는 '라이플 레인지 네이처 파크'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다른 코스로 발길을 돌리기 좋다.

 

싱가포르에서 흔히 보이는 토종닭
싱가포르에서 흔히 보이는 토종닭

 

싱가포르의 공원이나 주택가, 심지어 도심 대로변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닭들은 이곳만의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싱가포르 정부는 법을 통해 이 야생 닭들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는 물론, 사냥이나 포획하는 것까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천적조차 없는 싱가포르 생태계에서 이들은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전담반이 주기적으로 알을 수거해가기도 한다. 특히 주택가 주변에 너무 많이 살 경우 안전하게 포획해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다고 하니, 알고 보면 나름대로 특별 관리를 받는 '귀하신 몸'들이다.

주택가 인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레일 코리도(Rail Corrido)
주택가 인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레일 코리도(Rail Corrido)

 

레일 코리도(Rail Corridor)는 인근의 공원 및 주거 지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때로는 주택가의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공간의 일부로 흡수되기도한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 덕분에 특정 탐방 코스를 따라 종주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부담 없이 이용하는 친근한 산책의 기능도 있다. 

부킷티마 트러스 브릿지(Bukit Timah Truss Bridge)
부킷티마 트러스 브릿지(Bukit Timah Truss Bridge)

 

부킷티마 트러스 브릿지(Bukit Timah Truss Bridge)는 어퍼 부킷티마 트러스트 브릿지와 같은 해인 1932년에 완공되었다. 옛 부킷티마 기차역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다리는 볼티모어 트러스트(Baltimore Truss) 공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어퍼 부킷티마 트러스트 브릿지가 프랫 트러스트(Pratt Trust)공법이라고 했는데, 이것보다도 보조 지지대가 더 많아서 복잡하고 단단해 보인다. 

 

1958년 항공사진에서 보이는 부킷티마 철교와 부킷티마 기타역
1958년 항공사진에서 보이는 부킷티마 철교와 부킷티마 기타역(출처: 관련 안내판)

 

1958년에 찍은 위의 항공사진을 보면 부킷티마 트러스 브릿지(Bukit Timah Truss Bridge)를 지나면 얼마 안 가 부킷티마 기차역(Bukit Timah Railway Station)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킷 티마 기차역 (BUKIT TIMAH RAILWAY STATION)
부킷 티마 기차역 (BUKIT TIMAH RAILWAY STATION)
부킷 티마 기차역 (BUKIT TIMAH RAILWAY STATION)
부킷티마 기차역 (BUKIT TIMAH RAILWAY STATION)

 

지난 2011년 7월 1일부로 공식 운영이 중단되었던 옛 부킷티마 기차역은, 11년 만에 성공적인 복원 과정을 거쳐 시민들에게 재개방되었다. 2020년부터 2개년에 걸쳐 추진된 복원 사업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선진 보존 기술을 바탕으로 역사의 원형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주변 조경 또한 기존의 자생 식물과 새롭게 도입된 토착 식종을 유기적으로 배치하여 생태적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현재 철로 상에는 과거 선로 정비에 사용되던 궤도 모터카(Track Motorcar) 두 대가 전시되어 있어 옛기차역의 운치를 더해준다.  

 

부킷 티마 기차역 (BUKIT TIMAH RAILWAY STATION)
부킷티마 철도역 앞에 있는 철도 직원 관사(Railway Staff Quarters)

 

1932년에 지어진 단층짜리 이 연립주택(Semi-detached house)은 과거 기차역 직원과 가족들이 살던 관사(官舍)였다. 붉은 벽돌이 촘촘히 맞물린 모습을 보니 단번에 '영국식 쌓기' 공법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걸 어떻게 아냐고? ㅋㅋ 예전에 조경 공부를 잠깐 할 때 벽돌 쌓기를 배웠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영국식 구조가 가장 튼튼하다고 했던 게 생각남!) 안내문에는 이 건물이 현재 카페로 운영 중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간 날은 잠시 문을 닫은 듯했다.

 

잠시 쉬었다 더 가려 했건만,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는 동행자의 엄살에 오늘 트레킹은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레일 코리도를 벗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마주한 일상. 방금 전까지 아날로그 철길을 걸었던 시간이 마치 아득한 시간여행처럼 느껴진다. 

 

부킷티마 기차역 근처의 킹 알버트 공원 지하철역(Kin Alber Park MRT)
부킷티마 기차역 근처의 킹 알버트 공원 지하철역(Kin Alber Park MRT)

 

힐뷰(Hill View) 역과 킹 알버트 파크(King Albert Park) 역을 잇는 레일 코리도(Rail Corrido) 구간을 걸으며,  도심 속 자연과 역사 보존을 향한 싱가포르의 진정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기차가 멈추어 선 덕분에 두 발로 자유롭게 거니는 철길이지만, 한때 이곳을 지나 말레이반도로 힘차게 뻗어갔을 옛 기억과 시간의 흔적들이 잔잔히 전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