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은 아랍 스트리트(Arab Street)와 인접한 부기스(Bugis)를 묶어 하루 여행 코스로 방문하곤 한다. 거대한 모스크와 함께 투르키에, 레바논 등의 중동 음식점들이 눈에 띄어 마치 아랍 현지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아랍 스트리트(Arab Street) 일대에는 양탄자와 화려한 램프를 파는 가게가 가득하며,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편집숍, 카페, 가볍게 술 한잔 즐길 수 있는 펍(Pub)도 모여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정확한 명칭은 아랍 스트리트가 아닌 '캄퐁 글람(Kampong Glam)'이다. 이곳은 과거 말레이 술탄의 궁전이 있던 말레이 민족의 중심지이자, 무슬림 신앙의 핵심 지역이었다. 캄퐁 글람을 둘러보기 전에 영국의 식민지 시절 말레이 술탄(왕)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미리 알아두면, 이곳이 왜 말레이와 무슬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어 더욱 풍성한 여행이 될 것이다. (아래 링크도 방문해 주세요)
[싱가포르] 조호르 술탄 궁전(Istana)에 얽힌 슬프고도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싱가포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아랍스트리트(Arab Street)' 일대는 말레이(Malay)와 이슬람 문화가 짙게 배어있는 곳으로 캄퐁 글람(Kampong Glam)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 싱가포르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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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퐁 글람(Kampong Glam)은 1819년 싱가포르를 무역 거점으로 확보하려던 영국의 야심 속에서 탄생했다. 당시 영국은 후세인 샤를 꼭두각시 술탄으로 옹립한 뒤, 그가 정착할 수 있도록 거액의 지원금과 연간 수당을 지급했으며, 술탄과 그의 수행원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이 지역을 왕실 구역으로 지정했다.

위의 지도에서 진한 초록색으로 표시된 곳은 현재 싱가포르 정부가 '캄퐁 글람 보존구역(Kampong Glam Conservation Area)'으로 지정한 곳이고, 이 주변의 다른 구역을 표함해서 거의 약 22만 6천 ㎡(약 56 에이커) 규모의 땅이 캄퐁 글람이라고 한다. (정확히 어디까지라고 선을 그어 설명할 순 없지만, 무슬림 묘지나 캄퐁 글람 공원에 위치한 하지 파티마(Hajjah Fatimah) 모스크도 이 구역에 포함되는 건 확실하다)
메카로 가는 길목, 하지레인(Haji Lane)


남서쪽의 오필 로드(Ophir Road)와 남동쪽의 비치 로드(Beach Road)가 만나는 지점에서 캄퐁 글람의 여정을 시작했다. 지하철 공사로 소음이 끊이지 않는 번화가 한복판,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벽화와 마주했다. 하지 레인(Haji Lane) 골목 입구의 이 건물 벽화는 고대 아즈텍 문명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마침 그 자리에 멕시코 레스토랑 '피에드라 네그라(Piedra Negra)'가 있는 것을 보고 내 짐작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건물 사이로 뻗은 좁은 골목길은 이 지역의 명소인 '하지 레인(Haji Lane)'이다. 과거 이곳은 동남아 무슬림들이 메카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집결하던 역사적인 중심지였다. 이슬람교의 핵심 의무인 성지순례(하즈, Hajj)를 이행하기 위해 무슬림들은 평생에 최소 한 번은 메카로 향한다. 골목 이름에 쓰인 '하지(Haji)'는 순례를 무사히 마친 순례자를 뜻한다. 이 골목의 이름은 순례를 다녀온 남성을 하지(Haji)라고 부르는 아랍어 호칭(여성은 'Hajjah(하자가)')에서 유래했다.

이 지역이 성지순례의 허브로 번성한 데는 해상 교통과 정치적 배경이 맞물려 있다. 우선 싱가포르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항구로 가는 순례선이 출발하는 동남아 해상 무역의 거점이었다. 또한 네덜란드 식민 정부의 엄격한 통제와 감시를 받던 자바섬 등지의 무슬림들이 규제가 완화된 영국령 싱가포르를 우회로로 선택하면서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자연스럽게 하지 레인 일대에는 순례 중계업소와 임시 숙소들이 들어섰다. 골목 바로 옆에 자리한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 역시 순례자들이 여정을 떠나기 전 무사를 기원하며 집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



과거 동남아 무슬림들의 간절한 염원과 애환이 서려 있던 이 성지순례의 거리는, 오늘날 싱가포르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이국적인 명소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1970년대 이후 항공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배를 타던 순례자들의 발길은 끊겼지만, 그들이 머물던 전통 숍하우스(Shophouse) 건축물은 그대로 남아 현재는 감각적인 카페와 인디 브랜드 숍, 그리고 개성 넘치는 벽화 거리로 채워졌다.
캄퐁 글람(Kampong Glam)의 대명사가 된 아랍 스트리트(Arab Street)

노스 브릿지 로드(North Bridge Road)와 아랍 스트리트(Arab Street)가 만나는 교차로에 서면, 커다란 나무 너머로 웅장한 술탄 모스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랍 스트리트는 하지 레인을 지나 모스크의 정문으로 이어지는 무스카트 스트리트(Muscat Street)와 교차하는 중심부이다. 골목 상점마다 페르시아 카펫, 화려한 유리로 만든 튀르키예식 조명 램프, 이국적인 문양의 세라믹 접시 등 아랍 수공예품이 가득해 마치 두바이의 전통 시장인 '수크(Souk)'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거리가 처음부터 중동의 색채로만 채워졌던 것은 아니다. 불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말레이 전통 특산품인 라탄(Rattan) 가구나 주석 공예품 등을 흔히 볼 수 있던, 말레이 문화의 숨결이 짙게 배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아랍 스트리트에서 무스카트 스트리트(Muscat Street)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듯 8미터 높이의 웅장한 아치형 관문이 서 있다. 오만(Oman)의 수도 이름을 딴 이 거리, 무스카트(Muscat)의 양 끝에는 두 개의 관문이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이는 싱가포르와 오만(Oman)의 오랜 우호를 상징한다. 오만 정부가 기증한 이 관문은 끝이 뾰족한 이슬람 전통의 오기 아치(Ogee Arch) 형태로,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화강암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이 메인 관문을 지나면,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진 작은 오기 아치 조형물 4개씩 두 쌍이 마주 보고 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이 그림은 오만 작가가 그렸다고 하는데, 오만의 전통 목선 다우(Dhow), 항구와 해안선, 대추야자(Date Palms), 요새와 성곽, 전통 단검, 아랍식 커피를 따르는 주전자인 달라(Dallah) 등이 그려져 있다. 그 뒤에는 거대한 벽화가 숍하우스의 측면을 꽉 채우고 있는데, 바로 아랍스트리트의 포토존인 '캄퐁 글람 벽화(The Kampong Glam Mural)'이다.


이 캄퐁 글람 벽화(The Kampong Glam Mural)는 싱가포르의 유명한 거리 미술가인 입예총(Yip Yew Chong) 작가가 2023년에 그린 작품이다. 싱가포르를 여행하다 보면, 이 그림 스타일의 벽화를 많이 보게 된다. 차이나타운(Chinatown), 티옹바루(Tiong Bahru) 등 도시 곳곳에서 마주치는 정겨운 화풍의 벽화들은 대부분 그의 작품이다. 이 거대한 벽화 속에는 19세기 해상 교역을 이끈 부기스족(Bugis)의 무역선, 이 지역 이름의 유래가 된 갈람나무(Galam Tree),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의 전신인 이스타나 캄퐁 글람(Istana Kampong Glam), 피라미드형 지붕을 얹었던 초기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의 옛 모습, 그리고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숍하우스의 내부까지 정교하게 담아냈다. 그림 속 요소를 하나씩 발견하며 캄퐁 글람의 옛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로 향하는 부소라 스트리트(Bussorah Street)

무스카트 스트리트와 교차하며 술탄 모스크 정면으로 곧게 뻗은 이 아름다운 보행자 전용 거리는 부소라 스트리트(Bussorah Street)이다. 원래 '술탄 로드(Sultan Road)'로 불리던 이 곳은 1910년 영국 식민정부의 도로 정비 과정에서 이라크의 항구도시인 바스라(Basra, 과거 영어 표기 Bussorah)의 이름을 따서 개명되었다. 캄퐁 글람에 터를 잡은 아랍 이주민들의 문화적 뿌리를 기념하기 위해 바그다드, 무스카트 등 중동의 대표 이름들이 이 일대 거리 명칭으로 부여된 것이다.
이런 변화의 이면에는 말레이 술탄의 왕권이 몰락하고 영국 식민지 권력이 싱가포르를 완전히 장악한 시대적 상황이 투영되어 있다. 특히 '술탄 로드(Sultan Road)'가 이 지역이 술탄의 영토임을 명백히 드려내는 명칭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지워내는 조치는 상징하는 바가 크다. 즉 이곳을 더 이상 말레이 왕족만의 공간이 아닌, 아랍계 상인과 인도 및 자바 출신의 이슬람교도들이 공존하는 다민족 이슬람 공동체의 중심지로 재정의하려는 영국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던 셈이다.

과거 부소라 스트리트의 일상은 오늘날보다 훨씬 활기찬 것 같다. 당시 이 일대 숍하우스 1층에는 아래로 열어 매대로 활용할 수 있는 독특한 나무 셔터가 달려 있었는데, 주민들은 이 가판 위에 집에서 직접 만든 말레이 전통 떡인 '쿠에(Kueh)'나 홈스타일 가정식 요리를 차려놓고 판매했다. 특히 이 거리가 최고의 활기를 띠는 시기는 이슬람의 단식월인 라마단(Ramadan) 기간이었다. 낮 동안의 엄격한 단식이 끝나고 일몰을 알리는 기도가 울려 퍼지면, 거리는 이프타르(Iftar, 단식을 깨는 첫 식사)를 즐기려는 인파로 순식간에 활력을 되찾았다. 술탄 모스크 앞 광장을 중심으로 화려한 조명과 함께 거대한 음식 야시장(Bazzar)이 들어섰고, 밤늦게까지 전통 음식을 나누고 명절 의상을 고르는 무슬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캄퐁 글람(Kampong Glam)의 랜드마크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로 잘 알려진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마스지드 술탄(Masjid Sultan, 술탄의 사원)'으로, 캄퐁 글람의 중심이자 상징적인 랜드마크이다. 현재의 모스크는 1920년대 후반에 완공되었지만, 그 역사는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819년 영국이 후세인 샤를 술탄으로 추대하고 싱가포르 조약을 체결하면서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된 술탄은 자신의 이스타나(궁전) 근처에 모스크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래플스 경이 부지를 마련하고 건립 자금을 지원하면서, 1826년경 기와지붕을 얹은 3층 규모의 옛 모스크가 완공되었다.
하지만 1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옛 모스크는 심각하게 노후화되었고, 급증하는 이슬람 신도를 모두 수용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기존 건물을 완전히 철거한 뒤 그 자리에 현재의 모스크를 새로 지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황금빛 돔의 웅장한 '인도-사라센 양식'의 사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거대한 황금빛 돔 바로 아래를 보면 검은색 띠 형태의 구조물이 눈에 띈다. 이는 놀랍게도 수많은 유리병을 쌓아서 만든 것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유리병 바닥의 둥근 단면들이 촘촘히 맞물려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20년대 재건축 당시, 부유한 이들뿐만 아니라 평범하고 가난한 무슬림들도 사원 건립에 함께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유리병을 기부받아 장식한 것이라고 한다.

사원 내부는 의외로 매우 심플하다.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중앙의 '미흐라브(Mihrab)'를 중심으로 양옆에 2층 발코니 구역이 펼쳐져 있고, 천장을 수놓은 초록색 '오기 아치(Ogee Arch)'와 화려한 샹들리에,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기부했다는 최고급 카펫이 깔려 있는데, 솔직히 이 화려한 요소들이 서로 어우러지지 못한 채 어색하게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날 나는 무릎을 살짝 덮은 5~6부 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방문했다. 당연히 긴 원피스 형태의 로브를 빌려 입어야 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무사통과였다! 아무래도 복장 규정의 기준이 '무릎'이었던 모양이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반바지를 입은 남편만 사원 입구에서 옷을 덧입어야 했으니 말이다.
"이제 모스크를 지나 술탄 후세인 샤의 거처였던 이스타나 캄풍 글람(현재의 말레이 헤리티지 센터)과 공동묘지, 그리고 주변의 숨은 명소들까지 다음 2부에서 함께 방문해 보려고 합니다. 다음 편도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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