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카통(Katong)은 동쪽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페라나칸(Peranakan)' 문화가 잘 보존된 곳으로, 이곳에는 싱가포르 정부(도시재개발청(URA))가 지정한 헤리티지 보존 건물만 약 800여 채에 달한다고 한다. 카통(Katong)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카통 라우트 나무(Katong Laut, Cynometra Ramiflor)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 뿐 아니라, 이 지역 해안가에 살았던 바다거북(Katong)의 이름이라는 설, '잔물결이 일렁이는 바다의 신기루 현상'을 말레이어로 카통(Katong)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어원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전해지고 있다. 명확히 카통(Katong)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말레이어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카통 스퀘어(Katong Square)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카통(Katong)의 발전상을 살펴보면, 초기(1840년대~1900년대)에는 면화나 코코넛 농장이 생기면서, 부유층들이 해변 근처에 방갈로나 빌라를 짓기 시작했으며, 숍하우스도 이 시기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발전시기는 1920년대~1930년대로, 싱가포르 도심이 과밀해지면서 중상류층 특히 중국계 페라나칸과 유라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했던 시기이며, 이때부터 지금의 화려한 숍하우스 거리가 완성되었다. 1960년대에는 간척사업으로 해안선이 멀어지면서, 바닷가 휴양지로서의 면모는 지금의 이스트 코스트로 옮겨갔지만, 2011년 싱가포르 최초 '헤리티지 타운(Heritage town)'으로 지정되면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더욱 사랑받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가장 핫하다고 하는 주치앗 로드(Joo Chiat Road)를 따라 걷기로 했다. 이스트코스트로드(East Coast Road)와 주 치앗 복합단지(Joo Chiat Complex) 인근, 창이 로드(Changi Road)를 잇는 주 치앗 로드는 약 2km 내외의 길이인데, 왕복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주변 사찰이나 숍하우스, 벽화 등을 구경하고 미식의 경험을 하려면, 여유롭게 반나절 정도 잡아야 한다.
주 치앗(Joo Chiat)은 중국 사업가였던 츄 주 치앗(Chew Joo Chiat, 周如切)의 이름에서 따 왔는데, 원래 중국 샤먼에서 온 가난한 이민자로, 이곳에서 육두구와 코코넛 농장을 경영하며 큰 부를 쌓아 '카통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사유지를 일반인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기부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도로명이 주치앗 로드가 되었다.

거리를 따라 이어진 화려한 숍하우스(Shop House)
① 코너 숍 하우스(Corner Shophouse)
두 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숍 하우스가 위치하면 압도적인 가시성으로 그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다. 보통 ㄱ자로 꺾이는 곳은 날카로운 직각으로 두지 않고 비스듬하게 깎는데, 이는 교차로에서 보행자와 차량의 시야를 확보할 뿐 아니라, 이 부분이 숍 하우스의 메인 출입구가 되기도 한다. 코너 부분 지붕 위 페디먼트(Pediment, 코너 상단에 있는 삼각형 또는 아치형의 장식 벽면)는 숍하우스의 얼굴과도 같아서, 집주인의 재력이나 가문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장식에 공을 들인다.



Shop House의 특징
1. 지붕
- 기와 : 주황색의 테라코타 점토 기와 사용(열 전도율이 낮아 뜨거운 햇빛에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
- 경사 : 잦은 폭우(스콜)에 대비해 빗물이 빨리 흐르도록 경사가 가파른 구조
2. 구조
- 주상복합 : 1층은 상점(Shop)으로 쓰이고, 2층은 주거공간(House)
- 5피트 통로(Five-foot way) : 1층은 5걸음 정도 안으로 들어가있어 천장이 덮인 통로가 있음. 이는 보행자들이 뜨거운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822년 도시 계획부터 도입.
- 정면은 좁고 안으로 길게 뻗은 구조 : 과거 입구 정면의 길이로 세금을 매겼던 방식때문에 생긴 독특한 형태
3. 외관
- 목제 덧창 : 빗물을 막으면서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고안된 나무 덧창
- 코린트식 기둥 : 서양 건축양식을 부분적으로 도입한 싱가포르 로코코 양식으로 불림
코너 숍 하우스의 가장 중요한 페디먼트 장식은 건물 파사드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좌우 대칭구조로 윗 부분이 삼각형이거나 곡선인 경우가 많다. 이 구조는 고대 그리스 로마 건축에서 유래해서 이후 유럽 신고전주의 건축이 동남아시아 식민지 건축에 도입된 대표적인 특징으로, 싱가포르 초기의 건축가인 조지 콜먼(George D Colman)의 건축양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https://booksharp.tistory.com/41
싱가포르 건축 역사의 시작 - 조지 콜먼(George D Colman)
싱가포르의 역사가 짧다보니, 현존하는 근대 건축물(1800년대 이후)이 싱가포르 건축 역사의 시작이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주목하는 주요 건축가 중 가장 독보적인 인물은 바로 조지 콜먼 (Georg
booksharp.tistory.com
② 인생샷 성지 - 쿤 셍 로드 페라나칸 하우스(Koon Seng Road Peranakan Houses)
이곳은 주거 전용으로 지어져서 페라나칸 하우스라고 불린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페라나칸 하우스로 손꼽히는 곳으로 '인스타그램 사진이 잘 나오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1920년대에 지어졌지만, 정부의 보존 노력으로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각 집마다 고유의 파스텔컬러를 칠해서 다채로운 색감을 보여주고 있다.



다문화의 공존을 보여주는 종교 사찰
① 관음관제궁 사원(觀音 關帝宮, Kuan Im Kuan Ti Kong)

주치 앗 로드에서 처음 볼 수 있는 건 관제궁(關帝宮)이다. 명패를 자세히 보면 관제궁(關帝宮)이라는 글씨 위에 작게 관음(觀音)이라고 적혀있다. 관우와 관음보살을 함께 모신다는 뜻이다.

사원건물은 지면에서 건물을 띄운 방갈로 형식으로 열대지방의 습기와 홍수를 피하기 위해 쓰이던 방식이다. 붉은 창문 덧창과 돌출된 발코니, 팔각형과 사각형이 어우러진 구조는 20세기 초 싱가포르의 전형적인 고급 빌라 양식이다. 거기에 붉은 지붕과 관제궁이라는 현판은 중국 사원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융합, 하이브리드 건축구조라고 하겠다.


마당에는 육각지붕 아래 놓인 거대한 황금향로(天公爐)와 그 뒤에 앉아 있는 포대화상(Maitreya, 웃는 부처)이 보인다. 밝게 웃으시니 가볍게 다가갈 수 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입구에서 살짝 찍었는데, 관우상 뒤에 천수관음이 앉아있다. 사찰이 아담해서인가, 두 분을 한 제단에 모시는 걸 다른 사찰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사찰을 관리하는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 중국어로 물어본다. 대충 눈치로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소액을 기부하면 기름 공양을 해 주겠다는 것 같았다. 기부상자에 S$5를 넣으니, 여성분이 제단 앞에 높인 등불에 기름을 조금씩 나누어 부으며, 뭐라고 읊조린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 같았다. 나도 함께 기도하는 척하다가, 기름을 다 붓자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재물신인 관우께 기도를 했으니, 부자는 아니더라도, 부족함 없이 살게 해 주시길....
기름 공양(添油)의 의미
1. 지혜와 광명: 불교와 도교에서 등불은 '어둠을 밝히는 지혜'를 상징합니다. 등불이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기름을 보충하는 행위는 자신의 앞날을 밝히고 지혜를 얻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2. 공덕과 복덕: 사원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유지하는 비용을 기부하는 일종의 보시(布施)이다. 과거에는 직접 기름을 가져와 부었으나, 현대에는 사원에서 준비한 기름을 사용하거나 일정 금액을 기부하며 기름을 채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3. 건강과 장수: 전통적으로 기름 공양은 눈과 귀가 밝아지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어진다.
② 관음당(觀音堂, Kuan Im Tng Temple)

관음당은 주 치앗 로드 근처에 있는데, 지붕 끝이 하늘을 향해 화려하게 휘어서 솟아있는 형태와 그 위에 장식한 정교한 도자기 장식을 통해 중국 남부인 푸젠성이나 광둥성의 전형적인 사찰양식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입구의 화려함 보다는 햇빛과 비를 막도록 설치된 차양(Tentage)을 보며, 실용성을 더 중시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 역시, 입구에서 나를 반기는 건 포대화상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괴이하다. 두 손을 번쩍 들고 손뼉을 치기 직전의 모습 같은데, 한편으로는 손이 아닌 다리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코미디 장르가 호러로 바뀌었다. 더 무서운 사실... 포대화상의 뒤로 가도 계속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읽지 말라'는 포대화상의 메시지를 잊은 채, 내 머리에는 영화에서 본 처키(Chucky) 인형이나 배트맨 영화의 조커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바로 그 생각을 지워버리고, 처형대에서도 환하게 웃던 원피스의 몽키 D 루피로 이미지를 바꿨다. 포대화상은 사방을 살피며 복을 주고 지켜주시는 분인데, 불순한 마음을 가지다니... 잠시 반성을 하고 미안한 마음을 으로 관음보살을 모신 본당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중앙 제단에는 부처님이 머무르는 궁궐 같은 느낌의 중국 전통 지붕이 얹혀져 있고, 천장에 늘어진 연등과 공양물이 이곳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주었다. 여기에 달려있는 샹들리에. 참 이채롭고 독특하다. 문화적 통일성이나 조화를 중시하기 보다는 샹들리에의 화려함을 부처님의 자비로운 빛(慈光)으로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제단 현판에 쓰여있는 자광보조(慈光普照)라는 글씨처럼 '자비로운 빛이 온 세상에 비춘다'는 부처님의 마음을 샹들리에로 강조했으리라. 나에겐 믹스 앤 매치가 아닌 미스매치 같았지만...
③ 스리 센파가 비나야가 사원(Sri Senpaga Vinayagar Temple)
싱가포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힌두사원인 스리 센파가 바니야가 사원은 가네샤 신을 모시고 있다. 21미터 높이의 화려한 입구의 고푸람(탑)과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음악기둥'으로 유명하다.

다른 힌두사원과는 다르게, 고푸람은 차분한 노란색에 갈색 톤의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남인도 촐라(Chola) 왕조의 전통 건축양식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원은 추후에 블로그에서 다룰 예정이다.
거리를 걸으며 즐기는 벽화
주 치앗 로드를 걷다 보면 다양한 벽화에 눈길이 간다. 차이나타운의 통일된 화풍의 벽화와는 다르게 모든 벽화는 서로 다른 개성으로 다가온다. 모든 벽화를 소개하진 못하지만, 눈에 띄었던 몇 개의 벽화를 감상해 보자.
① 숍하우스의 청사진(Blueprint of a Shophouse)

<숍하우스의 청사진(Blueprint of a Shophouse)>은 OMG Atelier(주 치앗 지역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 이름)의 스튜디오 소속 작가와 예술가들, 학생들이 함께 협력해서 제작한 벽화이다. 2025년 싱가포르 아키페스트(Singapore Archifest)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건물 외벽을 숍하우스의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청사진으로 콘셉트를 잡고, 그 안에, 과거 플랜테이션 농장의 풍경에서 전통적인 코피티암(Kopitiam 커피숍), 현대의 공간까지 이 지역의 진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벽화 속에서 추 주 치앗(Chew Joo Chiat)의 초상화와 싱가포르 고양이 캐릭터들이 배치되어 있으니, 찾는 재미가 있다.
② 봉황래의(鳳凰來意- Radiance)

앞에 소개한 관음관제궁 사원 옆 숍 하우스 측면 벽에 그려진 이 벽화의 제목은 <봉황래의(鳳凰來意)>이다. 싱가포르 작가인 분 베이크드(Boon Baked)가 제작한 작품으로 '봉황이 날아와 상서로운 징조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장 중국적인 작품으로, 봉황이 갖는 상징성인 평화, 새로운 시작, 부귀 등의 길상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③ 톰과 제리(Tom & Jerry)

톰과 제리 만화캐릭터를 통해 싱가포르의 문화요소를 팝아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리안, 페라나칸 도자기, 락사(Laksa), 싱가포르 국화 난(Orchid) 등이 그려져 있다. 남편의 영어 이름이 Jerry라서, 나보고 Tom이냐고 묻는 아재개그 본능이 있으신 분들 뿐 아니라, 젊은이들도 인증숏 필수 코스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④ 잘란 잘란(Jalan Jalan)

'산책하다' 또는 '걷다'는 의미의 말레이어 'Jalan Jalan'이 이 벽화의 제목이다. 주 치앗 거리를 활보하는 길고양이들에서 영감을 얻어 표현한 이 작품은 콜롬비아 출신의 거리예술가 디디에 자바 마타외(Didier Jaba Mathieu)가 2022년 제작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카통 지역에 약 15개 이상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고 하니, 골목마다 숨겨져 있는 벽화 투어를 해 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다시 카통 스퀘어(Katong Square)로 돌아가며
주 치앗 콤플렉스(Joo Chiat Complex)에서 다시 몸을 틀어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같은 길을 다시 걷지만, 돌아가는 길에 보는 풍경은 또다시 새롭다. 태양의 위치가 달라져 건물의 분위기나 벽화의 색상이 조금씩 변했고, 상점에 전시된 특이한 기념품도 눈길을 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행은 한 번의 추억으로 남기기는 아깝다. 처음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두 번째는 '익숙함 '속의 발견이다. 이곳에 다시 온다면, 모든 것을 다 봐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고 좋아했던 골목에 앉아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는 '무위(無爲)의 기술'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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