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성 베르나데트 성당(Church of St. Vernadette)에 다닌다. 그레이트월드 쇼핑몰(Great World Mall)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어, 가끔은 미사 후 저녁을 이 몰에서 해결하기도 한다. 매주 일요일은 말레이시아 조호르에 가서 골프를 치는 루틴이 생기면서, 늘 토요특전미사에 참여했다. 부활절도 평소처럼 토요특전미사에 참여하려고 하는데, 미사 시간대부터 달랐다. 저녁 7시 45분... (우리나라에서도 부활 성야미사는 가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성당 주보에는 Eater Vigil(부활 성야 미사)이라는 생소한 단어와 함께, 저녁 7시 45분 시작,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타갈로그어(필리핀어), 영어로 함께 미사를 집행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4개 국어를 동시에 어떻게 하자? 미사시간이 길어지겠구나.. 등의 추측을 하면서 성당을 갔다. 지난 경험을 떠올려 보니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는 워낙 신자들이 많아 서둘러야 했다. 조금만 늦어도 성전에 들어가지 못해, 야외 임시 천막 아래서 미사를 드려야 했기에, 이번에는 조금 일찍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착시간 7시 30분. 미사 시작 15분 전이었지만, 성전 안의 좋은 자리를 기대하는 건 이미 무리였다. 결국 2층 발코니 뒷 자리에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성당은 깜깜했고, 우리 자리에선 재단 위 십자가상과 미사통상문을 영어로 보여주는 화면만 보일 뿐이었다. 발코니 앞 쪽은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지만, 성가대와 이미 자리를 잡은 신자들로 발코니에는 뒤쪽 몇 자리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발코니 끝에서 그들의 뒷 머리와 십자가만 볼 수밖에 없었다.

성당은 어둠 그 자체였다. 예수님이 어두운 돌 무덤 속에 차가운 시신으로 계신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다. 나도 돌무덤의 어둠 속에 함께 있는 느낌이었다. 화면을 통해 신부님이 성전 밖에서 부활초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보였다. 부활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므로, 주님이 부활하심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작은 초에는 아직 불이 옮겨 붙지 못했기에, 우리는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빈 무덤을 보고 울고 있을 때,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신부님이 들고 있는 부활초의 불이 신자들에게 전달되면서 어두웠던 성당은 서서히 촛불로 가득차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리스도 우리의 빛' 이라는 곡을 성가대가 내 마음을 울리며 선창을 한다. 정말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이 분위기를 공유하고 싶어, 같은 곡을 유튜브에서 찾아 보았다.
https://youtu.be/IXEE_ScAcf0?si=MlY1E8D-5Q9OTacI
This is the night of new beginnings 새로운 시작의 밤
This is the night when heaven meets earth 하늘과 땅이 만나는 밤
This is the night filled with God's glory 하느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날
Promise of our new birth 새롭게 태어날 약속이 있는 밤
Christ, be our light Shine in our hearts 그리스도여, 우리의 빛이 되어 주소서
Shine through the darkness 우리 마음속에, 어둠을 밝히소서.
Christ, be our light 그리스도여, 우리의 빛이 되어 주소서
Shine in Your church gathered today 오늘 모인 당신의 교회에 빛을 비추소서. [1절만 소개함]
1부 빛의 예식(Service of Light)이 끝나고, 2부 말씀의 전례(Liturgy of the Word)가 진행되었다. 원래는 구약성경에서 7개, 신약성경에서 2개를 봉독 하는데, 아마 줄여서 5개 정도 읽은 것 같다. 성서는 영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타갈로그어로 돌아가며 봉독하고 화면에는 영어 자막이 제공되었다. 인도네시아어인것 같은데, 성서 봉독 중에 '알라(Allah)'라는 단어가 나와서 조금 당황했었다. 귀를 의심하며 나중에 찾아보니,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 지역에서는 '신'을 지창하는 단어로 'Allah'를 썼다고 한다.

말씀의 전례가 끝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나이가 들어 엉덩이살도 많이 빠져서 오래 앉아있기 힘들었다. (에휴) 힘들고 집중력도 떨어질 즈음.... 다시 나에게 감동의 순간이 다가왔다. 성가대가 반주와 함께 '대영광송'을 부르면서, 성당의 분위기는 고조에 달했다. 성당 종이 '때앵~~ 때앵~~~' 계속 울리고, 갑자기 성전의 모든 불이 환하게 켜졌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공식적인 선포였다. 나도 분위기에 휩싸여 약간 울컥했는데, 내 뒤에서 한 여자의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칠흑 같은 어둠(죽음)에서 아주 작은 불씨(부활의 희망)가 점점 퍼지고, 결국 온 세상을 밝히는 큰 빛(완전한 부활)으로 퍼져 나아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다.
3부는 세례 전례(Baptismal Liturgy)인데, 새로 입교한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고, 서약을 한다. 죄 안에서 살지 않도록 악을 끊는다는 다짐과 창조주 성부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의 상징 성령을 믿는지 묻는다. 그러면 '끊어버리겠습니다.'와 '믿습니다'라는 답변으로 가톨릭신자로서 새롭게 태어남을 서약을 한다. 그리고, 신자인 우리들에게 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 남편은 10여 년 전 두바이(Dubai)에서 세례를 졸속으로 받은 후 처음으로 이번 부활절에 신앙이 처음처럼 새롭게 시작되는 의미의 세례 서약 갱신을 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성찬의 전례로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성체를 받아 모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하나가 되는 의식을 끝으로 미사는 성대하게 마무리되었다. 성가대의 환상적인 성가와 축복의 기도로 마무리된 부활성야미사는 잊지 못할 감사와 기쁨의 시간이었다. 다만 2층 발코니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된 미사로 인해 제대도 보지는 못하고 빛과 소리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 한계가 내 귀를 민감하게 하고, 빛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

깊은 밤, 세인트 베르나데트 성당을 뒤로하고 주린 배를 달래며 집으로 갔다. 성스러운 장소를 떠나서인가. 나와 남편은 미사시간에 우리 앞에 앉아 산만하게 왔다 갔다 했던 아저씨와 그 아들을 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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