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의 중심에 자리한 '불아사(佛牙寺)'.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부처님의 '치아'라니, 사찰 이름치고는 너무 직관적이라 호기심에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놀랍게도 다른 나라에 이처럼 독특한 이름을 가진 사찰들이 있었다. 스리랑카의 불치사(佛齒寺) , 중국의 불정사(佛頂寺)와 불지사(佛指寺) 등이 그렇다. 각각 부처님의 치아, 두개골, 손가락뼈 사리를 모신 곳들이다. 부처님의 신체 일부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찰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로는 통도사가 대표적이다. 통도사에는 불상이 없는 대신 사리를 모시고 있어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한다. 불상이라는 상징 대신, 부처님의 '진짜 몸'이 그곳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사찰에서 사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부처님을 불상이라는 상징으로만 대하기보다, 눈앞에 살아 숨 쉬는 강렬한 실체로 마주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몸을 화장(다비)하자 엄청난 양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전신이 타서 생긴 반짝이는 결정체인 진신사리 외에도 치아 4과(顆, 사리를 세는 단위), 두개골, 쇄골, 손가락뼈 등이 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았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사리의 숫자가 무려 '8만 4천 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거대한 숫자의 유래는 인도의 아쇼카 대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아쇼카 대왕은 부처님 사후 8개 부족이 나누어 보관하던 탑들을 모두 열어 사리를 다시 수습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 8만 4천 개의 탑을 새로 세워 사리를 나누어 봉안했는데, 바로 여기에서 '8만 4천'이라는 숫자가 유래했다.
보통 스님들의 다비식에서는 평균 10~30과 정도의 사리가 수습된다고 한다. 1993년 입적하신 성철스님의 경우 무려 110~200여 과의 사리가 나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흔히 마음에 울화가 쌓이고 답답할 때 "나 죽으면 사리가 한 트럭은 나올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평생 마음을 닦고 도를 구해야 사리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 몸에서는 사리 구경하기는 틀린 것 같다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사실 다비식이 아닌 일반 화장터에서 화장하면 너무 높은 온도로 완전연소가 되어 사리가 나올 확률이 0%라고 한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2007년에 완공되어 역사라고 해봐야 이제 겨우 20년 남짓한 이 현대식 사찰에, 어떻게 그 귀한 부처님의 치아 사리가 봉안될 수 있었을까?
불아사(佛牙寺)에 봉안된 사리의 기원과 논란

싱가포르 국립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이야기는 1980년 미얀마(Myanmar) 므라우우(Murauk U)의 반둘라(Bandula) 사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지였던 차카팔라(Cakkapala) 스님이 무너진 불상과 불탑을 복원하던 중, 순금 불탑 안에서 부처님 치아 사리 2과를 발견했다. 하지만, 반둘라 사원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기금 모금을 위해 싱가포르 금탑사(金塔寺, Golden Pagoda Temple)의 시파자오(Shi Fazhao) 스님과 인연이 닿게 된다. 2002년 금탑사 창건 10주년 기념으로 두 개의 치아 사리를 전시하고 약 100만 싱가포르 달러(한화 약 1억 2천만 원)를 모금할 수 있었다. 이에 감격한 미얀마 측은 치아 사리 중 하나를 시파자오 스님께 기증하면서 '이 사리를 봉안할 사원을 지어달라'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수많은 후원금이 모여 지금의 불아사(佛牙寺)가 탄생했다.
이 이야기에 의심을 품지 않고 사실 그대로 받아들인다 치더라도,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첫째 우연히 발견한 불탑 안에 치아가 두 과나 봉안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부처님 다비 후 치아 4과가 사리로 남았다고 전해졌는데, 그럼 4개 중 2개가 여기에 봉안되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둘째, 이 소중한 보물을 일억 2천만 원의 모금 이후 싱가포르에 흔쾌히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불교국가인 미얀마의 어느 누구의 반대도 없이, 포교 차원으로 성사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진짜 충격적인 의문은 따로 있다. 불아사(佛牙寺) 개관 직전인 2007년 7월, 싱가포르 현지 언론(Straits Times)에 폭탄 같은 기사가 실렸다. 치과 전문가들이 이 사리를 분석한 결과, 길쭉한 치관과 짧은 뿌리 형태로 보아 사람의 치아가 아닌 소나 물소 같은 '동물의 이빨'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시파자오 스님은 아래와 같이 답했다.
저에게는 그것이 항상 진짜였고, 저는 그 진위 여부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인 것입니다.
To me, it has always been real and I have never questioned its authenticity. They can say all they want. I don’t care what they say. If you believe it’s real, then it’s real.
‘진짜’에 대한 견해는 각자의 불교 이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우리 각자의 관점이 다릅니다. 우리는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성스러운 유물에 대한 우리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Each of us has different views on what is ‘real’, as it depends on each individual’s understanding of Buddhism. While we fully respect the opinions of others, we should stand firm on our own faith towards the sacred relics.
사찰 측이 DNA 검사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진위 논란은 일단락되었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3층 불교박물관에는 한술 더 뜨는 놀라운 유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일명 '부처님 사리 전시실'. 1mm가 될까 말까 한 아주 미세한 수정체 알갱이들이 섹션마다 수십 개씩 전시되어 있다. 눈길을 끄는 건 그 앞의 안내판(Label)이다. '부처님의 눈(Eye)', '피부(Skin)', '머리카락(Hair)', '신장(Kidney)' 사리라고 적혀 있다. 부처님의 장기와 피부가 전부 사리가 되어 전시되어 있는 셈이다. 과학적으로 사리는 뼈의 칼슘과 인산, 그리고 체내 성분이 다비식의 장작 불꽃 속에서 융합되고 식으며 굳어진 결정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불꽃 속에서 다 타버린 이 결정체를 보고, "이건 눈이고, 저건 간이다"라며 몸의 각 부위로 정확히 구분해 낸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제각각 다른 색상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굳건한 '믿음'의 힘이었을 것이다.
(* 사리 전시는 모두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을 제공하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놀랍도록 화려한 불아사(佛牙寺)에 불상은 모두 몇 개일까?

5층 높이의 불아사(佛牙寺)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압도적이다. 맥스웰(Maxwell) 전철역에서 내리자마자 전통 전각 10여 채가 블록처럼 맞물려 거대하게 합체한 듯한 독특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불아사(佛牙寺) 측은 이 5층 규모의 사찰이 중국식 전각 양식, 특히 당나라 시기 북부 건축 양식을 전면 수용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사찰 입구의 전각은 중국 전통 사찰의 외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중국 시안(西安)의 법문사(法門寺)의 사진과 불아사 정문의 양식을 비교해 보면 이 점이 더 확실해진다. 다만, 전통 목조 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재현했다기보다는, 5층 높이로 우뚝 솟은 현대식 콘크리트 건축물 위에 당나라 양식의 정교한 장식적 디테일을 구현해 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아침 일찍 방문하면 한산할 거라 생각했는데, 법당에는 이미 많은 스님과 신도들이 모여 함께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독경 소리를 들어보니 반야심경 같았는데, 템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빨라 이색적이었다.

법당 중앙에는 미륵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유독 빛나는 황금빛은 용(龍)이 그려진 배경 벽화까지 온통 칠해져 있어서, 불상 자체가 뚜렷하게 돋보인다기보다는 공간 전체가 눈부실 정도로 번쩍인다. 감히 함부로 쳐다보지 못할 거대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듯하다. 불교에서 미륵불은 먼 미래에 도래할 구원자로 여겨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나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러 온다는, 일종의 '메시아'인 셈이다. 웅장한 삼존불과 법당을 가득 울리는 독경 소리, 그리고 이 신성한 공간을 한층 더 장엄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가 있으니, 바로 벽면을 가득 채운 백 개의 불상이다.

미륵 삼존불 좌우 벽면,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작은 감실들이 9개씩 2단 구조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것이 공간의 장엄함을 더하는 백불상(百佛像)이다.


감실 안의 불상들은 불꽃 모양의 광배와 연꽃 좌대 위에 앉아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손 모양(수인)이나 손에 든 지물(持物)은 저마다 달라, 각기 다른 불상 총 100개가 모여 '백불상(百佛像)'을 이룬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불상을 안치한 감실 주변이다. 더 작은 감실에 앉아 있는 미니어처 불상 조각들이 주변을 촘촘히 에워싸고 있다. 이 작은 조각들은 셀 엄두조차 나지 않지만, 어림잡아 1만 개는 족히 되어 보였다.

이 법당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숨은 관람 포인트는 백불상 위로 입체적인 띠를 형성한 백룡(百龍) 부조이다. 여기서 백룡(百龍)은 하얀 용이 아니라 용이 백 마리라는 뜻이다. 자세히 보면 용들이 격렬하게 뒤엉켜 있는 부조 형태인데, 법당 좌우를 통틀어 총 100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사방을 가득 채운 불상 마스킹에 압도당하다 보면 정작 이 용들을 놓치기 쉽다. 그러니 반드시 고개를 들어 천장 근처를 확인해 보길 권한다.

미륵 삼존불을 지나 뒤쪽 문으로 나가면 원통전(圓通殿)이 이어진다. 이곳 중앙에는 여섯 개의 팔을 가진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우아한 자태로 안치되어 있다. 그중 한 손에는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여의주를, 다른 한 손에는 번뇌를 부수는 법륜(바퀴)을 들고 있다. 그 심오한 뜻을 헤아린다면 누구나 이 자비로운 관세음보살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앞서 살펴본 미륵불이 미래에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라면, 관세음보살은 스스로 부처가 되기를 미룬 채 현세의 우리를 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단 한 사람의 중생도 놓치지 않고 구원하겠다는 의지가 팔과 머리가 많은 독특한 외형으로 표현된 것이다. 다른 사찰에서는 손과 눈이 무려 1,000개에 달하는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도 종종 만날 수 있다.

관세음보살 주변의 벽면에는 여러 부처와 보살의 조각상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조각상의 배경은 작은 불상 조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수백 개의 미니어처 불상은 경이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형체들이 빈틈없이 밀집해 있어 '트라이포포비아(Trypohpobia)' 또는 '밀집 공포'를 자극해 묘한 소름과 징그러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묘한 압도감이야말로 사찰이 의도한 종교적 경외감의 실체일지 모른다.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1층 법당 안을 가득 채운 불상들은 도대체 몇 개나 될까. 이 조각 하나하나에는 신도들의 정성 어린 기부와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다. 불아사(佛牙寺) 건축 당시 펼쳐진 기부 행렬의 정점은 건물 4층에 안치된 부처님 치아 사리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리탑을 순금으로 제작하기 위해 금 모으기 캠페인을 벌였는데, 무려 총 420kg의 순금이 모여 거대한 사리탑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4층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눈으로만 담아야 했다. 하지만 1층 못지않게 사방을 메운 눈부신 황금빛과 압도적인 화려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경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내 눈길을 끈 불교박물관 컬렉션
이 사찰의 1층이 메인 법당이라면, 복층(메자닌) 형태인 샛층에서는 법당 내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는 유명 고승들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어지는 2층과 3층은 불교 박물관으로 운영되며, 4층은 부처님의 치아 사리탑이 안치된 신성한 참배의 장소다. 마지막으로 옥상에 오르면 중앙 전각 안에서 거대한 대형 회전식 경전통(마니차)을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각 층마다 볼거리가 풍성하여 어느 곳 하나 놓칠 수가 없다. 관람을 마친 뒤에는 지하로 내려가 신도와 방문객을 위해 정성껏 준비된 채식 음식을 맛보는 것도 훌륭한 여행 코스가 된다.
여기서는 방대한 전시를 일일이 나열하기보다, 내가 특히 인상 깊게 보았던 유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그럼, 옥상부터 올라가 보자.

옥상 중앙에 자리한 전각은 만불각(萬佛閣, Ten Thousand Buddhas Pavilion)이다. 전각 맨 꼭대기에 솟은 상륜(相輪)은 눈부신 황금빛을 뿜어내며, 이곳이 부처님의 진리를 모신 신성한 구역임을 하늘에 알리고 있다.

전각 내부에는 티베트 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마니차가 자리하고 있다. 그 표면에는 신성한 주문인 비로자나불 진언(만트라)이 산스크리트어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과거 글을 읽지 못하는 신도들도 이 마니차를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다름없는 공덕이 쌓인다고 믿었다. 또한, 전각 사방의 벽면을 빽빽이 채운 수많은 황금빛 작은 불상들은 이곳이 왜 만불각(萬佛閣)인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4층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성스러운 구역이다. 부처님의 치아 사리탑을 향해 조용히 기도를 올리거나, 주변에 앉아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경건하게 참배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한 층 아래인 3층으로 내려가면 석가모니 부처의 생애와 관련된 불상들과 미륵불이 전시되어 있다. 불교미술사 책에서나 보았던 낯익은 조각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이 조각들이 정말 진짜일까' 하는 의구심부터 들기 시작했다. 설명에 따르면 크리스티 경매에서 직접 낙찰받은 간다라 시대(2~3세기) 불상도 소장되어 있다고 하니 유물감정 능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믿어볼 수밖에. 사찰을 창건하고 이 정도 규모의 불교미술관을 조성하기까지 대체 얼마의 재원이 투입되었을지 감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중 나만의 픽 불상을 감상해 보겠다.




사실 대영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고대 불상을 여기서 마주했을 때, 진위를 의심하며 날을 세우기보다는 비록 현대에 조각되었을지언정 그 압도적인 섬세함과 규모로 나를 놀라게 하는 작품에 마음이 더 이끌렸다. 거대한 통나무 하나에 섬세한 조각칼로 부처님의 세계를 온전히 표현해 낸 이 작품은, 박물관 한쪽 구석에 마치 인테리어 장식처럼 세워져 있었음에도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혹시 부위별로 따로 조각한 뒤 감쪽같이 이어 붙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만큼, 조각의 디테일은 정교했다.


이 조각은 부처님의 화신이자 밀교의 주요 명왕 중 하나인 '오추사마명왕(烏樞沙摩明王, Ucchusma)'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그는 마음속의 과도한 성욕(淫心, 음란한 마음)을 지혜의 불꽃(Fire of Wisdom)으로 승화시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음란 마귀를 이긴 오추사마명왕 크크... 조각을 자세히 보면, 부처님의 화신임을 증명하듯 정수리 위에 작은 불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고, 머리 위로는 이글거리는 지혜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사방을 매섭게 노려보는 무서운 얼굴과 여러 개의 팔은, 자비로운 관세음보살과 달리 말 안 듣는 중생들을 엄하게 꾸짖고 혼내려는 듯한 위엄이 느껴진다. 정적인 불상보다 이처럼 역동적이고 직설적인 명왕과 수호신들이 나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일본 불교에서 볼 수 있는 풍신(風神)과 뇌신(雷神)도 여기서 볼 수 있다. 원래는 석가모니 부처를 대척하고 공격하던 존재였는데, 후에 부처님께 감화하여 불교를 수호하는 호법신이 되었다고 한다. 풍신은 바람자루를 메고 있고 손가락은 4개인데 동, 서, 남, 북 방향을 상징한다. 일본의 조각을 따라 만든 Made in China.

다른 전시물에 심취해 있는데, 동행한 남편이 나를 급하게 불렀다. 이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남편의 손가락은 돌아가신 신도들의 위패를 모시는 공간 중앙의 약사여래(藥師如來) 제단을 가리키고 있었다. 크기가 다른 쌍둥이 부처님 때문일까? 아니면 향로 양쪽에 매달린 사자 조각 때문일까? 하지만 남편이 찾아낸 놀라운 발견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향로 옆에 정성스레 올려진 공양물, '바삭한 재래김'. 먼 이국땅 사찰에서 한국어가 적혀있는 것만으로도 반가웠을 텐데, 웅장한 불상 앞에 뜬금없는 포장김의 공양이라니...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복층 구조의 공중 회랑에서 바라본 1층 법당의 모습이다. 이곳은 난간을 따라 사방이 탁 트인 복도 형태로 둘러 있어, 천천히 한 바퀴 돌며 아래쪽 법당의 장엄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동시에 벽면을 따라서는 세계의 유명 고승들을 소개하는 전시가 구성되어 있어 갤러리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난간에는 대나무 발이 쳐져 있어 그 틈새로 1층 법당을 조망할 수 있다. 이곳 회랑 벽면에는 세계의 유명 고승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밀랍인형으로 재현되어 있다. 과거 박물관에서 근무할 때 밀랍 마네킹을 제작해 본 경험이 있는데, 당시 개당 제작 비용이 수천만 원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곳에 전시된 승려가 총 11명이니 인형 제작비에만 자그마치 몇 억 원이 투입된 셈이다. 속눈썹의 각도와 피부의 모공까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불아사(佛牙寺) 방문 후기 - 진위(眞僞)를 넘어 안식으로

불아사(佛牙寺)를 꼼꼼히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의 눈부신 과학 기술은 종교의 교리와 상충되는 수많은 이론을 증명해 냈다. 그 때문에 단순한 관람객의 시선으로 사찰을 구경하는 이들은 부처님의 사리를 허구라 치부할 수도 있고, 전시된 조각품들을 모조품이라 판명할 수도 있다. 혹은 화려한 장식들을 신도들의 고혈로 빚어낸 결과물이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은 절대자라는 존재에게 기대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나약한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문득 얼마 전 시청한 KBS 다큐멘터리 《성물》의 1부 '언약' 편에 나온 에티오피아 소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작 열세 살인 크브롬이라는 어린이는 내전과 가난으로 얼룩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해발 2,580m 절벽 위에 위치한 아부나예마타구 교회로 향하며 사제의 꿈을 키운다. 신이 버린 땅이 아닐까 싶을 만큼 험준한 곳에서, 소년은 절벽을 오르며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 설렌다고 고백한다. 가족이 무사함에 감사하고, 사제가 되면 사람들에게 배움을 나누며 좋은 길로 이끌고 싶다는 소년의 순수한 서원.
이곳 불아사(佛牙寺)에서 간절히 머리를 숙이는 신도들의 마음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부처님 치아의 진위 논란을 언급했듯, 나 또한 전시물에 대한 의구심과 화려함에 압도되어 잠시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사찰은 그저 화려한 건물이 아니다. 삶의 거친 풍파를 막아주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신성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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