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중심에서 얼마 안 가면 '리틀인디아(Little India)'라는 인도계 커뮤니티의 심장부이자 이국적인 색채가 풍기는 곳이 있다. 이곳을 걷다 보면 화려한 숍하우스와 힌두교 사원, 쇼핑몰 등이 있고, 골목마다 펼쳐지는 활기찬 시장에서는 신선한 꽃을 비롯한 과일, 인도 전통 의류 및 공예품 등을 팔고 있다. 강렬한 향신료 냄새와 지저분한 골목, 낯선 인도인들 마주치면 이곳이 싱가포르가 맞나 하는 의심과 함께 잠시 인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사는 인도계 이민자는 전체 인구의 약 7.4%를 차지하며 3대 주요 민족(중국계 74%, 말레이계 13.5%)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들은 모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가면서도 싱가포르에서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나는 인도사람들은 '힌두교'를 믿고 '카스트제도'로 신분을 나누고, '소'를 숭배하고 '카레'만 먹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편견을 깨고 인도계 공동체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인디언 헤리티지 센터(Indian Heritage Centre)'를 먼저 방문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앞으로 다루게 될 힌두교사원이나 다른 역사적 공간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https://maps.app.goo.gl/PeifHSVAabh4qMWB6
Indian Heritage Centre · 5 Campbell Ln, 싱가포르 209924
★★★★★ · 문화유산 박물관
www.google.com


2015년 개관한 이 센터는 서인도에 있는 계단식 우물 바올리(Baoli)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으로 지어졌는데, 2011년 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된 아이디어다. 계단식 기하학적 패턴의 미적인 아름다움 뿐 아니라, '우물'이 갖는 공동체의 공간을 상징하고 있다.


건물의 외형은 낮에는 북적이는 숍하우스(Shophouse)의 풍경을 거울처럼 담아내고, 밤에는 조명이 켜지면서 '인도 공동체의 빛나는 등불'을 상징하는 멋진 경관이 펼쳐진다.

이 센터는 싱가포르 인도인 공동체 특히 인도 남쪽 타밀나주(Tamil Nadu) 주 출신의 이주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인도인이 처음 싱가포르에 도착한 기록은 1819년 스탬퍼드 래플스 경(Sir Stamford Raffles)을 수행했던 벵골 보병대 래시카(Lashkar)에서 비롯된다. 이후 싱가포르의 기반시설 구축을 위해 인도 죄수들이 싱가포르에 대거 유입되었으며, 무역항으로 발전하며 상인과 노동자가 이주하였고. 이후 싱가포르가 더욱 발전하면서 인도인 사업가, 교사 등 엘리트들의 유입도 활발해졌다.
인도와 관련된 최초의 유물
인도와 관련된 기록이 아닌 유물로 싱가포르에 유입시점을 짐작해 보자면,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28년 싱가포르 포트캐닝 힐(Fort Canning Hill)에서 발견된 금제 칼라(Kala) 장식 팔찌는 당시 인도네시아 동자바 왕국인 마자파히트 제국(Empire of Majapahit)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칼라(Kala)는 인도 사원 건축에 널리 쓰이는 '영광의 얼굴'이란 뜻의 '키르티무카(Kirtimukha)'를 뜻하는 상서로운 문양으로, 인도의 영향력이 이곳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를 위한 무리한 연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인도의 영향력이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인도와 종교 _ 남인도 타밀 지역 촐라 왕조(Chola Dynasty)의 힌두교 조각
이 전시에서는 인도계 싱가포르인의 종교를 '힌두교(Hinduism)'로 한정 짓고 있지 않다. 우선 힌두교와 불교는 동남아시아에 전파된 후 2000년이 넘으면서, 서로 공존하고 민속 신앙과 융합되었다. 또한 이슬람 상인 수피(Sufi) 선교사들이 8세기부터 동남아시아에 도착해서 12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며 이슬람교(Islam)의 영향이 인도 남부까지 퍼져 나갔다. 또한, 15세기 인도 북부 펀자브(Punjab) 지역에서 기원한 시크교(Sikhism)도 인도계 공동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는 이슬람교와 시크교의 영향에 대한 내용도 다루지만, 타밀지역을 중심으로 9세기~13세기에 전성기를 누린 촐라왕조(Chola Dynasty)의 힌두 신상을 전시 서두에 소개하고 있다. 해상 강국이었던 촐라왕조가 동남아시아에 큰 영향력을 끼쳤고, 싱가포르 인도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타밀인들의 정체성이 촐라왕조 시대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힌두교의 중요한 신상(神像)을 통해 종교와 인도 남부의 조각양식을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한다.

사다시바(Sadashiva)는 영원한 시바(Eternal Shiva)라는 뜻으로 시바를 표현한 조각상이다. 시바신은 우주의 창조, 유지, 파괴, 은폐, 은총이라는 다섯 가지 신성한 행위를 주관한다. 그래서 다섯 개의 얼굴이 동, 서, 남, 북 및 위(하늘)의 방향에 조각되며, 이는 우주공간의 5 원소(대지, 물, 불, 공기, 에테르)를 상징하기도 한다. 하늘을 향하고 있는 다섯 번째 얼굴은 조각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조각 뒷면에도 네 번째 얼굴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이마에는 제3의 눈이 있으며, 두 손에는 삼지창(Trishula)과 도끼(Parashu)를 들고 있고, 앞쪽의 손은 파손되어 손실된 상태이다.
힌두교 사원은 주신으로 모시는 신의 이름을 따서 사원이름을 명명한다. 싱가포르에서 시바 신을 주신으로 모시는 사원에는 스리 시반 템플(Sri Sivan Temple), 스리 만마타 카루네슈바라 템플 (Sri Manmatha Karuneshvarar Temple), 스리 아라사케사리 시반 템플 (Sri Arasakesari Sivan Temple) 등이 있다.

위의 사진은 서 있는 시바와 파르바티 (Standing Shiva and Parvati)로 남인도 지역에서 제작된 신상이다. 왼쪽은 힌두교의 주신인 시바(Shiva)이고 그 옆은 그의 배우자 파르바티(Parvati) 여신인데, 힌두교 축제 때 수레에 싣고 거리로 행진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시바의 네 개의 팔은 우주의 힘을 상징하는데, 한 손에는 삼지창을 다른 손에는 방황하는 마음을 다스린다는 의미의 사슴을 들고 있다. 이 신상은 밀랍 주조법(Lost-wax)이라는 전통 제작기법으로 만들었다. 밀랍으로 정교한 모델을 만든 뒤 진흙을 입혀 굳히고, 열을 가해 밀랍을 녹인 후 그 공간에 금속을 부어 만든다. 진흙 틀을 깨야 작품이 나오기 때문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독창적인 작품이 된다.

네 개의 팔을 가진 비슈누(Vishnu) 조각상은 연꽃 받침 위에 균형 있게 서 있다. 창조된 우주의 질서와 도덕(다르마)을 유지하는 신으로 세상이 혼란에 빠지면 아바타(화신)의 모습으로 내려와 세상을 구한다. 광배에 있는 위쪽 두 손에는 소라껍데기(Shankha)와 원반(Chakra)을 들고 있고, 앞의 두 손은 두려움을 없애는 손동작(Abhaya hasta)을 취하고 있다. 이 손은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의 입상에서 볼 수 있는 시무외인(施無畏印)과 같은 의미다. 높은 원통형 왕관은 동남아시아의 비슈누 형상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이다.
화강암의 재질로 제작된 이 신상은 남인도의 전통적인 조각기법을 따르고 있는데, 우리나라 불상과 재질이나 조각양식에서 많이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타밀 지역과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고 민족 간의 외모도 많이 다르지만, 언어의 유사성(어순, 비슷한 단어(엄마, 아빠 등))이나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문화, 제기차기나 공기놀이, 비석치기 등 전통놀이의 유사성, 김수로 왕과 결혼한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인도에서 왔다는 역사적 가설 등을 통해 두 지역의 유사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평행이론으로 봐야 할지 상호 교류의 결과이거나 한 민족이 이동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롭다.
싱가포르에서 비슈누(Vishnu)를 주신으로 모시는 가장 대표적인 사원은 리틀 인디아에 위치한 스리 스리니바사 페루말 사원(Sri Srinivasa Perumal Temple)이다.

시바(Shiva)와 그의 아내 파르바티(Parvati)의 아들로 알려진 가네샤(Ganesha)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겨진다. 그가 코끼리의 머리를 하게 된 연유는 신화로 잘 알려져 있다. 엄마인 파르바티가 목욕하는 동안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밖에서 돌아온 아버지 시바를 알아보지 못하고 앞을 가로막자, 분노한 시바가 가네샤의 머리를 베어버렸고, 나중에 아들임을 알고는 가장 먼저 지나가던 코끼리의 머리를 붙여주었다는 이야기다.
싱가포르 카퉁(Katong) 지역에 위치한 스리 센 파가 비나야가르 사원(Sri Senpaga Vinayagar Temple)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 사원으로 가네샤(Ganesha)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인도의 2대 서사시 - 라마야나(Ramayana)와 마하바라타(Mahabharata)
주인공 라마(Rama) 왕자의 파란 만장한 모험담을 담은 라마야나(Ramayana)는 완벽한 인간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으며, 처절한 왕위 찬탈 전쟁의 기록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는 복잡한 세상 속 삶의 지혜를 보여준다. 이 두 서사시에 나오는 다양한 스토리는 문학, 사원을 장식한 부조, 그림자 인형극 그리고 다양한 공연예술에 소환된다.


인도의 대서사시인 라마야나(Ramayana)의 스토리가 태국판으로 변형된 이야기로, 숲의 괴물과 하누만의 대결을 보여주는 조각상이다. 싱가포르에서도 원본보다 더 다이내믹한 전투 장면을 선호해서 하누만이 숲의 온갖 요괴와 괴물을 소탕하는 에피소드는 매우 인기가 높다.
남인도인의 생활 속 종교 _ 집안의 안녕과 부의 과시

약 5000개의 세부 조각들로 구성된 이 정교한 문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남인도 체티나드 지역의 주거 건축에 사용된 전형적인 형태이다. 이 지역의 상인 공동체는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로 현대적 은행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부터 신용 결제 시스템(Hundi)으로 자금을 융통하고, 인도의 주요 은행들을 설립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부와 지위에 걸맞게 궁궐 같은 대 저택을 지었는데, 그 화려함을 이 체니타드 문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싱가포르로 넘어와 금융분야에 많이 진출하게 되었다.

문에 장식된 요소에는 힌두교의 신들(시바와 파르바티, 가네샤, 비슈누 등), 기타 인물들(문지기, 꽃다발을 든 사람, 전사 등)과 상서로운 동물과 새들이 있다. 이 문은 외부 세계로부터 신성한 개인의 공간을 분리하는 경계가 될 뿐만 아니라, 신화의 모티브를 장식함으로써 집안의 구성원을 보호하는 벽사의 의미도 담고 있다.
인도인의 주요 축제 _ 디파발리(Deepavali/Diwali)와 티미티(Theemithi)
싱가포르의 인도공동체는 힌두교 전통과 남인도 타밀 문화를 바탕으로 일 년 내내 다채로운 축제가 펼쳐진다. 싱가포르 정부가 공휴일로 지정한 가장 큰 축제는 디파발리(Deepavali)로 매년 가을(보통 10~11월 사이)에 열린다. 힌두 신화에서 크리슈나(Krishna) 신이 사악한 폭군 나라카수라(Narakasura)를 물리친 날을 기념하여 '어둠을 이긴 빛의 승리'를 상징하는 '빛의 축제'이다. 이 시기엔 리틀인디아의 세랑군 로드(Serangoon Road)를 따라 수만 개의 화려한 전등이 켜지고, 집 입구에는 부와 행운, 번영을 상징하는 라크슈미 여신(Lakshmi)을 집으로 맞이하기 위해 랑골리(Rangoli)라는 기하학적 문양을 그려 바닥을 꾸민다.


디파발리 일주일 전에는 티미티(Theemithi) 축제라 불리는'불 걷기(Fire-walking)' 의식이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스리 마리암만 사원(Sri Mariamman Temple)에서 열린다. 힌두 대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의 여주인공인 드라우파디(Draupadi) 여신을 기리는 것뿐만 아니라, 마하바라타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가 크다. 또한, 전쟁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를 산 제물(Human Sacrifice)로 바친 아라반(Aravan)은 참수 후에도 머리는 살아있어서, 높은 곳에서 18일간의 전쟁과 승리를 목격했다고 하는데, 이 일화도 축제에 되새긴다.

이 아라반(Aravan)상은 불길 걷기 의식에 거행되는 행진 행렬의 선두에서 길을 여는 역할을 한다. 신자들은 맨발로 뜨거운 숯 위를 건너는 장엄한 순간에 아라반 신이 직접 지켜보게 함으로써 곧 마주할 불길을 건널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거리 벽화로 유명한 입유충(Yip Yew Chong)의 그림으로 티미티 축제를 잘 표현했다. 남자신자들이 맨발로 불 구덩이 위를 걷고 있는 장면이다.
그 밖에도 고행과 감사의 축제인 타이푸삼(Thaipusam)과 힌두교의 위대한 세 여신(Duran, Lakshmi, Saraswati)을 기리는 축제인 나바라트리(Navaratri) 등 많은 축제들이 있다. 나바라트리 축제 때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와 싱가포르에서는 '골루(Golu)'라고 불리는 계단식 선반에 수많은 인형과 신상들을 장식해 손님을 초대하기도 한다.

나바라트리(Navaratri) 축제에 홀수로 제작된 골루(Golu)에 다양한 인형을 전시했는데, 아래단부터 위로 올라갈 수로 상위계급의 인형이 배치된다. 맨 윗단은 신들의 형상이, 중간에는 성인이나 왕족, 아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모습이 보인다.

싱가포르의 인도인 정착과 국가에 대한 기여
인도인의 싱가포르 유입은 1819년 싱가포르 개항과 궤를 같이한다. 싱가포르 식민지 시대 건축물과 인프라는 인도인 노동자의 손길이 깊게 배어 있다. 숲을 개간하고 정부청사, 병원, 다리, 항구 등 주요 토목의 노동력을 제공했다. 이들 중에는 상당 수가 숙련된 목수, 벽돌공, 대장장이였다. 또한 플랜테이션을 위해 많은 인도인들이 이주해서 사탕수수, 타피오카, 고무 농장 등에서 일했고 일부는 농장을 소유하고 경영하기도 했다.

인도 죄수출신 바와지 라자람(Baawajee Rajaram)은 세인트 앤드류 성당의 설계에 참여했고, 몽크스 힐의 방갈로 설계도를 직접 그렸다. 또한 공공사업에 쓰일 벽돌도 많이 제작해서 말라카까지 수출했다고 하는데, 위 사진의 벽돌은 착한 목자 성당(Cathedral of Good Shepherd) 개보수 때 발굴된 벽돌이라고 한다.
1881년 싱가포르 치안 강화를 위해 인도계 시크교도 경찰대(Sikh Police Contingent)가 설립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해체되면서 현재 시크교 커뮤니티의 뿌리가 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영어교육을 받은 인도인들이 고용되면서 행정관리, 의료 종사자, 교사 등으로 활약했으며, 20세기 중반 이후 엘리트 직업군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국가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였다.

인디언 헤리티지 센터에 전시된 모든 내용을 다룰 수는 없지만, 인도의 종교 특히 힌두교와 인도인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을 간추려서 정리해 보았다.

앞으로 싱가포르의 힌두교 사원을 방문하기 위해서 인디안 헤리티지 센터가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시바신이 타고 다닌 신성한 황소 난디(Nandi)는 늘 힌두교 사원 높은 담장 위에서 도도한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난디(Nandi)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소원을 말해보자. 시바신은 깊은 명상에 빠져 있을 때가 많기 때문에 우리 기도를 못 들을 수 있으니, 난디에게 소원을 빌고 시바신에게 '꼭' 전해달라고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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