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 서재

[말레이시아] 그들의 이슬람은 뭐가 다를까?

by 된장언니 2026. 3. 27.

이슬람교 하면 우리는 흔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엄격한 와하비즘이나 이란의 시아파 신정체제를 떠올린다. 그러나 전 세계 무슬림의 약 15%가 거주하는 동남아시아의 이슬람은 중동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 인구 3,300만 명의 약 65%가 무슬림인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연방 종교로 규정하면서도 세속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중국계(23%)와 인도계(7%) 등 비무슬림 소수민족과 함께 다원주의 사회를 구성해 왔다. 

말레이시아 이슬람

부미푸트라(Bumiputera)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말로, 직역하면 '흙의 자식(Son of the Soil)' 또는 '본토박이'라는 뜻이다. 말레이시아 시민권자 중에서 말레이계 무슬림과 보르네오 섬 등에 거주하는 토착 원주민들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말이다. 


말레이시아의 이슬람은 인도네시아의 느슨한 이슬람 전통과 브루나이의 보수적 군주제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며, 끊임없이 그 균형점을 찾아왔다. 15세기 말라카 술탄국 시절부터 뿌리내린 이슬람은 영국 식민지배를 거치며 근대화되었고, 독립 이후에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1970년대 이후 중동으로부터 유입된 보수적 이슬람 사조와 전통적 온건함 사이에서 긴장을 겪어왔다.

 

말레이시아 무슬림들의 일상은 중동에 비해 훨씬 유연하다. 이슬람의 다섯 기둥(Five Pillars) - 신앙 고백, 기도, 자선, 금식, 성지순례 - 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실천 방식은 현대 생활과 타협한다. 히잡을 쓴 여성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할랄 인증을 받은 맥도날드에서 비무슬림과 무슬림이 함께 식사하며, 이슬람 은행이 글로벌 금융 허브로 성장하는 이곳. 말레이시아의 이슬람이 중동의 그것과 어떻게 다르며, 그 차이가 말레이시아인들의 일상, 정치 구조, 경제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알아보려 한다.  

 

1.  기도 (솔랏, Solat) : 의무와 현실의 간극

무슬림들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해 기도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다섯 번의 기도(솔랏, Solat)모든 무슬림의 의무다. 새벽, 정오, 오후, 일몰 직후, 밤 이렇게 5번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한다. 말레이시아의 모든 모스크에서는 매 기도시간마다 아잔(Azan, 기도 호출)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현대 도시 생활에서 모든 기도를 정확히 지키기는 어렵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정오 기도를 하고, 오후 기도는 퇴근 후 집에서 하거나 저녁 기도와 합쳐서 바친다(이슬람 율법은 특정 상황에서 기도를 합치는 것을 허용). 새벽 기도는 가장 지키기 어려운 의무로, 많은 도시 무슬림들이 이를 놓친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모든 쇼핑몰, 공항, 대학, 병원, 사무실 건물에는 '수라우(Surau)'라는 작은 기도실이 마련되어 있다. 기도실에는 세정 시설(기도 전 씻는 우두/Wudhu를 위한), 기도 매트, 코란, 키블라(메카 방향) 표시가 갖춰져 있다. 쇼핑을 하다가, 영화를 보다가, 회의 중간에 잠시 들러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금요일 정오의 집단 기도(Solat Jumaat) 성인 남성 무슬림의 의무이며,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한 예배 시간이다. 이날 오후 12시부터 2시 사이,  많은 남성 무슬림들이 전통 모자인 '송꼭(Songkok)'을 쓰고 지역 모스크에 모여 합동 기도를 드린다. (많은 직장에서는 금요일 점심시간을 길게 주어 직원들이 모스크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대형 모스크 주변에는 교통 체증이 발생하고, 늦게 도착해서 모스크 밖 주차장이나 거리에 기도 매트를 깔고 기도하는 모습은 이들에게는 일상이다. 

말레이시아 모스크에서의 집단 기도 (출처: 시티투어닷컴)

그러나 참여율은 개인의 신앙심에 따라 다르다. 경건한 무슬림은 절대 빠뜨리지 않지만, 덜 엄격한 이들은 가끔 참석하거나 아예 가지 않기도 한다. 이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동부 해안의 보수적인 주(끌란딴, 뜨렝가누)에서는 금요 기도 불참자는 사회적 압력을 받고, 쿠알라룸푸르 같은 대도시에서는 개인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덜 신경 쓰는 분위기다.

호텔, 쇼핑몰 등의 기도실 수라우(Surau)

 

2.  라마단 : 신성함과 상업주의의 공존

라마단(Ramadan, 말레이시아에서는 Puasa라고도 함)은 이슬람력 9번째 달로, 모든 성인 무슬림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해야 한다. 음식, 물, 담배, 성관계가 금지된다. 이는 자기 절제, 가난한 자에 대한 공감, 영적 성장을 위한 시간이다.


다른 이슬람 국가들처럼 말레이시아에서도 라마단은 국가적 행사다. 금식 시작은 정부가 공식 발표하고, TV와 라디오는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대부분의 무슬림이 금식을 지키며, 공개적으로 먹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많은 말레이 식당들이 낮 시간에 문을 닫거나 커튼을 쳐서 금식하지 않는 사람들(여행자, 임산부, 병자, 비무슬림)만 이용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비무슬림이 다수인 지역, 특히 중국계가 많은 페낭이나 이포 같은 도시에서는 중국 식당들이 정상 영업한다. 법적으로 비무슬림은 금식할 의무가 없으며, 무슬림도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막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연성이 다민족 사회 말레이시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독특한 빠사르 라마단(Pasar Ramadan)' 또는 라마단 바자르가 있다. 해질녘 금식을 깨는 이프타르(Iftar, 말레이시아에서는 Berbuka Puasa) 식사를 위한 이 야시장은 라마단 한 달 동안 전국 각지에 등장한다. 수백 개의 노점이 늘어서 전통 음식, 음료, 디저트를 판다. 나시 아얌(Nasi Ayam), 사테(Satay), 므르타박(Murtabak), 쿠이(Kuih, 전통 과자), 에어 바투 참뿌르(Air Batu Campur, 빙수), 테 타릭(Teh Tarik) 등 수백 가지 음식이 제공된다.

라마단 바자르 (https://www.tatlerasia.com/dining/food/6-great-things-about-ramadan-bazaars-in-malaysia)


말레이시아의 야시장 '라마단 바자르'는 종교 의무를 상업적 축제로 전환시킨 독특한 현상이다. 가족들이 함께 시장을 돌며 음식을 고르고, 친구들과 만나 사진을 찍는다. 비무슬림들도 호기심에 혹은 맛있는 음식을 사러 온다. 일부 종교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라마단의 영적 의미를 훼손하는 과도한 상업화라고 비판하지만, 대부분의 말레이시아인들은 이를 즐긴다.  (싱가포르에도 이 라마단 바자르가 열린다.)

라마단 바자르 (https://www.malaymail.com/news/malaysia/2025/03/14)


기업들도 라마단을 활용한다. 슈퍼마켓은 '라마단 세일'을 하고, 호텔들은 호화로운 이프타르 뷔페를 제공한다(1인당 100링깃, 약 25달러 이상). TV 광고는 라마단 테마로 가득 차고, 기업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자선 행사를 벌인다. 이슬람의 자선 정신과 자본주의적 마케팅이 기묘하게 결합된 것이다.

자카트(Zakat)는 이슬람의 다섯 기둥 중 하나로, 부유한 무슬림이 재산의 2.5%를 가난한 이들에게 기부하는 의무다. 말레이시아는 이를 현대적으로 제도화했다. 각 주에는 자카트 징수 및 분배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이 있다. 무슬림들은 온라인, 은행 이체, 급여 공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카트를 낼 수 있다. 징수된 자금은 가난한 무슬림, 자카트 관리자, 개종자, 빚진 자, 여행자, 이슬람 선교 등 코란에 명시된 8가지 범주에 분배된다. 2022년 말레이시아 전국에서 징수된 자카트는 약 40억 링깃(10억 달러)에 달했다. 또한, 라마단 기간에는 자카트 피트라(Zakat Fitrah)라는 특별 자선도 있다. 이는 금식을 마친 모든 무슬림이 가난한 이들이 하리 라야를 축하할 수 있도록 내는 소액 기부다(보통 1인당 7링깃, 약 1.5달러). 이는 이슬람의 사회적 연대 정신을 보여준다.


라마단이 끝나면 하리 라야 아이딜피트리(Hari Raya Aidilfitri) 축제가 시작된다. 이는 말레이시아 최대 명절로, 2일간 공휴일이지만 실제로는 1주일 이상 축하 분위기가 이어진다.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재회하고(이를 'Balik Kampung'이라 함), 새 옷을 입고, 전통 음식을 나눠 먹는다. 어린이들은 '두잇 라야(Duit Raya)'라는 세뱃돈을 받는다. 우리나라 설명절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리 라야 아이딜피트리(Hari Raya Aidilfitri) 축제 (https://www.asiakingtravel.com/blog/malaysia-hari-raya-aidilfitri-festival.html)

 

3.  복장 (아우랏, Aurat) : 다양성 속의 정체성

말레이시아 거리를 걷다 보면 무슬림 여성 복장의 놀라운 다양성을 목격한다. 얼굴까지 가리는 검은 니캅(Niqab)을 착용한 여성부터, 화려한 색상의 히잡을 패셔너블하게 두른 여성, 머리만 느슨하게 가린 여성, 그리고 전혀 스카프를 쓰지 않은 여성까지 공존한다. 이 스펙트럼 자체가 말레이시아 이슬람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아우랏(Aurat)과 아바야(Abaya)
: '아우랏'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타인(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함부로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신체의 범위를 의미하고, '아바야'는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해 걸치는 '실제 옷(수단)'을 말한다.

무슬림이라면 전 세계 어디에 살든 이 아우랏 규정을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1) 남성의 아우랏 : 배꼽부터 무릎까지입니다. (그래서 보수적인 무슬림 남성들은 반바지를 잘 입지 않거나, 입더라도 무릎을 덮는 긴 반바지를 입습니다.)
2) 여성의 아우랏 :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몸 전체입니다. 머리카락, 목, 팔, 다리는 물론 몸의 굴곡(실루엣)이 드러나지 않도록 헐렁하게 가려야 합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말레이시아 도시 여성들 사이에서 히잡(말레이시아에서는 'Tudung'이라 부름)은 흔하지 않았다. 당시 사진을 보면 말레이 여성들이 서구식 복장이나 전통 의상인 바주 끄바야(Baju Kebaya)를 입고 머리를 드러낸 채 활동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히잡은 주로 나이 든 여성이나 시골 지역, 종교 행사에서나 볼 수 있었다.

변화는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란 혁명(1979), 중동 오일 붐으로 인한 아랍 국가들의 영향력 증대, 그리고 말레이시아 내부의 이슬람 부흥 운동(Dakwah Movement)이 결합하면서 히잡 착용이 급증했다. 특히 대학 캠퍼스에서 이슬람 학생 단체들이 히잡 착용을 무슬림 여성의 정체성과 경건함의 표시로 장려했다. 마하티르 모하맛(Mahathir Mohamad) 총리(1981-2003)는 말레이 무슬림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이슬람화 정책을 추진했다. 정부 기관, 학교, 공기업에서 히잡 착용이 장려되었고, 국영 TV 아나운서들도 히잡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택이었지만, 점차 사회적 규범이 되어갔다.

2000년대 들어 히잡 착용률은 더욱 높아졌다. 현재 말레이시아 무슬림 여성의 약 70-80%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착용률이 높다. 히잡을 쓰지 않는 것은 여전히 합법이고 개인의 선택이지만, 특히 보수적인 지역이나 공공 부문에서는 사회적 압력이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히잡이 보편화되면서 역설적으로 '패션 히잡'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젊은 여성들은 히잡을 종교적 의무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개성과 스타일을 표현하고자 한다.

말레이시아의 히잡 (Tudung)은 중동의 검은색 아바야 혹은 이란의 차도르와는 완전히 다르다. 화려한 색상, 다양한 소재(실크, 쉬폰, 코튼), 복잡한 스타일링, 장식이 특징이다. 히잡 패션 산업은 수십억 링깃 규모로 성장했다. 나일라야(Naelofar), 덕스카프(Duckscarves), 바왈 익스클루시브(Bawal Exclusive) 같은 로컬 브랜드들이 인기를 끌고, 유명 디자이너들이 히잡 컬렉션을 출시한다. 말레이시아 히잡 패션은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심지어 중동까지 수출된다.

말레이시아 인터넷 쇼핑에서 판매하는 히잡, Tudong (https://leanencloset.com/)


이는 보수적 이슬람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아바야는 검은색이어야 하고, 장식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이란에서는 화려한 히잡이 도덕 경찰의 단속 대상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히잡이 종교적 의무와 개인적 표현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이슬람 국가들의 다양한 히잡들 (https://www.acc.go.kr/main/index.do)

 

남성 복장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전통 의상 바주 믈라유(Baju Melayu)는 긴 소매 셔츠와 바지로 구성되며, 허리에 '사뭉(Sampin)'이라는 장식 천을 두르고, 머리에 송콕(Songkok)이라는 벨벳 모자를 쓴다. 이는 금요 기도, 결혼식, 하리 라야, 공식 행사에서 착용된다.

(왼쪽)바주 믈라유 (https://www.shutterstock.com/), (오른쪽) 주바 (https://www.zalora.co.id/s/men)


그러나 일상에서 말레이시아 남성들은 서구식 복장을 입는다. 바지, 셔츠, 청바지, 티셔츠가 일반적이다. 중동의 토브(Thobe), 디샤샤(Dishdasha), 칸두라(Kandura) 같은 아랍 전통 의상을 입는 말레이시아인은 극소수다. 주로 중동에서 유학하거나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 또는 극단적 보수주의자들만 아랍 복장을 선호한다.


최근 일부 젊은 무슬림 남성들 사이에서 '주바(Jubah)'라는 긴 가운 스타일 의상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아랍 스타일과 말레이 전통을 혼합한 것으로, 특히 종교적으로 경건한 젊은이들이 선호한다. 그러나 여전히 주류는 아니다.

4.  엄격하지만 일상화된 식습관 : 할랄 (Halal)

말레이시아 음식 문화는 이슬람의 할랄(Halal, 허용된) 규정과 다민족 사회의 미식 전통이 융합되어 아주 매력적이다. 할랄은 단순히 '허용된'이라는 뜻으로, 이슬람 율법에 따라먹을 수 있는 음식을 의미한다. 반대 개념은 하람(Haram, 금지된)이다.

  • 금지된 음식 : 돼지고기와 알코올(술)은 철저히 금지된다. 또한 피, 제대로 도축되지 않은 동물, 육식 동물과 맹금류, 이미 죽은 동물(Carrion)은 명확히 금지되어 있다. 이슬람은 알코올을 엄격히 금지한다. 코란은 술을 '사탄의 작품'이라 부르며, 모든 취하게 하는 음료를 하람으로 규정한다. 말레이시아 무슬림에게 알코올 섭취는 샤리아 법원에서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다.
  • 할랄 인증 제도의 보편화 : 할랄 도축(Zabihah)은 특정 방식을 따라야 한다. 날카로운 칼로 목의 경동맥을 빠르게 절단하고, 피를 완전히 빼내며, 도축 시 알라의 이름을 외쳐야 한다. (동물은 불필요한 고통을 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정부 기관(JAKIM)에서 할랄 인증을 꼼꼼하게 관리하며, 식당, 식품 제조업체, 심지어 화장품과 의약품까지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KFC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모두 이 할랄 인증을 받아 운영된다.   (할랄 음식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하겠다.)

각종 할랄 인증들

 

그러나 비무슬림(중국계, 인도계)에게는 알코올이 합법이다. 슈퍼마켓에는 맥주, 와인, 증류주 코너가 있고(보통 별도 구역에), 중국 식당과 인도 식당에서는 술을 판다. 쿠알라룸푸르의 부킷 빈탕(Bukit Bintang) 같은 유흥가에는 바와 클럽이 즐비하다. 법적으로 무슬림은 이런 장소에 출입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부 무슬림들이 은밀히 술을 마신다. 특히 젊은 세대나 덜 경건한 이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종교 당국은 가끔 바를 급습해 무슬림을 단속하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흥미로운 타협은 '무알콜 맥주'의 인기다. Barbican, Fayrouz 같은 브랜드는 맥주 맛을 내지만 알코올이 0%다. 무슬림들이 맥주의 맛과 사회적 경험을 즐기면서도 종교적 금기를 어기지 않을 수 있다. 커피와 차 문화는 매우 발달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주요 커피 생산국은 아니지만, 독특한 커피 문화를 가지고 있다. '코피(Kopi)'라 불리는 전통 커피는 진하고 달며, 연유를 넣어 마신다.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체인도 인기지만, 로컬 커피숍 '코피티암(Kopitiam)'이 여전히 사랑받는다.

 

5.  일상을 규율하는 규범 : 아닷(Adat)과 샤리아(Syariah)의 이중 체계

말레이시아 무슬림들의 삶은 두 개의 규범 체계 위에 서 있다. 하나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Syariah)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 관습법인 아닷(Adat)이다. 결혼, 상속, 장례와 같은 중요한 생애 의례에서 이 둘은 미묘하게 협상하며 공존한다. 말레이시아 무슬림들은 기본적인 뼈대와 규율은 샤리아(이슬람)를 따르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이웃과 정을 나누는 방식에서는 아닷(전통 관습)을 유연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혼 : 율법으로 결합하고, 관습으로 축하한다
  •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영역 : 종교 지도자(이맘) 앞에서 혼인 서약을 맺고 서류에 서명하며, 신랑이 신부에게 이슬람식 지참금(을 건네는 절차이다. 간소하게 모스크에서 진행한다. 
  • 아닷(전통 관습)의 영역 : 하지만 말레이인들에게 '진짜 결혼식'은 서약 이후에 열리는 아닷 의식이다. 왕과 왕비처럼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단상에 앉아 하객들에게 노란 쌀과 장미수를 맞으며 축복을 받는다. 결혼식 전날 신부의 손발에 헤나를 칠하는 '말람 브리나이'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이슬람 율법에는 전혀 없는 힌두·불교 왕실 문화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상속 : 율법의 원칙 그리고 관습 사이의 유연한 타협
  • 샤리아의 영역 : 이슬람 상속법인 파라이드에 따르면, 남성 상속자가 여성 상속자보다 2배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 원칙이다.
  • 아닷의 영역 : 말레이시아의 일부 지역, 특히 느그리 슴빌란(Negeri Sembilan) 주에서는 미낭카바우(Minangkabau) 전통의 모계 사회 관습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기서는 토지와 가옥이 여성 계보로 상속되는 경우가 많다. 
장례 : 종교의 엄숙함 뒤에 따르는 공동체의 위로
  • 샤리아의 영역 : 이슬람 율법에 따라 고인이 숨을 거두면 지체 없이(보통 24시간 이내에)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하얀 천(카판)으로 감싸 메카 방향으로 매장한다. 이때 알라의 정해진 뜻에 순응해야 하므로 가슴을 치거나 큰 소리로 오열하는 것은 금지되며, 장례 절차 자체는 율법을 엄격히 따라 아주 신속하고 절제된 상태로 치러지게 된다.
  • 아닷의 영역 : 장례식 이후에는 철저히 아닷의 시간이 펼쳐진다. 고인이 돌아가신 후 3일, 7일, 40일, 100일째 되는 날에 이웃과 친척이 모여 코란을 읽고 음식을 나누는 추모 모임(탈릴)을 가진다. 일부 아주 엄격한 이슬람 학자들은 이 잔치가 불교의 49재 등에서 유래한 이단적 관습이라며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말레이 사회에서는 남은 가족의 슬픔을 달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필수적인 전통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