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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는 싱가포르

[싱가포르] 페라나칸 박물관(Peranakan Museum)-페라나칸 문화 이해하기

by 조타 2026. 2. 17.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세계 무역이 교차하는 지리학적 특성때문에 많은 상인들과 여행자들의 활동무대가 되었고, 제국주의의 중요한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외래인들이 이 지역 토착민들과 결혼하고 이곳에 정착하며서 페라나칸(Peranaka)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그들의 공동체를 키워나갔다.

이들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싱가포르 아르메니안 스트리트(Armenian Street)에 위치한 페라나칸 뮤지엄(Peranakan Museum)에 방문했다. 그리고 페라나칸의 문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한다.
 

https://maps.app.goo.gl/mt7Nuns22BoZG4E36

 

Peranakan Museum · 39 Armenian St, Singapore 179941

★★★★★ ·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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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지어진 타오난 학교(Tao Nan School) 건물을 싱가포르 정부에 양도하면서 박물관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타오난학교는  중국계 페라나칸의 중국어교육을 위해 설립된 곳으로 지금은 마린 퍼레이드(Marine Parade)에 있다.
 

(왼쪽)Siam House의 Tao Na School, (오른쪽) 현재의 Peranakan Museum 전경

 

페라나칸(Peranakan) 이라는 용어 : 싱가포르가 유독 강조하는 용어

 
페라나칸(Perankan)은 현지에서 태어났으나, 다른 곳의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을 의미하는 말레이어이다. 말레이어의 어근인 anak(아이)에서 파생된 형용사로 "태어난"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페라나칸은 "페라나칸 싱가푸라"라고 한다. 이런 맥락이라면,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페라나칸은 '페라나칸 말레이'라고 칭할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바바뇨냐(Baba-Nyona)또는 해협중국인(Straits Chinese)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곳에 정착한 중국계 혼혈인들만을 페라나칸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중국 뿐 아니라, 인도, 아랍, 인도 등의 민족문화와 말레이-인도네시아 군도의 토착문화가 융합된 무척이나 다양한 융합문화를 총체적으로 칭한다고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는 이미 현지인들이 살고 있어 자연스럽게 혼혈의 페라나칸이 태어날 수 있었겠지만, 싱가포르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거의 불모지에 가까운 땅에 중계무역과 노동력이 갑자기 필요해진 싱가포르에 1800년대부터 몰려온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의 인종들이 서로 모여서 살게 되었기 때문에, 사실 현지인과의 혼혈이라는 의미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약 74%, 말레이계가 14%, 인도계가 9%, 기타 3%의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인종들의 화합과 하나의 국가에서의 인종통합을 위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것처럼, 인종을 구분을 하기보다는 페라나칸이라는 용어로 공통의 민족성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아닌가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동남아시아에 페라나칸 공동체를 형성한 이민족들

 

  1. 동남아시아와 인도 : 말레이-인도네시아 군도에 처음 정착한 이주민들로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출신의 민족들로서 기원전 1000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 아라비아 : 이곳에 정착한 아랍인들로는 예멘 특히 하드라마우트 출신이 가장 많다. 상당수의 하드라마우트 아랍인들은 18세기 중반 이후에 이곳으로 왔다.
  3. 유럽 :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는 16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유럽 페라나칸을 형성했다.
  4. 중국 : 중국인들은 꾸준히 이곳에서 활동했지만, 15세기에 정화(鄭和) 제독의 일곱 차례 항해를 하면서 주로 남중국 출신 중국이민자들이 정착했다.

* 페라나칸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려면 싱가포르에서 시작할 수 없다. 영국통치 전에는 원주민이  거의 없었으니까…따라서 이곳 페라나칸 박물관에서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페라나칸을 중심으로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다양한 민족이 융합된 페라나칸 (그래도 중국계가 대부분)


 

페라나칸의 복식 : 지역별로 다양해서 한 양식으로 설명하긴 어려운 듯

 
1. 람풍지역의 예복(Long Robe)
 
인도네시아 람풍지역 추장들이 입었던 긴 예복으로 '카와이(kawai)'라고도 불리며, 이는 케바야(kebaya)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 중국의 실크, 유럽의 울, 인도의 면, 자바의 바틱 등 동남아시아에서 거래가 된 다양한 직물을 조합해서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조각보, 서양의 퀼트, 인도의 칸타(Kantha) 등과 유사한 제작기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바틱(BATIK)
 

바틱은 직물의 염색 기법이면서 이 기법으로 제작된 직물을 모두 일컫는 용어이다. 염표가 패턴의 특정역역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천에 왁스를 찬팅(canting, 펜 모양의 도구)이나 스탬프를 사용해 도포하여 도포된 곳만 염색이 안되어 독특한 문양을 만들어낸다.
이 기법은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시작되었고, 13세기 경부터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제작기법이 자바의 페라나칸 공동체(중국계, 네덜란드-유라시아계, 아랍계 등)에게 영향을 주어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특비 말라카, 페낭, 싱가포르의 페나칸 공동체에서 적극적으로 착용하였다.

 

3. 사롱 케바야(Sarong Kebaya)
 
사롱 케바야(Sarong Kebaya)는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의 페라나칸 공동체에서 발전한 전통 의상으로, 케바야라는 상의와 사롱이라는 하의가 결합된 투피스 복식이다. 17세기 경 말레이-인도네시아에서 한 벌로 입기 시작했으며 각 지역의 페라나칸들이 각기 자신의 스타일로 발전시켰다.

- 케바야(Kebaya) : 깃이 없고 앞이 트인 블라우스 형태의 상의로 원래 아랍의 긴 로브인 Qaba에서 유래했으며, 시간이 지나며 현지 문화에 맞게 변형되었다. 초기에는 헐렁한 형태(바주 판장)였으나, 1930년대 이후 몸에 꼭 맞는 타이트한 핏으로 발전했다. 얇은 면, 레이스, 실크 등의 소재로 만들어지며, 섬세한 자수(술람)가 특징이다. 단추 대신 보통 세 개의 연결된 브로치(크롱상)로 여며 입는다.
- 살롱(Sarong) : 통 형태의 치마 천으로 여성의 하의인 치마의 한 종류이다. 직사각형의 치마 천인 카인판장(Kain Panjang)을 입기도 한다.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살롱 크바야

 

4. 신발 및 다양한 장신
 
사롱 크바야와 함께 신은 슬리퍼로 자수와 바틱을 사용하고 유리구슬 등으로 장식을 더했다.

 
결혼식 등 예식에는 특별히 더욱 화려하게 만든 어깨장식, 손수건, 머리장식 등을 했는데, 여기에 전시된 장신구들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의례용 손수건(Sapu Tangan)

 
이 손수건은 정교하게 수가 놓여있는데 말라카에서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정교하게 수를 놓았는데, 설명에 의하면 기린과 봉황, 장수를 상징하는 학을 탄 노인, 거북이와 새우를 탄 두 명의 팔선(八仙, Eight Immortals)를 동반하는 그림이 표현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접혀서 보이지 않는 부분인 것 같다. 여기 표현된 인물은 봉황을 타고 있고, 구름과 물고기 위에 서있는 팔선 중 둘이 보인다. 동남아시아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투구게가 함께 보이기도 한다. 
 
결혼식때 신부의 머리장식에 사용된 장신구는 무척 화려하다. 머리는 신체에서 가장 신성한 부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신의 형상을 넣어 장식한다. 이는 신들이 착용자를 사악한 기운에서 보호해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페낭에서 제작된 왼쪽의 머리장식은 팔선과 삼성신이 장식되어 있고, 오른쪽, 싱가포르에서 제작된 머리장식은 174개의 머리핀이 꽂혀있는데, 장미모양과 S자형 핀, 꽃 곤충, 새 모양이 어우러져 장식되어 있다.

(좌) 페낭과 (우) 싱가포르 에서 제작된 머리장식 (19세기 말~20세기 초)

 

페라나칸의 식기 : Made in China or just china ?

 
페라나칸은 의례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유럽 및 아시아의 다양한 도자기를 사용했는데, 이들이 사용한 도자기를 뇨나웨어(Nyonyaware)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럽 도자기는 페라나칸 공동체에 인기가 많았는데, 부유한 가족들은 가족 이니셜을 새긴 자기세트를 주문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도자기는 주로 중국 징더전(Jingdezhen)에서 제작된 오버글레이즈 다색 애나멜 자기나 청화백자 등을 사용했다. 이밖에 이싱 석기(Yixing stoneware), 일본 아리타 자기(Japanese Arita ware) 등 다양한 출처의 도자기를 볼 수 있다.

 
용과 봉황을 표현한 자기는 대부분 중국에서 특별히 제작되어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용과 봉황이 황제와 황후를 상징하는 만큼 중요한 행사에 쓰던 식기로 보인다. 

 
고운 분홍색 바탕에 나비문양을 넣은 도자기 세트가 전시되어 있는데, 접시 외곽에 나비와 한자 蕭자가 번갈아 표현되어 있다. 이는 샤오(Xiao, 蕭)라는 성을 가진 집안에서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주문제작한 것인데, 가족의 이름, 제작자, 상서로운 문양을 함께 장식한다고 한다. 나비가 꽃문양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페라나칸 티핀 캐리어(Tiffin Carrier)는 말레이어로 팅캇(Tingkat)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다층으로 쌓아 올린 도시락통이다. 2단에서 5단 이상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층에, 밥, 고기, 채소, 국, 양념 등을 분리해서 담았고 모든 층이 고정되어 운반할 수 잇도록 순잡이가 달린 금속 프레임이 설치되어 있다. 주로 강철이나 알루미늄으로 만들고 에나멜 코팅 후 직접 그림을 그렸다. 특히 모란과 같은 꽃 무늬가 인기가 많았는데 번영과 고귀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페라나칸 인도 공동체에서 사용한 이들리 찜기(Idli steamer)도 볼 수 있다.
 

페라나칸의 가구 : 박물관에 있어서인가? 화려함의 극치만 모아놓았다.

 
전통적인 페라나칸 가옥은 앞문과 뒷문 사이에 빛과 환기를 위한 공기 우물이 있는 긴 테라스 주택이다. 핀투 파가르(Pintu Pagar)라고 불리는 울카리문은 낮 동안 앞문을 열어둘 때 환기, 보안 및 프라이버시를 위해 만들어진 절반 높이의 외부 문을 말한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필투 파가르는 중국와 유럽에서 따온 모티프가 조각되어 있고 부조로 제작된 모티브를 금으로 도금되어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하였다. 문의 상단을 곡선형으로 만들고, 문 앞을 지키는 중국 전통 사자와 꽃, 다람쥐 꽃병 등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박물관에는 부유한 페라나칸들이 기증한 고급스러운 유물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결혼식 예물인 탑 모양의 쟁반(Pagoda Trays)은 전시품 중에 눈에 띈다. 나무로 만들고 거기에 칠, 도금을 한 아주 화려한 공예품으로 Lee씨 집안에서 기증했다. (이청연(Lee Cheng Yan, 1841–1911) 의 집안은 싱가포르에서 중요한 가문인데, 1890년 싱가포르 최초의 유럽합작 해운기업인 Straits Steamship Company)를 설립했다고 한다)

 
부부 침실의 일부를 보여주는 침대와 카페트를 보면 싱가포르 페라나칸 대부분이 이렇게 살았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중국이나 페르시아의 귀족들이 사용하던 침대같다. 

 
아래의 마차는 터둔(Tedun)이라는 중국 페라나칸의 의식에 사용된 것이다. 터둔은 아이의 돌을 기념해서 행해지는 예식으로, 마차에 아이를 앉히고 닭장 주위를 세 바퀴 돈 다음, 닭장에 놓인 여러 물건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다. 우리나라의 돌잡이 의식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이 마차는 기린과 봉황 같은 상서로운 모티브가 조각되어 있다.

 
 

페라나칸의 장례와 조상을 모시는 사당

 

중국계 페라나칸은 집의 한쪽에 조상의 제단을 설치해 놓았다. 싱가포르에서 진(陳, Tan)씨 집안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번 올린 진씨집안사당 뿐 아니라 중요한 학교나 절(천복궁 등) 등을 설립하는데 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곳 박물관에서도 기증자가 대부분 진씨집안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1924년에 찍은 고(故) 탄 벵 완 여사의의 장례식 사진에서 보이는 운구용 가마 콴타(Kuanta)는 대나무 구조물에 화려하게 수놓은 실크를 두른 장엄한 천막 형태의 관 덮개가 있다. 가마의 상단에 고인이 여성이면 학, 남성이면 사자형상의 장식이 부탁되는데, 이 사진에서 학을 확인할 수 있다. 음악가들이 악대를 이끌고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며 행렬을 선도했는데, 이는 악령을 쫓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그 뒤를 따랐다.
 
진씨집안의 조상 제단을 보면 추원(追遠)이라는 현판이 중앙에 있는데, "멀리 있는 것을 따른다" 또는 "먼 조상을 추모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아래 작은 조립식 형태의 사당(Kam, 籠)을 모시고, 그 주변에 향로, 촛대, 램프, 꽃병, 제사를 위한 은으로 만든 그릇이 놓여있고 조상의 세수를 위한 세숫대야, 뚜껑있는 비누 접시, 받침대가 함께 배치되어 있다.

 
싱가포르를 비롯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페라나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한번 들려보면 좋은 곳이 바로 페라나칸 박물관이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섞여 독특하면서도 혼합된 문화를 보여주고 있지만, 가장 많은 부분은 중국문화와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싱가포르가 페라나칸의 문화를 연구하고 그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건, 다민족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문화가 페라나칸이라는 키워드로 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라나칸으로 싱가포르인을 규합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민족이 갈등없이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것은 싱가포르 정부의 끊임없는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