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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는 싱가포르

싱가포르 아트페어 - Affordable Art Fair

by 조타 2026. 2. 25.

싱가포르에서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내셔널 갤러리나 개별 갤러리를 갈 수도 있지만, 종종 열리는 아트페어를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트페어에 가면 당대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상설 또는 특별전시를 제외한다면, 미술계에서 큰 행사로 손꼽는건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이다. 비엔날레가 큐레이터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서 당대의 담론을 작품과 연결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아트페어는 미술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대놓고 거래하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미술행사 중에 오늘 다녀온 곳은 Affordable Art Fair이다. 한마디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한 미술시장'이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Affordable Art Fair는 2025년 11월 13일(목)~16일(일)까지, F1 Pit Building(1 Republic Blvd, Singapore 038975)에서 개최되었다. 

 

https://maps.app.goo.gl/c3N4CnwjJ4izy5Gs8

 

F1 Pit Building Marina Bay Street Circuit · 1 Republic Blvd, 싱가포르 038975

★★★★☆ · 이벤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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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F1(포뮬러1) 경기를 개최하고 관람할 수 있는 중심건물로, Architects 61 Pte Ltd라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건축회사가 설계했다. 싱가포르에서는 매년 도시 중심을 관통하며 F1경기가 열리고 있고, 더운 날씨 때문인지 야간 레이스로 유명하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싱가포르 플라이어 뒤에 F1 Pit Building이 보인다. (출처 : By Dietmar Rabich,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5569943)

 

2025년 F1 경기장 코스 (출처 : By Dietmar Rabich,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5569943)

 

이 건물에서 Affordable Art Fair가 일년에 두 번 개최된다. Affordable Art Fair는 원래 영국의 기업가 윌 램지(Will Ramsay)에 의해 설립되었고, 그가 이끄는 램지 페어스(Ramsay Fairs)그룹에서 주최하고 있다. 1999년 런던에서 첫 행사를 시작하며 "미술계의 민주화(Democratise the Art World)"를 지향한다고 설립목적을 보여줬다. 다시말해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미술을 누구나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목적인 것이다.

 

누구나 관람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미술계의 문턱을 낮추다보니, 젋은 신진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한다.  Affordable Art Fair는 런던, 암스테르담, 베를린, 비엔나, 함부르크, 보스톤, 뉴욕, 시드니,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번 아트페어에선 S$15,000이하(당시 환율로 한화 1천5백만원이 좀 넘는다) 로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전세계 20개국에서 95개 갤러리가 참여하고, 884명의 작가가 작품을 선보일 정도로 큰 규모였기에 건물 2,3층을 가득 채웠다. 많은 관람객과 작가들이 이곳에서 만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소통과 구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이미 판매완료되었다는 스티커가 많이 붙어 있는 걸 보면서, 싱가포르 미술시장에 활력이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여작가는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 지역 작가가 전체의 1/3을 차지하고, 한국작가의 작품도 많이 보였다. 낯익은 작품이라고 생각해거 자세히 보면 거의 99% 한국작가의 작품이다. 내가 한국에서 접한 작가들의 작품이라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젊은 한국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는데, 대부분이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집에 걸면 이쁘겠다고 느껴지는 소품같은 느낌이 강했다. 

 

내가 884명이나 되는 작가의 작품을 심도있게 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눈에 내 눈길을 끌었던 작품 위주로 관람을 하다보니 이곳에도 내 주관적인 작품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어메이징 파라다이스 - 이종기 작가

 우선, 한국작가인 이종기씨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적인 이미지와 심슨가족을 결합시켜, 익숙함 속에서 작가의 해학과 위트를 보여주고 있다. 

 

달항아리에 슈퍼맨을 등장시켜 진짜 달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청화백자는 심슨이 벽화작업을 산수화를 그리는 장소가 되었다. 마이클잭슨은 한옥 건물에 'Michael Jacson Show'라는 현수막을 걸고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한옥 앞의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심슨가족은 비틀즈의 'Abbey Road' 앨범 커버를 연상시킨다. 작가가 의도하는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가 오히려 문화의 융합를 꾀하면서도 동시에 작가의 위트를 녹여넣으려고 하고 있다. 

​어메이징은 알겠는데 파라다이스인지는 모르겠다. (TT)

 

 

그림자가 안내하는 길 - Yu Qiping 작가

중국작가 Yu Qiping(余啟平)의 판화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제목이 <Shadow Guiding the Way>다.  그림자가 길을 안내하려면 난 늘 해를 등지고 걸어야 한다. 땅꺼미가 지거나 여명의 시간이여야 그림자는 멀리까지 길을 안내한다.  태양을 맞서려면 혼자서 가라. 그림자는 널 안내하지 못할테니...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기댈 곳 없는 소심한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 같다. 

 

작가는 겹겹이 쌓인 가옥이 붉은 담장과 검은 제목으로 대비를 시키면서 공간을 복잡하고 답답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 앞에서 뒷짐을 지고 공산당 인민군이 입는 것 같은 복장으로 가만히 서있다. 파란 하늘과 주인공의 의상이 건물과의 시각적 대비를 주면서 단순한 구도 속에서 신비감을 자아낸다. 주인공은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그림자로 이어지는 길을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재료가 바뀌면 작품도 바뀌나요? - Song Yong Hua 작가

중국 상하이 출신 Song Yong Hua 작가의 <천상시리즈(Celestial Series)?이다.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음에도, 가까이 가서 질감을 느끼지 전까지는 수묵화의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깎아지는 기암괴석과 떨어지는 폭포, 화면의 공간감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안개와 운해가 바로 그러하다.

 

나는 이 작품이 거의 다 팔린 걸 보고 조금 놀랐다. 일견 "한지에 먹물의 농담으로 산수의 깊이와 운무를 표현하는 동양화를 유화라는 재료로 바꿔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다. 이 작가에 대한 평론을 보면  "그의 풍경은 중국적인 것으로 가득차있고, 예술에서 중국의 본질과 정수를 담고 있다"고 했는데, 난 사실 잘 모르겠다. 전통산수화의 핵심가치인 '기운생동(Spirit Resonance)' 을 잃지 않으면서 유화라는 재료로 재해석하려고 했다는 의미인데....  잘 모르겠다.

 

기운생동은 작가 자신의 정신을  '필력'으로 드러내는 건 아닌가?

 

 

작가는 현 시대의 담론을 다뤄야 한다 - Susana Sanroman 작가

 

나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알아내는걸 좋아한다.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계속 보다보면 작품에서 나에게 주는 울림과 상상력들이 나를 즐겁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작가 Susana Sanroman의 사진작업인 <Beaches 01, 02>는 참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환경문제를 이 두 사진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두작품을 통해 작가는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었다. 바다는 점차 인공물들로 뒤덮여야 하는데, 자연의 쓰레기(? 떠밀려온 해조류)가 사람을 집어삼키고 있다. 인간은 더이상 자연 속에서 유희를 즐길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쓰레기에 덮인 바다보다 자연에 덮여 보이지 않는 인간이 왜 더 절박해 보일까? 

 

가짜 뉴스는 누가 퍼트린 걸까? -  Noman Darya 작가

 

또 재미있는 작품 하나를 소개하자면, 인도네시아 작가인 Noman Darya이다. 이 작가는 개인의 출생시기나 장소, 가계가 그들의 미래에 자유를 주는지 혹은 제약을 가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풍자를 작품에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Fake News>라는 작품인데, 링컨이 전달한 메시지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며 시대의 저명한 사람들에게 서로 전달하여 다시 링컨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그렸다. 소통이 안될 때는 핸드폰의 번역기능을 활용하기도 하고, 다양한 제스처를 통해 전달하지만, 결국 링컨에게 돌아오는건 처음의 메시지와 다른 Fake News 일 것이다. 

 

언어유희 - Pill Shaw 작가

 

마지막 소개할 작품은 영국작가 Phil Saw의 <All The World's A stage>이다. 작품을 보자마자 무거운 책장 대신 이 작품을 벽에 걸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갤러리 담당자가 작품설명을 해줬다. 작품 하단에 적힌 제목 'All the World's a Stage'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라며,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책장에 책은 상단부터 영어책, 독일어책, 러시아어책, 중국어책이 꽂혀있다. 영어책부터 보면, 왼쪽부터 제목의 첫 단어를 차례로 써보면,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They have their exits and their entrances and one man in his time plays many parts"라는 문장이 된다. 이 문장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라고 한다.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여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데, 번역해보면,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남자와 여자는 단지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퇴장과 등장(출구와 입구)을 가진다. 그리고 한 사람은 자신의 일생 동안 많은 역할을 연기한다." 같은 의미로,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책도 배치되어 있다. 굉장한 아이디어라고 해야할텐데,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벌써 여러차례 써먹었다.

 

그런데, 이 컨셉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내 최애 드라마 중 하나인 <사랑의 불시착>이 떠올랐다.

 

리정혁이 윤세리에게 책을 통해 전달한 마음...."윤세리 사랑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믿는 수 밖에...

 

아트페어가 예술의 대중화와 문화 교류의 장이 되길 바라지만,
여전히 작품가격의 문턱은 높았다. 나에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