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로키(Rocky) 자유여행 ⑤ 밴프의 느린 길 : 존스턴 캐니언에서 설퍼산까지
협곡 위에 매달린 길 아침 일찍 존스턴 캐니언(Johnston Canyon)으로 향했다. 전날 낮 한 시에 일어난 사람치고는 훌륭한 회복이었다. 이곳의 트레일은 로키에서도 꽤 독특하다. 땅 위를 걷다가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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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를 향해 출발
밴프 숙소를 체크아웃하던 아침, 짐을 트렁크에 밀어 넣으면서도 재스퍼를 향해 출발하는 것이 흥분되었다. 재스퍼는 늘 가보고 싶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이번이 첫 방문이다. 게다가 2년 전의 대 화재로 그 일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꼭 가보고 싶었다. 자연의 회복력을 기대하며... 특히, 로키의 동맥이라 불리는 길, 아이스필즈 파크웨이(Icefields Parkway)를 달리는 날이었다.
며칠 밴프 분지에 머물다 아이스필즈 파크웨이에 들어서자 풍경이 달라졌다. 좌우로 이어진 봉우리들이 도로 가까이 다가와 차창을 가득 채웠다. 사진을 여러 장 찍었지만 눈앞의 풍경은 프레임 안에 잘 담기지 않았다. 나중엔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냥 바라봤다.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 두려고...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아이스필즈 파크웨이(Icefields Parkway)는 레이크 루이스에서 재스퍼까지 이어지는 약 230km의 도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이 길을 ‘Drive of a Lifetime’으로 소개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도로 양쪽으로 100개가 넘는 빙하와 만년설 봉우리, 빙하가 깎아낸 계곡과 숲이 계속 이어진다. 물론, 이 길이 처음부터 관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원래 이 구간에는 ‘원더 트레일(Wonder Trail)’이라 불리던 길이 있었고,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캐나다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본격적인 도로 공사를 시작했다. 약 600명의 인부가 거의 10년에 걸쳐 길을 만들었다. 장비도 변변치 않아서 각 조마다 트랙터 한 대와 말 몇 마리, 그리고 삽과 곡괭이에 의존해 산을 깎고 길을 냈다.
도로는 1940년에 완공됐고, 1961년 지금과 같은 포장도로로 정비됐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 길은 대공황의 실업자들이 만든 길이었다. 늘 그렇듯, 아름다움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물로 드러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갈 때는 감탄만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잘 닦인 도로 아래에 깔린 흙과 돌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지금 우리는 뷰 포인트마다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지만, 90년 전에는 생계를 위해 이 길을 만들던 사람들이 간간히 쉬며 땀을 닦고 허기를 달랬겠지.
새스캐추언 리버 크로싱, 유일한 쉼표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로 향하는 길에 '새스캐추언 리버 크로싱(Saskatchewan River Crossing)'을 지나왔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이다. 레이크 루이스에서 약 80km 떨어진 이곳에는 이길의 유일한 주유소와 식당, 상점, 화장실있다. 휴대전화 신호조차 잘 잡히지 않는 긴 도로를 달리다 보면 무척 반갑다.
이 일대는 오래전부터 하우스 패스로 이어지는 교역로의 길목이었다. 원주민들이 산을 넘었고, 뒤이어 무역상과 탐험가들도 같은 통로를 따라 이동했다. 과거 사람들이 산을 넘기 위해 지나던 길목에 지금은 여행자들이 기름을 넣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차를 세운다. 우리는 재스퍼로 갈 때도, 며칠 뒤 캘거리로 돌아갈 때도 이곳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마음이 무거웠다. 캐나다 전역의 심각한 화재가 이곳까지 영향을 주어, 당장 코앞의 산이 뿌옇게 실루엣만 보여서였다. 같은 자리였지만 같은 풍경이 아니었다. 마음에 돌을 얹고 이 곳을 지나갔다.



설상 버스, 아이스 익스플로러(Ice Explorer)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디스커버리 센터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서둘러 먹고 나니 예약 시간이 코앞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일반 차량으로 갈 수 없다.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 뒤 거대한 바퀴가 달린 아이스 익스플로러(Ice Explorer)라는 설상 버스로 갈아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제87산악보병연대는 콜롬비아 아이스필드에 약 두 달 동안 머물며 새로 개발한 설상 차량을 시험했고, 영국군과 미군도 이 일대에서 산악전 훈련을 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0년대에는 군이 사용하던 설상 차량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재스퍼 주민 두어 명이 애서배스카 빙하에서 관광객을 태우는 설상 버스 투어를 시작했다.
우리가 탄 아이스 익스플로러는 테라버스(Terra Bus) 차량으로 길이 약 13m, 총중량 약 25t에 이르는 거대한 차체가 여섯 개의 저압 타이어로 얼음과 거친 지형을 천천히 건넌다. 같은 계열의 차량이 지구 반대편 남극 맥머도 기지에서도 사용된다고 한다.
테라버스(Terra Bus)는 일반 버스가 다니기 어려운 눈, 얼음, 진흙, 비포장 지형에서도 사람을 실어 나르도록 만든 대형 전천후 차량이다. 최대 56명을 태울 수 있고, 전륜구동과 아주 큰 저압 타이어를 사용한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에서는 이 차량을 ‘아이스 익스플로러’라는 이름으로 관광객 수송에 사용한다.

애서배스카 빙하(Athabasca Glacier) 위에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여름 볕에 반팔로 다니던 몸이었는데 빙하 가까이에 서자 한기가 훅 끼쳐왔다. 챙겨간 경량 패딩과 바람막이를 서둘러 꺼내 입었다. 빙하 표면에서 차갑게 식은 무거운 공기가 계곡 아래로 흘러내리는 활강풍(katabatic wind) 때문이다. 빙하가 스스로 찬 바람을 만들어낸다더니 정말이었다.


방문객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깃발과 줄로 표시된 좁은 구역뿐이었다. 곳곳에 숨어 있는 크레바스(crevasse·빙하에 생긴 깊은 균열)
때문이다. 빙하는 가만히 있는 얼음덩어리가 아니라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데, 지형의 경사나 이동 속도가 달라지면 얼음이 갈라지면서 틈이 생긴다. 겉에서는 얕아 보여도 실제로는 매우 깊을 수 있고, 눈으로 덮이면 잘 보이지도 않으니 잘못 밟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빙하의 색이었다. 사진에서 보던 새하얀 빙하가 아니었다. 회색빛 얼음 사이로 흙과 돌가루가 섞여 있었고, 한쪽에서는 녹은 물이 실개천처럼 계속 흘렀다. 빙하가 움직이며 운반한 암설과 주변에서 날아온 먼지 같은 자연적인 물질도 표면에 쌓인다. 하지만 그 위를 오가는 거대한 차량과 수많은 관광객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 빙하의 색이 회색빛인 이유가 설명되는 것 같았다.
좀 떨어진 곳에서는 일련의 무리들이 가이드를 동반하고 빙하 트레킹을 하고 있었다. 부럽기도하고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손끝으로 만진 빙하 녹은 물은 서늘하고 맑았다. 오래전 내린 눈이 쌓이고 눌려 얼음이 되었다가, 지금 내 손바닥 위에서 다시 물로 돌아가고 있었다. 차갑고 맑은 물이 신기해서 한참을 쭈그려 앉아 만져봤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다. ㅠㅠ
발밑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녹은 빙하 표면을 밟는 바람에 신발과 양말이 흠뻑 젖어버렸다. 차가운 기운이 발가락 끝까지 타고 올라왔다. 우앙~~ 발시려!!! 동상걸리는 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내내 발이 시렸다.
애서배스카 빙하는 19세기 중반 이후 1.5km 넘게 후퇴했고, 지난 125년 사이 부피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고 한다. 지금도 계속 얇아지고 뒤로 물러나고 있다. 19세기 중반 이 빙하의 끝은 지금의 디스커버리 센터 부근까지 내려와 있었다. 우리가 차를 세우고 표를 끊고 커피를 마신 그 자리가, 백여 년 전에는 얼음에 덮여 있었다는 뜻이다.



스카이워크, 협곡 위의 유리 다리
빙하에서 내려온 뒤 젖은 신발을 신은 채 셔틀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로 향했다. 절벽 가장자리에서 협곡 쪽으로 약 30m 튀어나온 U자형 유리 전망대, '글레이셔 스카이워크(Glacier Skywalk)'에 올랐다.



이 구조물은 2014년에 문을 열었다. 설계에만 5년, 실제 시공에는 겨울마다 공사를 멈춰야 했던 재스퍼국립공원의 기후 때문에 약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코르텐강(Corten steel), 강화유리와 나무를 사용했고 페인트칠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철제 구조물이 자연스럽게 붉은 녹빛을 띠고 주변 암벽과 비슷한 색으로 변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실제로 보니 붉은빛 구조물이 주변 바위와 꽤 잘 어울렸다.
코르텐강(Corten steel)은 겉면에 녹이 생기지만 그 녹이 보호막이 되어 안쪽까지 쉽게 부식되지 않도록 만든 내후성 철이다. 일반 철처럼 녹이 생기면 계속 삭아가는 것이 아니라, 표면의 붉은 갈색 녹층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 그 아래 철을 보호해 준다. 그래서 야외 조형물, 다리, 건축 외장재에 많이 사용한다.
이 시설이 들어설 때부터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립공원 안에 민간 기업의 상업 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공사와 방문객이 큰뿔양이나 산양 같은 야생동물의 이동과 서식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발밑 유리 너머로 선와프타 계곡이 까마득히 아래다. 다리가 후들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계곡과 산의 규모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큰 산 앞에 서 있으니 마음이 비워지고, 편안해진다.

어두워지지 않는 밤
다시 재스퍼를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재스퍼 타운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었는데도 하늘은 여전히 밝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별을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을 보려면 밤이 와야 하는데 잠이 먼저 와서...
돌이켜보니 이날은 계획은 했으나 온전히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줄이 길어 포기한 페이토 호수. 정해진 좁은 구역 안에서만 밟을 수 있었던 빙하. 그리고 별이 보일 만큼 어두워지지 않는 하늘.
모든 것을 다 보고 갈 수는 없어서 아쉬웠다. 숙소 창밖으로 아직 밝은 하늘을 한참 바라보다 커튼을 쳤다. 피곤해서인지 잠이 쏟아졌고, 별은 끝내 보지 못했다.
(*원래 계획은 그 다음날 새벽 1~2시에 피라미드 레이크에 가서 아래 사진과 같은 별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캐나다 산불의 영향으로 뿌옇게 변한 하늘에 별은 뜨지 않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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