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로키(Rocky) 산맥은 북미 대륙의 등뼈가 멋지게 솟아오른 구간이다. 빙하가 깎은 봉우리와 에메랄드빛 호수가 계속 이어진 네 개의 국립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중 세 곳, 밴프·요호·재스퍼 국립공원을 돌아보았다. 한국에서 캘거리로 입국해 렌터카를 빌리고, 캔모어를 시작으로 밴프에 나흘, 아이스필즈 파크웨이를 따라 북상해 재스퍼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캘거리로 돌아오는 8박 10일 일정이다. 이제 그 첫 이야기를 하려 한다.

비행기가 캘거리에 착륙하기 직전, 창밖으로 앨버타가 펼쳐졌다. 처음엔 너무나도 깊고 큰 산맥이 공포스럽게 펼쳐지더니, 점차 초록과 노랑이 번갈아 놓인 거대한 격자무늬가 눈에 띄었다. 카놀라밭과 밀밭이 자로 그은 듯 반듯하게 나뉘어 지평선까지 이어졌다.
캘거리에서 렌터카를 빌려 1번 고속도로를 서쪽으로 달리면, 한 시간쯤 지난 어느 지점부터 앞유리 가득 회색 암벽이 차오른다. 로키는 캘거리가 멀어지는, 그 평원이 끝나는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그 첫 마을이 캔모어(Canmore)였다.

캔모어(Canmore)
캔모어(Canmore)를 찾아보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두 곳이 있다.
첫번째로 캔모어를 상징하는 웅장한 세자매 봉(The Three Sisters Mountains)이 있다. 마을 어디서든 보이고, 세 봉우리가 나란히 선 실루엣이 한눈에 각인되고, 폴리스맨 크리크 혹은 보우강 트레일에서 물에 비친 모습이 사진으로 잘 나오기 때문에 캔모어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산 중턱에 위치한 에메랄드빛의 그라시 호수(Grassi Lakes)이다. 원래 그라시 호수로 가서 하이킹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낙석으로 이 주변의 길이 다 폐쇄 되었다. 최근의 많은 비가 큰 바위들의 지지기반을 무너뜨려 불안정한 상태라서 재개통 시점이 미정일 만큼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라시 호수 하이킹을 포기하고 마을을 끼고 강을 따라 도는 평탄한 길, 보우강 루프 트레일(Bow River Loop Trail)로 우회하기로 했다.

'세자매 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
처음 이름은 '세 수녀(Three Nuns)'였다. 1883년, 철도 측량가가 붙인 이름인데, 밤새 눈이 내린 후 아침 텐트 밖을 내다보니 세 봉우리에 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하얀 베일을 쓴 세 수녀님들 좀 봐"라고 외쳤다. 수녀들이 쓰는 흰 두건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3년 뒤 이름이 바뀐다. 1886년 캐나다 지질조사국의 조지 머서 도슨이 이 일대 지도를 그리면서 '세 자매(Three Sisters)'로 바꿔 적었다. 그 이유가 개신교 쪽에서는 수녀를 '시스터'라 부르기 때문에 개신교 정서에 더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톨릭 냄새가 나는 이름을 개신교식으로 바꾼 셈이다.
봉우리마다 이름도 따로 붙였다. 큰 자매는 믿음(Faith, 2,936m), 가운데 자매는 소망(Hope, 2,769m), 작은 자매는 사랑(Charity, 2,694m).


보우강 루프 트레일(Bow River Loop Trail)을 걸었다. 솔직히 말하면, 캔모어에서 만난 보우강은 특별할 게 없었다. 물빛은 옅은 청록이었고 강폭은 넓었지만, 사진으로 익히 봐온 로키의 그 호수들에 대한 기대 때문이지 그저 무난했다. 그래도 좋았다. 오랜만에 흙길을 걷는다는 것, 침엽수 사이로 반짝이는 물빛이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것, 그리고 보우강이 힘차게 흐르는 소리. 이번 휴가를 멋지게 즐길 준비가 되었다!



엔진 브리지 (Engine Bridge)
보우강 루프 트레일(Bow River Loop Trail) 따라 걷다가 인상적이었던 건 강 위에 걸린 검은 철교, 엔진 브리지(Engine Bridge)였다. 리벳이 촘촘히 박힌 트러스 구조가 세월에 붉게 녹슬어 있었고, 지금은 나무 데크가 깔려 산책로가 되어 있었다. 다리 한가운데 서면 정면으로 산이 액자처럼 걸린다.


1884년, 캔모어는 갓 놓인 캐나다 태평양 철도(CPR)의 작은 정거장에 불과했다. 그해 탐광꾼(prospector)들이 보우강 서쪽에서 검은 석탄을 발견하고, 2년 뒤 빅토리아 여왕이 캔모어 일대에 석탄 채굴을 허락하여 1호 광산이 문을 열었다. 엔진 브리지는 1890년대 후반에 강 서쪽의 광산들과 CPR 본선 철로를 잇기 위해서 놓였다. 그러니까 이 다리 위로 지나간 것은 관광객이 아니라 석탄이었다.
캔모어는 곧 남부 앨버타에서 손꼽히는 탄광 도시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직전 절정기에는 연간 500만 톤에 가까운 석탄을 캐냈다. 그러다가 1969년에는 20만 톤 수준으로 떨어졌고, 1979년 7월 13일의 금요일, 마지막 광산이 영영 문을 닫았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광산 건물과 지선 철로는 거의 다 철거되었다.
안내판의 마지막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건물은 치웠지만 석탄이 땅과 강에 남긴 자국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미세한 폐석 더미에서 흘러나온 콜타르 같은 물질이 오랫동안 토양과 수계로 스며들었고, 최근에야 옛 광산 부지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지금 기분 좋게 걷고 있는 이 산책로가, 사실은 아직도 회복 중인 땅인 것이지...


광부 로렌스 그라시
캔모어를 걷다 보면 자꾸 한 사람의 이름과 마주친다. 트레일 지도에는 로렌스 그라시 중학교가 있고, 마을 남쪽을 굽어보는 산 이름도 마운트 로렌스 그라시다. 캔모어에서 가장 유명한 하이킹 코스인 그라시 레이크도 그의 이름이다. 로렌스 그라시는 광부였다.
본명은 안드레아 로렌초 그라시. 189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산골 마을 팔멘타에서 태어나 1912년 캐나다로 건너왔다. 처음에는 CPR에서 막노동을 했고, 1910년대 후반 캔모어에 정착해 광부가 되었다. 그리고 서른 해 가까이 땅속에서 석탄을 캤다.
특별한 건 그가 쉬는 날에 한 일이다. 그는 산에 올랐고, 길을 냈다. 그라시 레이크로 이어지는 돌계단은 그가 직접 쌓은 것이다. 오하라 호수와 루이스 호수 주변의 수많은 트레일도 그의 손을 거쳤다. 등반 안내를 하면서도 돈을 받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예순다섯에 광산을 은퇴한 뒤에는 요호 국립공원 오하라 호숫가 오두막에서 다섯 번의 여름을 관리인으로 보냈다.
낮에는 석탄을 캐고, 쉬는 날에는 사람들이 걸을 길을 만든 사람. 나는 그가 쌓아 올린 돌계단을 오르러 왔다가, 낙석 때문에 발길을 돌려, 그가 삼십 년을 살고 걸었던 마을을 대신 걸었다.




마스키오 부부의 벤치에서
점심은 트레일 중간의 벤치에서 해결했다. 낡은 나무 벤치였다. 앉고 나서야 등받이에 작은 놋쇠 명패 두 개가 붙어 있는 걸 알았다. In Loving Memory of Jean Maschio, 그리고 그 아래 Angelo (Spec) Maschio. 이탈리아 성을 가진 부부의 이름이다. 캔모어 탄광에는 그라시처럼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이민자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길 중간중간 이런 의자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각각 다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 정착해 살던 사람들, 혹은 그 후손들의 이름이 아닐까?!)

거기에 앉아 나는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찰떡을 꺼냈다. 물 한 병과 함께. 로키의 강과 산을 앞에 두고 찰떡이라니, 조합은 우스웠지만 맛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가져온 찰떡을, 백 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이름이 쓰인 의자 위에서 먹다니~^^
문제는 모기였다. 앉자마자 달려들어 여러 곳을 물렸다. 결국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떡을 입에 밀어 넣다시피 하고 일어섰다. 로키의 여름은 강가일수록 모기가 극성이다. (다음에 온다면 모기 기피제를 반드시 챙겨야 겠다.) 아쉬웠다. 그렇게 좋은 자리에 앉아놓고 십 분을 못 버텼으니까. 마스키오 부부에게도 조금 미안했다. 오래 앉아 있으라고 놓아둔 벤치였을 텐데...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그것이 여행이 일상과 다른 점이다.


아기자기한 다운타운
오후에는 캔모어 시내를 걸었다. 크지 않았다. 메인 스트리트 몇 블록이 전부다. 하지만 아기자기했다.
산장풍 건물들이 낮게 늘어서 있고, 도로 절반을 파라솔과 테이블이 점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후 두 시부터 맥주를 마셨고, 그 너머로 회색 암벽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메리스 팝콘 숍, 캔모어 티 컴퍼니, 루스티카나 그로서리 같은 오래된 간판들.
이 풍경이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1979년 마지막 광산이 닫혔을 때, 캔모어는 정체성을 잃었다. 한동안은 '밴프 가는 길에 기름 넣는 곳' 정도로 여겨졌다고 한다. 전환점은 1988년이었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의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종목이 이 마을에서 열렸고, 그것을 위해 캔모어 노르딕 센터가 지어졌다. 인구 3천여 명의 폐광촌이 세계의 카메라 앞에 섰다. 그 이후 캔모어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참고로 '캔모어(Canmore)'라는 이름은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큰 머리'라는 뜻으로 11세기 스코틀랜드 왕 맬컴 3세의 별칭이었다고 한다. 1884년 CPR이 이 정거장에 그 이름을 붙였다. 석탄과 철도와 스코틀랜드 왕의 별명이 한자리에 모인, 꽤 기묘한 조합이다.


드라마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에 캔모어 다운타운 한복판이 배경으로 나왔다. 계절이 다르기도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시계탑이 있었는데 내가 갔을때는 좀 다른 조형물로 바뀌었다. (혹시 CG?)


쉼, 회복의 시작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나는 '쉼'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모두 회복하고 오자고. 그런데 첫날 반나절 만에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쉬러 온 이 땅은, 그 자체가 회복의 땅이었다.
백 년 동안 석탄을 파냈고, 강에 콜타르를 흘려보냈고, 광산이 닫히자 사라질 뻔했고, 다시 일어섰다. 지금 이 산책로와 카페 테라스와 파라솔은 그 긴 회복의 끝자락에 놓인 풍경이다. 광부가 쉬는 날 쌓아 올린 돌계단이 지금도 사람들을 산으로 올려 보내고 있고, 석탄을 나르던 다리 위를 이제 유모차와 자전거가 지나간다. 회복이란 꼭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더 좋은 다른 것이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캔모어는 광산 마을로 돌아가는 대신 다른 마을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쉼도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지쳐 있던 예전의 나로 무사히 복귀하는 일이 아니라,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가는 일.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이동하려 차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밴프(Banff)였다. 차로 이십 분 남짓, 지도 위에서는 손톱만 한 거리^^
그런데 거기서 다시 만난 보우강은 완전 다른 등급의 강이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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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로키(Rocky) 자유여행 ② 밴프, 머리와 가슴이 쉬기 시작한 곳
16년 만의 밴프캔모어(Canmore)를 떠나 밴프(Banff)로 들어간 것은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거기서 다시 만난 보우강(Bow River)은 조금 달라 보였다. 분명히 같은 강인데 더 짙은 에메랄드빛이었다.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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