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크 루이스에서 걷고, 모레인 호수에서 노를 젓다
[캐나다] 로키(Rocky) 자유여행 ① 캔모어 보우강 트레일과 엔진 브리지
캐나다 로키(Rocky) 산맥은 북미 대륙의 등뼈가 멋지게 솟아오른 구간이다. 빙하가 깎은 봉우리와 에메랄드빛 호수가 계속 이어진 네 개의 국립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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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로키(Rocky) 자유여행 ② 밴프, 여행이란 회복의 시간이다
16년 만에 다시 찾은 밴프캔모어(Canmore)를 떠나 밴프(Banff)로 들어간 것은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거기서 다시 만난 보우강(Bow River)은 조금 달라 보였다. 분명히 같은 강인데 더 짙은 에메랄드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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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캔모어와 밴프 여행기를 소개했었다. 이번에는 밴프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두 호수를 소개하려한다.
알람은 사실 필요 없었다. 시차 덕분에 이미 두 시간 전부터 깨어 있었으니까. 새벽 다섯 시 반,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밖은 이미 훤했다.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로키의 7월은 새벽 다섯 시면 날이 밝기 시작하고, 밤 열 시 가까워져야 해가 진다. 1번 고속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렸다. 해 뜰 무렵의 하늘은 옅은 살구색이었다. 낮은 빛이 멀리 있는 산을 실루엣처럼 만들어놓았다. 겹겹이 포개진 능선은 낮에 보는 선명한 로키와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새벽에만 볼 수 있는 로키가 따로 있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여행에는 이런 보상이 따라온다


예약해야 갈 수 있는 곳
오전 6시 20분. 레이크 루이스 파크 앤 라이드 셔틀 주차장(Park and Ride - Lake Louise and Moraine Lake Bus Shuttle)에 도착했다. 차는 이곳에 세워두고 셔틀로 갈아타야 한다. 특히 모레인 호수(Moraine Lake)는 이제 개인 차량으로 들어갈 수 없어 셔틀이나 허가된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데 비해 주차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예약이 열리는 날에는 알람까지 맞춰두고 기다렸다. 시차 때문에 나는 밤 12시부터 꼬박 1시간 반을 대기한 끝에, 간신히 레이크 루이스를 먼저 가는 셔틀 표를 구했다. 예약에 성공한 순간은 거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뻤다. ㅎㅎㅎ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이른 아침 공기는 꽤 차가웠다. 우리는 경량 파카를 챙겨 입고 있었는데, 큰 배낭을 메고 본격적으로 산을 오를 준비를 한 서양 청년들은 반바지에 반팔 차림이었다. 오메~~~ 저 사람들은 안 추운가 보네...
셔틀을 타고 약 30분쯤 달려서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에 도착했다. 호수로 가까이 갈수록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설렘 가득! 16년 만에 다시 만난 호수는 여전히 에메랄드 빛이었다. 그리고 호숫가의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Fairmont Chateau Lake Louise) 호텔도 예전 그대로, 멋진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제는 내 발이었다
이날 가장 걱정되는 건 날씨도 셔틀도 아니었다. 내 발이었다. 새끼발가락 골절과 신경염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였다. 평지를 걸어도 욱신거렸고, 오르막에서는 저릿한 통증이 발등까지 올라왔다. 나의 대비책은 단순했다. 배낭 옆주머니에 Cooling 스프레이를 넣어두고, 통증이 올라오면 아무 데나 앉아 신발을 벗고 뿌리는 것. (실제로 매우 도움이 되었다.)
레이크 루이스 호숫가에서 트레일 입구를 보며 잠깐 망설였다. ‘그냥 호수 주변만 걷고 돌아갈까?’ 하지만 새벽 다섯 시 반부터 여기까지 달려 왔는데 ... 결국 끝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역시! 레이크 루이스
아침의 레이크 루이스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맞은편 빅토리아 산의 만년설과 암벽이 수면 위에 그대로 한 번 더 그려져 있었다. 16년 전에도 봤고, 사진으로도 수백 번 본 풍경이다. 그런데 실물 앞에서는 역시 달랐다.
차가운 공기와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까지 함께 느껴지는, 역시! 레이크 루이스였다. 그대로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 풍경이다.


올라갈수록 달라지는 호수
오늘의 트레킹 코스는 레이크 루이스 → 미러 레이크 → 레이크 아그네스 → 리틀 비하이브. 위 지도에서 7번 트레일을 따라 걸었고, 조금 더 멋진 전망을 보고 싶어 리틀 비하이브까지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다. 쉬엄쉬엄 걸어서 왕복 3시간 정도 걸렸다.
문제는 역시 발이었다. 나는 30~40분마다 Cooling 스프레이를 뿌려가며 얼얼하고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고 걸었다.
이 길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올라갈수록 계속 달라지는 레이크 루이스의 모습이었다. 호숫가에서는 짙은 청록색이었고, 조금 올라 나무 사이로 보면 터키색, 더 높은 곳에서는 계곡 아래 놓인 옥 조각처럼 보였다. 같은 호수인데도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아! 이 맛에 산을 오르는구나.


미러 레이크 (Mirror Lake)
중간에 만난 미러 레이크(Mirror Lake)는 이름처럼 조용했다. 작고 얕은 수면 위로 빅 비하이브(Big Beehive)가 거울처럼 뒤집혀 있었다. 그곳에서 한참 앉아 있었다. 발은 계속 아팠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가라앉았다. 흔들리지 않는 물에는 사람을 잠잠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사진이 풍경을 충분히 담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산 위에서 마시지 못한 차 한 잔
마침내 레이크 아그네스(Lake Agnes)에 도착했다. 해발 약 2,135m. 호수 옆에는 유명한 레이크 아그네스 티 하우스 (Lake Agnes Tea House)가 있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기까지 올라가면 꼭 차 한 잔 마셔야지’하고 마음먹었던 곳이다. 그런데 줄이 너무 길었다. 평소 같으면 기다렸겠지만 이날은 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차는 포기하고 호숫가 바위에 앉았다.
산 위에서 먹으려고 싸 온 방울토마토, 초콜릿, 육포를 먹으며 주변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봤다. 티 하우스 앞 주문 줄은 점점 더 길어졌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주문해온 차를 들고 호숫가에 자리를 잡았다. 각자 싸 온 샌드위치와 과일을 꺼내 나눠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호숫가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다. 나도 남편도 그 풍경 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마음이 조금씩 포근해지고,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산악 티 하우스는 20세기 초 캐나다 태평양 철도가 만들었고, 지금도 자동차 도로가 없다. 밀가루와 설탕, 찻잎 같은 물자도 쉽게 트럭으로 올릴 수 없는 곳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마시지 못한 차 한 잔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쉽게 주문하려 했던 그 차는 먼저 힘겹게 산을 올라와야 얻을 수 있는 차였다.
레이크 아그네스라는 이름은 캐나다 초대 총리 존 A. 맥도널드의 부인 아그네스 맥도널드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는 기차 맨 앞의 배장기(cowcatcher)에 앉아 로키 풍경을 보았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19세기의 총리 부인이 권력을 이용하여 기차 앞머리에 앉아 로키를 바라보았다니, 어의가 없다.
그리고 Lake Louise의 ‘Louise’는 빅토리아 여왕의 딸 루이즈 캐롤라인 앨버타 공주의 이름에서 왔다. 앨버타주의 이름도 같은 사람으로부터 왔다. 여행지의 이름 속에 항상 역사 속 누군가가 있어서 재미있는 것 같다.

리틀 비하이브(Little Beehive)
충분히 쉬었더니 발이 덜 아팠다. 다시 한번 스프레이를 뿌리고, 리틀 비하이브를 향했다. 리틀 비하이브는 레이크 아그네스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전망대이다. 이름 그대로 큰 벌집모양의 봉우리인데 미러 레이크에서 봤던 빅 비하이브보다 작은 봉우리라 리틀 비하이브라고 불린다. 그러나 전망은 전혀 작지 않았다. 예전에는 산불 감시대가 있던 곳으로, 정상에 서면 레이크 루이스와 보우 밸리가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인다.



하산길에서
전망대까지 완주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발이 아프다는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비가 된 건지... 스프레이를 너무 뿌린 건지...
발걸음 가볍게 내려오는 길에 말을 타고 산을 내려오는 관광객 무리를 만났다. 경사를 내려올땐 정말 아슬아슬해 보였다. 좀 짜증이 났던 점은 말들이 계속 똥, 오줌을 하산길에 뿌리고 다녀서였다. 말들도 힘들었겠지... 무거운 사람들을 등에 지고 산을 오르내렸으니... 말과 사람이 다니는 길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의 경치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레이크 루이스의 잔상이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스위스에서 온 안내인들
산에서 내려와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 앞을 지나다 청동상 하나를 발견했다. 챙 넓은 모자와 배낭, 긴 지팡이. 받침돌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Canadian Pacific Railway Swiss Guides Centennial 1999

19세기 말 캐나다 태평양 철도는 유럽에서 전문 산악 가이드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철도를 타고 서부까지 온 관광객들에게 로키의 산과 빙하를 경험하게 하려면, 산을 안전하게 안내할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동상을 보니 첫날 캔모어에서 알게 된 로렌스 그라시가 다시 떠올랐다. 이탈리아에서 온 광부. 낮에는 석탄을 캐고, 쉬는 날에는 산길을 만들고 사람들을 산으로 안내했던 사람.
한쪽에는 철도회사가 스위스에서 초빙한 전문 가이드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광산 장화를 신고 스스로 길을 냈던 이민자 광부가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결국 그들의 흔적은 지금의 로키 트레일 위에서 만난다. 내가 걷는 길은 누군가가 먼저 걸었고, 누군가는 지켜온 길이었다.
애프터눈 티
산을 내려오니 오후 두 시. 점심은 Fairmont Château Lake Louise의 애프터눈 티였다. 이 자리 역시 몇 달 전 미리 예약해 두었다.그런데 메뉴판을 펼치는 순간, ‘아차.’ 가격이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잠깐 고민했다. ‘그냥 나갈까?’
하지만 세 가지 이유가 나를 붙잡았다. 새벽부터 움직여 이미 지쳐 있었고, 몹시 배가 고팠고, 무엇보다 창밖 풍경이 너무 좋았다. 오전 내내 걸었던 산이 통유리창 너머에 거대한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결국 먹기로 했다.


3단 트레이에는 작은 샌드위치와 스콘, 케이크와 페이스트리가 차곡차곡 올라왔다. 눈으로 먼저 배가 불렀다. 그리고 정말 배가 불렀다. 결국 다 먹지 못해 남은 것은 포장했다. 로키에서 꽤 비싼 점심을 먹고 나온 사람 손에 테이크아웃 봉투가 들려 있는 모습이라니. 그런데 그 봉투는 다음 날 아침 아주 훌륭한 아침식사가 되었다. ^^




그리고 모레인 호수
오후에는 레이크 커넥터를 타고 모레인 호수(Moraine Lake)로 이동했다. 원래 계획에는 라치 밸리 하이킹이 있었지만, 아침부터 산을 걸었던 발로 다시 올라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남편과 한시간 동안 카누를 타기로 했다. 호수 위를 천천히 돌아 다녔다.




청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밝고, 에메랄드라고 하기에는 푸른빛이 강했다. 빙하가 암반을 갈아 만들며 생긴 미세한 입자들이 햇빛과 만나면서 이런 독특한 색을 만든다고 한다. 원리를 알고 봐도 여전히 신기했다.
노를 저을 때마다 뱃머리가 그 색을 반으로 갈랐다. 고개를 들면 Valley of the Ten Peaks, 열 개의 봉우리가 호수를 둘러싸고 있었다. 물 위에서는 소리도 달랐다. 사람 목소리는 멀어지고, 노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소리와 뱃전에 부딪히는 작은 물결 소리만 들렸다.
아침에는 산을 걸으며 호수를 내려다봤고, 오후에는 호수 위에 떠서 산을 올려다봤다. 같은 로키인데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원래 계획했던 하이킹을 포기한 것이 아쉽지 않았다. 그러나 더 잘한 것 같았다. 모레인에서는 꼭 카누를 타야 한다!!!


25,000 걸음
숙소에 돌아와 휴대폰을 확인했다. 25,000걸음... 미쳤네 미쳤어. ㅎㅎㅎ 발이 아픈 사람이, 계속 Cooling 스프레이를 뿌려가며, 새벽 다섯 시 반부터 저녁까지 걸은 숫자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은 분명 피곤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너무 힘들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앞선 여행기에서 나는 이런 말을 썼다. 여행에서 쉬는 것은 몸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인지도 모른다고. 이날은 그 말이 시험대에 오른 날이었다. 몸은 분명 아팠다. 그런데 머릿속은 하루 종일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통증은 있는데 피로는 없는 상태. 그런 것이 정말 가능하더라^^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칵테일 한잔씩 마시며 피로를 날려버렸다.^^ 내일은 늦잠을 자리라 다짐하며...

몇 달 전의 나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셔틀 예약번호를 다시 떠올렸다. 몇 달 전 예약이 열리는 날, 알람까지 맞춰놓고 간신히 잡았던 좌석. 그때는 셔틀 하나 예약하는 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이날 하루가 끝났을 때 생각이 달라졌다. 그 예약이 없었다면 이른 아침의 레이크 루이스도, 미러 레이크도, 마시지 못한 레이크 아그네스의 차도, 오후의 모레인 호수도 없었을지 모른다.
여행은 현지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 예약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그리고 때로는 몇 달 전의 작은 수고가 여행지에서 하루 전체를 만들어준다.
그날 밤, 나는 몇 달 전 알람까지 맞춰가며 셔틀을 예약했던 과거의 나에게 진지하게 고마워했다.
[잠깐] 왜 어떤 호수는 Lake가 앞에 오고, 어떤 호수는 뒤에 오는 걸까?
영어 호수 이름의 기본형은 Moraine Lake, Mirror Lake처럼 설명하는 말이 앞에 오고 Lake가 뒤에 붙는 형태다.
Lake Louise, Lake Agnes처럼 거꾸로인 것은 프랑스어·라틴어 어순이 들어온 경우다. 수식이 아니라 동격이어서, '모레인 같은 호수'가 아니라 '루이스라고 하는 그 호수'가 된다.
로키에서는 대체로 이렇게 갈린다.
이름이면 앞에 — Lake Louise(루이즈 공주), Lake Agnes(아그네스 맥도널드)
성이면 뒤에 — Peyto Lake(빌 페이토), Hector Lake(제임스 헥터)
성은 '페이토의 호수'처럼 수식어로 들어가고, 이름은 하사하듯 붙어서 동격이 되는 셈이다. 물론 Patricia Lake 같은 예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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