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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사이트/북미 인문기행

[캐나다] 로키(Rocky) 자유여행 ④ 낮 한시에 일어나 만난 요호 국립공원

by 된장언니 2026. 10. 7.

타카카우 폭포에서 에메랄드 호수, 내추럴 브리지까지

 
 

[캐나다] 로키(Rocky) 자유여행 ③ 아픈 발로 25,000걸음 걷다.

레이크 루이스에서 걷고, 모레인 호수에서 노를 젓다 [캐나다] 로키(Rocky) 자유여행 ① 캔모어 보우강 트레일과 엔진 브리지캐나다 로키(Rocky) 산맥은 북미 대륙의 등뼈가 멋지게 솟아오른 구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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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한 시에 일어났다

 
이날은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Fairmont Banff Springs Hotel)의 브런치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로키의 성'이라 불리는 밴프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다. 식당 '더 버밀리온 룸(The Vermillion Room)'에 일요일 특별 브런치를 예약해 두었다. 그것도 한 달 전에^^.
 
아침에 여유롭게 브런치를 먹고 천천히 요호로 넘어간다는, 꽤 그럴듯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눈을 뜨니 낮 한 시였다.
 
전날 25,000걸음을 걷고 지친 몸뚱이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시차까지 겹쳤던 것이다. 새벽에 깨어 한참을 뒤척이다 늦게 다시 잠들었고, 그다음은 기억이 없다. 알람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떠 시계를 보고 그냥 정신이 나가버렸다. 화들짝 놀라 서두르기에도 너무나 늦은 시간...  브런치는 이미 끝났다. 멋지게 계획했던 우리의 일요일 오전이 통째로 사라졌다.
 
허둥지둥 채비를 하고 차에 올랐다. 브런치는 물 건너갔지만 요호 국립공원(Yoho National Park)은 놓칠 수 없었다. 오후 두 시가 넘어 요호로 출발하면서 마음이 급했다. 이렇게 늦게 출발해서 국립공원 하나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직진!!!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이날은 잠을 푹 잔 덕분에 상태가 아주 좋았고, 요호의 멋진 자연경치에 감동받은 감사한 날이었다. 

요호 국립공원(Yoho National Park)


요호라는 이름


요호 국립공원(Yoho National Park)은 밴프에서 서쪽으로 달려 대륙분수령을 넘으면 만난다. 앨버타주에서 브리티시컬럼비아주로 넘어가는 것이다. 밴프에서 요호 국립공원 안의 중심도시 필드(Field)까지는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행정구역도 달라지고 시간대도 달라지지만 풍경은 여전히 거대한 캐나다 로키 안에서 이어져 있다.
 
요호(Yoho)는 크리어(Cree)에서 온 말로, 놀라움과 경외를 나타내는 감탄사라고 한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자면 '와', '세상에'쯤 될까... 지명이라기보다 풍경 앞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소리에 가깝다. '요호~~~' 이름 참 잘 지었다. 이날 오후, 내가 이 골짜기에서 몇 번이나 내뱉은 소리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이곳의 공원 역사는 18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마운트 스티븐 일대가 자연경관 보호를 위한 공원 구역으로 지정되었고, 1901년 요호 계곡과 에메랄드 호수 등을 포함하도록 크게 확장되면서 '요호 파크 리저브(Yoho Park Reserve)'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요호 국립공원 여행 지도, 내가 다녀온 세곳을 ChatGpt가 그렸다.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


타카카우, 장엄한 물줄기


첫 목적지는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여는 순간, 물이 떨어지는 거대한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아직 폭포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굉음이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다니... 빨리 보고 싶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타카카우 역시 크리어에서 온 말이다. '그것은 장엄하다(It is magnificent)'라는 뜻이란다. 폭포를 마주하는 순간, 아~~ 그 이름 참 잘 지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카카우 폭포의 높이는 약 373미터. 캐나다에서도 손꼽히는 높은 폭포다. 절벽 꼭대기에서 쏟아진 물줄기가 중간의 바위에 부딪히며 폭발하듯 부서지고, 그 물이 다시 하얀 안개가 되어 계곡으로 흩어진다.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 가는 길의 이정표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에서서 떨어진 물이 요호(yoho)강으로 합류하여 흐른다.


우리가 간 때는 7월 중순이었다. 폭포에 가까이 다가가자, 물보라가 바람을 타고 수십 미터 밖에서부터 날아왔고, 얼굴이며 머리며 옷이며 순식간에 젖어 버렸다. 게다가 너무 추워서 감기 걸릴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7월인데도 얼음과 눈에서 내려온 물을 온몸으로 맞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젖은 채 서서 고개를 들어 폭포를 올려다보고, 그 물보라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우리도 그랬다. 추워도 너무 좋아서 떠날 수가 없었다. 돌아서기 너무 아쉬워서 '두어 걸음 돌아오다 다시 바라보고 또 보고...'를 계속 반복했다.  (남편은 이 폭포가 본인의 인생 폭포라고 했다.)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와 생쥐처럼 젖은 1인 (너무 추웠다)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


팔을 벌리고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지금 사진을 보면 얼굴은 활짝 웃고 있는데 어깨는 추워서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 춥고 젖었는데 즐겁다니!!! 

여행은 도파민을 폭발시키고, 나를 미치게 한다. ^^

 

빙하가 만든 풍경


폭포 위에 뭐가 있길래, 왜 저 많은 물이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걸까. 절벽 꼭대기에서 강줄기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답은 빙하다.
 
과거 이 골짜기를 거대한 빙하가 채우고 있을 때, 크고 두꺼운 본류 빙하는 골짜기 바닥을 깊이 깎아냈다. 반면 옆에서 합류하던 작은 빙하는 그만큼 깊게 파내지 못했다. 빙하가 물러난 뒤 작은 골짜기는 본 골짜기보다 높은 자리에 남게 되었다. 이런 지형을 현곡(懸谷), 즉 ‘걸린 골짜기’라고 부른다. 그 높은 골짜기의 끝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가 된다.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 물이 U자 곡을 따라 흐르는 요호강으로 합류한다.

 
요호 계곡이 좁은 V자가 아니라 넉넉한 U자 모양인 것도 같은 이유다. 물은 골짜기를 V자로 깎고, 거대한 얼음(빙하)은 골짜기 전체를 밀어내며 U자로 만든다.
 
예전에 노르웨이 피오르드를 바라보며 비슷한 풍경을 본 적이 있다. 피오르드 절벽 중턱에서 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들. 원리는 같다. 노르웨이에서는 빙하가 만든 U자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왔고, 이곳에서는 그 골짜기 사이로 강이 흐른다. 지구 반대편의 두 풍경 모두 빙하가 만든 작품이라니...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를 등지고 한컷! 멀리 설산이 멋지고 모델도 굿!
타카카우 폭포(Takakkaw Falls)를 등지고 한컷!
요호(Yoho)강

그런데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


폭포를 보며 감탄하다가, 조금 불편한 생각이 따라왔다. 요호의 폭포와 강, 호수는 지금도 빙하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공원측은 요호의 빙하 융수가 폭포와 청록색 호수, 키킹호스강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물 공급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빙하들이 지금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캐나다 2024년 기후 보고서는 서부 캐나다의 빙하들이 최근 수십 년 동안 빠르게 후퇴해 왔으며, 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금세기 말까지 상당한 빙하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서 이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눈앞에서는 폭포 물이 굉음을 내며 쏟아지고 있는데, 그 물을 만들어내는 빙하는 장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니... 이 사라지는 빙하 이야기는 며칠 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에서 훨씬 더 직접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건 그때 가서 쓰기로 하고, 지금은 그저, 폭포 앞에서 온몸이 젖은 채 한참을 올려다보았다는 좋았던 기억으로 마무리하겠다.



에메랄드 레이크(Emerald Lake)
에메랄드 레이크(Emerald Lake)

에메랄드 레이크


다음은 '에메랄드 레이크(Emerald Lake)'였다. 사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바로 전날 레이크 루이스와 모레인 레이크를 봤기 때문이다.
로키에서 가장 유명한 두 호수를 연달아 봤으니, 세 번째 호수가 시시해 보일까 봐... 그러나 기우였다.
 
에메랄드 레이크는 이름 그대로였다. 어제의 모레인 레이크가 형광빛에 가까운 터키색이었다면, 에메랄드 레이크는 조금 더 부드럽고 깊은 초록, 정확히 에메랄드 빛이었다. 호수 옆쪽으로 나무다리가 이어지고, 건너편에는 통나무로 지은 에메랄드 레이크 롯지(Emerald Lake Lodge)의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에메랄드 레이크(Emerald Lake)
에메랄드 레이크(Emerald Lake)
에메랄드 레이크(Emerald Lake)

 
그리고 물 위에는 카누들이 떠 있었다. 그림 같았다. 문제는 우리가 그 카누를 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너무 늦게 도착해 대여 시간이 끝나 있었다. 어제 모레인 호수에서 한 시간 동안 노를 저으며 느꼈던 그 조용한 감각을 여기서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낮 한 시에 일어난 대가였다.
 
대신 기념품 가게에 들러 폭풍 쇼핑을 하고,  에메랄드 레이크 롯지 안까지 걸어 다니며 호수를 다른 방법으로, 다양하게 만끽했다. 
 

에메랄드 레이크(Emerald Lake)
에메랄드 레이크(Emerald Lake)

 


내추럴 브리지


에메랄드 호수에서 나오는 길에 작은 이정표 하나가 보였다.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 원래 계획에는 없었다. 이런 다리가 있는지 몰랐다. 그냥 가는 길에 있길래 잠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아주 강렬했던 풍경을 거기서 만났다.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 입구 이정표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와 키킹호스강(Kicking Horse River)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와 키킹호스강(Kicking Horse River)
키킹호스강(Kicking Horse River)


키킹호스강(Kicking Horse River)이 단단한 암반 사이를 파고들어, 마치 바위로 만든 다리 아래를 흐르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본래 폭포였던 자리에서 오랜 세월 급류가 아래쪽의 상대적으로 약한 암석을 깎고 틈을 넓히면서, 강물이 바위 아래로 길을 냈다. 위쪽의 단단한 암반은 남아 지금의 ‘자연의 다리’가 되었다.  

키킹호스(Kicking Horse), 말 그대로 ‘말에 차인’이라는 뜻이다. 1858년 팰리서 탐험대의 제임스 헥터가 이곳을 탐사하다 말에게 가슴을 걷어차여 정신을 잃은 사건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이곳의 고갯길이 키킹호스 패스(Kicking Horse Pass)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강에도 같은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흐르는 물은 아름답다기보다 무서웠다. 빙하 퇴적물을 품은 회백색의 급류가 굉음을 내며 바위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넓게 흐르던 물이 좁은 틈으로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그 안에서 폭발하듯 뒤집힌다.
 
한참을 서 있었다.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숨이 멎는다’는 표현을 함부로 쓰고 싶지는 않은데, 그때는 정말 그랬다. 아무 기대도 없이 차를 세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날 계획했던 어느 장소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와 키킹호스강(Kicking Horse River)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와 키킹호스강(Kicking Horse River)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와 키킹호스강(Kicking Horse River)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



 
이날 늦게 시작한 우리의 하루를 완성한 것은 로키의 긴 여름 해(sun)였다. 오후 두 시가 넘어 밴프를 출발했는데도 타카카우 폭포와 에메랄드 호수, 내추럴 브리지를 모두 보고 돌아올 수 있었다. 북위 51도 부근의 로키는 7월이면 해가 아주 늦게 진다. 저녁 9시가 되어도 좀처럼 어두워지지 않았다. 오전을 통째로 날려버렸는데, 고마운 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요호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다. 루이스 호수와 모레인 호수의 명성에 가려 밴프 여행에서 흔히 ‘시간이 남으면 가는 곳’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전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뜻밖의 장면들이 많아서 더 좋았다. 기대 없이 갔다가 잔뜩 감동받고 돌아온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