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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깊게 읽기

[싱가포르] 숍하우스(Shophouse)의 모든 것

by 조타 2026. 10. 13.

캐피타스프링에서 촬영한 차이나타운의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붉은 지붕의 숍하우스들
벨기에, 네덜란드의 운하 주택 (출처 : unsplash.com)

 

싱가포르의 도심을 걷다 보면 현대식 초고층 빌딩 사이에 붉은 지붕의 이국적인 건축물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건물을 가만히 올려다보면 암스테르담의 운하 주택(Canal House)이나 벨기에의 테라스 하우스와 유사한 느낌이 들면서도, 중국 푸젠성과 광둥성에서 볼 수 있는 2층짜리 전통 주상복합건물도 함께 떠오른다. 문에는 한자로 써진 현판이 걸려 있기도 하고, 유럽 그리스 신전에서 볼 법한 기둥 모양을 따온 것도 있다. 색상은 파스텔톤에서 인디고블루까지 다양하면서도 화려하다.

 

차이나타운 닐 로드(Neil Road)의 숍하우스

 

이런 건물은 1층이 주로 상점으로 쓰이기 때문에 숍하우스(Shophouse)라고 부른다. 물론 전체 층을 주거 목적으로 사용하는 비슷한 양식의 건물은 공식적으로 테라스 하우스(Terrace House)라고 부르지만, 구조와 뿌리가 같기에 이 글에서는 편의상 모두 '숍하우스'라 통칭하겠다.
 
싱가포르의 골목길 구석구석에서 숍하우스를 마주하다 보면, 이 건축물이 도시 안에서 갖는 가치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직접 발을 디뎠던 차이나타운과 카통,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거리에서 만난 숍하우스의 풍경을 떠올리며, 이 매력적인 공간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숍하우스의 정의와 기원 : 문화의 융합이 낳은 '제3의 건축'

 

숍하우스는 어느 한 문화권에서 독자적으로 생겨난 건축 양식이 아니다. 서구 열강의 도시 계획과 중국 이민자들의 전통, 그리고 동남아시아 현지의 기후 환경이 서로 긴밀하게 융합되면서 탄생한 '독창적인 제3의 건축'에 가깝다. 그 화려한 외관 뒤에는 여러 대륙을 거쳐 온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 숨어 있다.

 

중국 광둥성의 점옥(店屋)과 방글라데시의 방갈로(Bungalow) (출처 : Trip.com, Gampminder)


그 시작점은 중국 푸젠성과 광둥성에서 바다를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이들은 고향에서 쓰던 전통 건축 양식을 싱가포르 땅에 이식했다. 1층은 상점이나 창고로 쓰고 2층은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상하점주(商下店住) 형식의 '점옥(店屋)'이 숍하우스의 뼈대가 되었다.

여기에 서구의 건축 문화가 절묘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이 인도로 진출하면서 현지 원주민들의 주거 형태인 '방글라'의 개방형 구조를 차용했고, 이를 통해 비와 햇빛을 피할 수 있는 복도를 갖춘 '방갈로(Bungalow)' 양식이 도입되었다.

 

1828년판 래플스 타운 플랜(Raffles Town Plan) (Singapore City Gallery 촬영)


숍하우스가 오늘날과 같은 정제된 형태를 갖추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영국의 식민지 도시 계획인 '래플스 타운 플랜(Raffles Town Plan)'이었다. 식민 정부는 1822년 도시개발 위원회(Town Committee) 지침을 통해 엄격한 법적 규제를 시행했다. 모든 건물은 도로와 접한 면에 일정한 너비의 베란다를 갖추어야 하며, 이 베란다들이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져 지붕이 덮인 통로로서 보행자에게 항상 개방되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 규제는 오늘날 숍하우스의 가장 큰 상징이자, 성인 발 다섯 길이 남짓한 너비의 보행로인 베란다 일명 '파이브-풋 웨이(Five-Foot Way)'를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다.

건물의 독특한 실루엣을 완성한 것은 네덜란드의 식민지 세법이었다. 당시 정부는 건물이 도로와 접한 전면부의 너비를 기준으로 재산세를 부과했다.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했던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전면의 너비는 최소한으로 좁히고, 내부를 뒤로 길게 빼는 터널 형태(Tunnel-like structure)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척박한 타향살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민자들의 현실적인 계산과 영국의 정교한 도시 계획이 맞물리면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거리 풍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숍하우스 구조적 특징 : 열대기후를 고려한 최적의 건축미학

 

숍하우스의 주요 구성요소(Singapore City Gallery 전시이미지를 참고해서 만들었음)

 

주치앗 로드(Joo Chiat Road)에 위치한 숍하우스에서 볼 수 있는 보행통로(Five-Foot Way)와 파사드

 

숍하우스의 내부와 외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미학적인 아름다움 이전에 열대의 기후에 적응하고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건물의 외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층 전면에 위치한 보행 통로(파이브 풋 웨이)다. 약 5피트 너비의 지붕 덮인 이 길은 통행하는 사람들을 열대의 강렬한 직사광선과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폭우로부터 보호해 준다. 통로의 천장이자 2층의 바닥에 해당하는 위치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2층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이 보안용 감시 구멍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며 문 앞에 온 방문자가 누구인지 안전하게 확인하곤 했다.

 

에메랄드 힐 24번지 숍하우스의 입구 문과 핀투파가르(Pintu Pagar)


건물의 출입구와 창문 역시 열대 기후와 프라이버시를 동시에 고려해 설계되었다. 본 대문 앞에는 '핀투 파가(Pintu Pagar)'라고 불리는 허리 높이의 낮은 나무 여닫이문이 추가로 설치되어 있는데, 대문을 완전히 열어두어도 외부의 시선을 적절히 차단해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선선한 바람이 실내로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돕는 장치다. 

 

차이나타운 모스크 스트리트(Mosque Street)에 위치한 숍하우스 2층의 루버창
차이나타운 닐로드(Neil Road)에 위치한 숍하우스의 루버창과 전면 파사드 장식


2층 이상의 외벽에 설치된 나무 살 형태의 '루버 창' 또한 직사광선은 막아주고 바람은 안으로 들여보내 실내 온도를 낮추는 기후 적응형 구조다. 건물의 전면부인 파사드는 소유주의 문화적 배경과 부의 수준을 드러내는 건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데, 이곳은 유럽식 기둥, 중국식 도자기 타일, 회반죽 문양 등으로 다채롭게 장식되어 거리를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페낭의 페라나칸맨션의 중정(촬영 : Supanut Arunoprayote, 출처 : wikipedia)


이러한 외관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일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이 펼쳐진다. 숍하우스는 1층을 상점이나 식당 같은 상업 공간으로 쓰고, 2층 이상을 주거 공간으로 활용했다. 건물 전체의 형태는 도로와 접한 전면이 매우 좁고 뒤쪽으로 깊숙하게 뻗은 직사각형 터널 모양을 하고 있다. 사방이 막히고 뒤로 긴 구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채광과 환기 문제는 건물 중간에 지붕을 뚫어 만든 작은 마당인 중정을 통해 해결했다. 중정은 자연 채광을 건물 깊숙한 곳까지 전달할 뿐만 아니라, 실내의 더운 공기는 위로 빠져나가고 찬 공기는 아래로 들어오게 하는 천연 환기구 역할을 했다. 이와 더불어 실내 천장을 높게 설계하여 가열된 공기가 사람의 머리 위쪽 공간에 머물도록 함으로써, 실내 체감 온도를 낮추는 효과를 거두었다.

 

탄종파가르 크레이그 로드(Craig Road) 숍하우스의 건물별 방화벽 설치 및 V자 모양의 점토 기와


마지막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안전장치들도 보인다. 이웃집과 공유하는 두꺼운 하중 지지벽인 방화벽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길이 옆 건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 위로 높게 솟아오른 형태로 축조되었다. 건물의 지붕은 열대 지역의 세찬 폭우 속에서도 빗물이 고이지 않고 빠르게 배수될 수 있도록 가파른 경사를 주어 지어졌으며, 그 위에는 V자 모양의 유약을 바르지 않은 점토 기와를 얹어 마무리했다. 

 

탄종파가르 크레이그 로드(Craig Road)의 숍하우스 후면 통로


사실 처음부터 이러한 방화벽이 의무로 설치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초중반의 초기 숍하우스는 주로 목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번 화재가 발생하면 골목 전체가 전소되는 대형 참사가 반복되곤 했다. 이에 따라 영국 식민 정부가 법령을 강화하고 건축 규제를 개선하면서 비로소 방화벽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나아가 1900년대 이후부터는 화재 시 소방대원이 원활하게 진입하고 주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건물 뒤편에 후면 통로(Backlane)를 의무적으로 확보하도록 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적 위험을 줄이고 도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가 건물의 형태를 바꾸어 나간 셈이다.

 

숍하우스의 건축양식의 변화 : 숍하우스의 여섯 가지 얼굴

 

싱가포르의 거리를 걷다 보면 모양도 색상도 제각각인 숍하우스들을 만나게 된다. 이 건물들은 지어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숍하우스가 지나온 세월의 변화를 여섯 가지 양식으로 나누고 있다. (내가 찾아본 논문에는 마지막 모더니즘 양식을 포함시키지 않기도 하고, 2차 과도기 스타일을 제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싱가포르 City Gallery의 분류 기준을 따르기로 하겠다.)

초기 스타일 (Early Style: 1840년 ~ 1900년) : 실용성을 중시한 소박하고 엄숙한 양식

 

숍하우스 초기 양식(1840년 ~ 1900년)

 

싱가포르가 영국령 자유무역항으로 지정된 초기에는 중국 남부에서 이주해 온 가난한 이민자들과 상인, 노동자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자본이 넉넉하지 못했기에 건물의 장식에 신경 쓰기보다는, 실용성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주거 및 상업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이 시기의 숍하우스는 대개 낮은 2층 구조로 지어졌다. 장식이 거의 없어 외관이 매우 소박하며, 창문 역시 단순한 직사각형 모양의 목재 창문이 사용되었다. 중국 맞배지붕이나 측벽(Party wall) 등의 중국 남부의 건축양식의 영향이 많이 보인다. 안전 측면에서는 방화벽 설치가 아직 의무화되지 않았거나 매우 낮게 축조되어 화재에 다소 취약한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사우스 브릿지 로드에 위치한 자마에 모스크(Masjid Jamae) 바로 옆의 숍하우스


지금도 차이나타운의 사우스 브릿지 로드(South Bridge Road), 아모이 스트리트(Amoy Street)와 텔록 아여 스트리트(Telok Ayer Street) 일대를 걸어보면 초기 형태의 담백한 숍하우스들을 만나볼 수 있다.

1차 과도기 스타일 (1st Transitional Style: 1900년대초) : 열대 기후의 고려와 초기 법적 규제의 시작

 

숍하우스 1차 과도기 양식(1900년대 초)

 

싱가포르의 무역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현지에 정착한 화교들이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시기다. 주민들은 좁고 낮은 초기 형태의 숍하우스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이룬 경제적 성공을 건물의 외관에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1884년 이후부터는 건물을 짓기 전 설계안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새로운 법적 규제(Statutory controls)가 시작되면서 건축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건축적인 가장 큰 변화는 건물의 높이가 3층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시기를 전후해 연이은 대형 화재를 겪으면서, 지붕 위로 높게 솟아오른 두꺼운 방화벽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의무화되었다. 건물의 깊이와 규모가 커짐에 따라 효과적인 환기가 중요해지면서 말레이 양식의 환기창 설치가 급증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붕과 처마, 난간 등에 섬세한 말레이식 목공예 조각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부유한 화교 상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중국에서 직접 녹색 유약 기와를 수입해 차양에 얹거나, 파사드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기도 했다. 여기에 창문 주변으로 유럽식 회반죽(스투코) 장식이 추가되는 등 전반적인 파사드가 초기보다 한층 세련된 형태로 변화했다. 

이러한 1차 과도기 스타일 숍하우스는 리틀 인디아(Little India)의 캠벨 레인(Campbell Lane) 39번지와 차이나타운 주변, 그리고 당시 화교 사회의 부의 중심지였던 닐 로드(Neil Road) 일대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후기 스타일 (Late Style: 1900~1940) : 중국 바로크 양식이라 칭하는 가장 화려한 황금기

 

숍하우스 후기 양식

 

싱가포르의 고무 및 주석 무역이 정점에 달하며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시기다. 서양식 교육을 받은 부유한 이민자 세대와 페라나칸 등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동서양의 화려한 건축 양식을 혼합해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바로크(Chinese Baroque) 양식'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는 숍하우스 역사상 가장 화려한 황금기로 평가받는다.

 

에메랄드 힐의 숍하우스


이 시기의 건물은 3~4층 규모로 고층화되고 대형화되었으며, 정교한 장식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건물 전면에는 중국식 상징물인 용이나 봉황, 꽃 문양과 함께 유럽식 코린트 및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 그리고 말레이식 목재 스크린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또한 화려한 수입산 유약 세라믹 타일로 벽면을 뒤덮었으며, 문 앞에는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낮은 여닫이문인 핀투 파가가 적극적으로 설치되었다. 

 

카통 쿤셍 로드의 숍하우스


카통(Katong) 지역의 쿤셍 로드(Koon Seng Road)에 늘어선 파스텔톤 숍하우스들과 오차드 로드 뒤편의 에메랄드 힐(Emerald Hill)의 페라나칸 숍하우스가 이 시절의 풍요로움과 화려한 미감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2차 과도기 양식 (2nd Transitional Typology: 1930년대 초) : 단순함과 모더니즘의 전조

 

2차 과도기 양식의 숍하우스

 

1929년 미국발 세계 대공황의 여파는 싱가포르의 화교 비즈니스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이 암울한 경제적 상황 속에서 유럽의 모더니즘 건축 담론이 싱가포르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기반의 유토피아적 모더니즘은 과거의 착취적이고 과시적인 장식주의와의 완벽한 단절을 선언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조의 영향으로 숍하우스의 외관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기존의 기둥과 필라스터(벽면 기둥)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화려한 장식을 과감히 깎아내고 단순화한 스트립 클래식(Stripped Classical)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화려함의 극치였던 바로크 시대의 코린트식 기둥 대신, 그리스 초기 스타일인 도리스식이나 토스카나식 기둥으로 회귀한 것도 이 시기이다. 이에 따라 과거 파사드를 가득 채웠던 복잡한 동식물 문양의 부조 장식들이 모두 사라지고, 아주 평범하고 단순한 기하학적 패턴이나 간결한 선 위주로 옷을 갈아입으며 한층 정제된 미감을 보여주게 되었다.

 

닐 로드 9번지 숍하우스(출처 : Tea Chapter)


2차 과도기 양식의 대표적인 사례는 차이나타운의 파고다 스트리트(Pagoda Street) 일대와 케언힐 로드(Cairnhill Road), 그리고 바이포드 로드(Bideford Road)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차이나타운의 중심에 서 있는 닐 로드 9번지(9 Neil Road) 건물은 전형적인 2차 과도기 양식을 간직한 숍하우스로, 과거 싱가포르 정부가 역사적 숍하우스 보존 사업을 시작할 때 최초로 원형 복원 모델로 삼았던 역사적인 건축물이기도 하다.

아르데코 양식 (Art Deco Typology: 1930~1960) : 미래지향적 테크놀로지의 모더니즘 양식

 

아르데코 양식의 숍하우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싱가포르 점령과 중국 공산당 혁명 등 거대한 역사적 격변이 몰아쳤던 시기다. 영국 식민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당시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세대 로컬 건축가들은 식민지 지배 문화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귀국과 의식 변화는 전 세계를 휩쓸던 '아르데코' 트렌드와 맞물리며, 숍하우스 외관에서 과거 유럽의 클래식 문양이나 아시아의 전통 모티브를 완전히 지워내거나 유선형으로 간소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디자인적 영감을 과거의 역사나 전통에서 찾지 않고 자동차, 비행기, 여객선 같은 현대 기술의 기하학적 형태와 속도감 있는 유선형 라인에서 가져왔다. 특히 이 시기는 에어컨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때이기도 하다. 건물을 지을 때 자연 환기를 필수로 고려해야 했던 설계의 필요성이 점차 사라지면서, 전통적인 말레이식 창호의 비율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 건축사에서는 이 시기를 글로벌 서구 이데올로기와 현대 기술이 지역의 열대 건축적 논리를 앞지르기 시작한 첫 번째 사례로 평가하기도 한다.

 

티옹바루의 에스테트 전경
티옹바루 에스테트 (출처 : Visito Tiong Bahru)
차이나타운의 동야빌딩(출처 : wikimedia.org, 작가 Tony Ng)


이러한 아르데코 스타일을 가장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곳은 싱가포르 최초의 공공 주거 단지인 티옹 바루(Tiong Bahru) 에스테트(Estate)다. 이곳의 건물들은 모서리가 부드럽고 둥글게 처리된 유선형 외관과 기하학적인 선, 그리고 마치 여객선의 굴뚝이나 비행기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디자인을 보여준다. 또한 차이나타운의 창가에 위치한 옛 '동야 빌딩(Dong Ya Building)'(현재 포테이토 헤드가 입점해 있는 독특한 쐐기 모양의 건물)은 1939년에 지어진 대표적인 아르데코 숍하우스로, 화려한 장식 대신 수평으로 길게 뻗은 차양막과 강렬한 수직선이 자아내는 속도감이 매력적인 명소다. 이 밖에도 잘란 베사르(Jalan Besar) 거리 곳곳이나 차이나타운의 클럽 스트리트(Club Street) 초입에서도 건물의 꼭대기에 건축 연도가 기하학적인 타이포그래피로 선명하게 새겨진 아르데코 스타일의 숍하우스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모던 양식 (Modern Style: 1950~1960) : 철근 콘크리트로의 기술전환

 

모던양식의 숍하우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싱가포르가 자치권을 획득하고 독립을 향해 나아가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다. 급격한 도시화 과정 속에서 숍하우스 역시 과거의 전통적인 장식성보다는 대량 생산과 비용 절감, 그리고 철저한 기능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게 되었다. 이후 싱가포르 정부가 도심의 심각한 과밀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공공아파트(HDB) 공급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연스럽게 숍하우스의 신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 시기 건축의 가장 큰 기술적 전환은 벽돌 대신 철근 콘크리트(Reinforced Concrete)를 주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가파른 기와지붕 대신 수평의 평지붕(Flat Roofs)이 대세로 자리 잡았으며, 창문 또한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건물 전면부와 간결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외관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요소는 얇은 콘크리트 지느러미 모양의 차양막(Concrete Fins)과 환기구(Air Vents)였는데, 이는 기능적이면서도 장식적인 역할을 동시에 했다. 

 

발레스티어(Balestier) 328 로드에 위치한 모던 스타일 숍하우스


이러한 기능 중심의 투박한 콘크리트 형태를 지닌 마지막 세대의 숍하우스들은 지금도 잘란 베사르(Jalan Besar)나 로초(Rochor) 지역의 이면 도로를 걷다 보면 발견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상복합 양식이 현대적인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넘어가기 직전의 마지막 숍하우스의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들이다.

 

숍하우스의 어두운 이면

 

지금은 화려한 파스텔톤의 외관과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낭만적인 공간이 되었지만, 과거 숍하우스의 독특한 구조적 특징은 여러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베란다 폭동(Verandah Riots)


영국 식민 정부는 '파이브-풋 웨이'라 불리는 연속된 복도를 보행자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공 보행로(Public Sphere)이자 도시 미관을 위한 공간으로 규정했다. 반면 그곳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현지 상인들은 그 공간을 자신들의 사적 영역으로 여겼다. 상인들은 이곳에 상품을 산더미처럼 진열했고, 노점상들은 음식을 만들어 팔았으며, 가난한 이민자들은 이곳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던 상황에서 1872년 식민 정부가 정한 법령 또한 이 공간을 '보행자를 위한 공공도로이면서 동시에 각 가구주의 재산권 대상이 된다'는 모순을 품고 있어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이 모순된 법적 규제와 서민들의 생존권이 충돌하며 폭발한 사건이 바로 1888년의 '베란다 폭동(Verandah Riots)'이다. 식민 정부가 강력한 단속을 감행하며 통로를 전면 비우고 물품을 강제 압수하자,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은 중국인 노점상들과 소상인들이 격분했다. 여기에 중국계 비밀조직인 삼합회가 이들을 선동하면서 사태는 대규모 폭동으로 번졌다.

 

카통의 파이브-풋 웨이, 일명 베란다로 지금도 보행자의 통행권을 확보하며 상가의 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음
주치앗 로드의 파이브-풋 웨이, 일명 베란다로 지금도 보행자의 통행권을 확보하며 상가의 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음


결국 정부와 상인들이 타협안을 찾으면서 갈등은 일단락되는데, 최소 2인 이상이 지나갈 수 있는 보행 통로는 반드시 확보하되, 물건을 진열하는 세부적인 권리는 상점주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 타협의 과정에서 길거리의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된 영세 노점상들과의 갈등은 과제로 남았다. 훗날 이들을 한곳에 모아 위생적인 환경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공동 정착 시설을 마련해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는데, 이것이 오늘날 싱가포르의 독특한 식문화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커센터(Hawker Centre)'의 시작이다. 

사생활 보호와 취약한 보안을 극복하려는 노력


가로등도 제대로 없고 경찰의 손길이 닿지 않던 시절, 주민들은 보안을 위해 2층 바닥에 작은 '보안용 감시 구멍'을 뚫고 밖을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이 감시 구멍에 눈을 대고 아래에 서 있는 사람이 진짜 이웃인지 갱단원인지 먼저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어주곤 했다.

 

보안과 통풍을 위해 설치된 전통 목재 창문과 내부 철제 창살, 상부 환기창과 안쪽으로 열리는 목재 여닫이창, 핀투 파가르(Pintu Pagar)가 보임

 

사생활 보호와 통풍을 위해 설치된 허리 높이의 나무 여닫이문인 '핀투 파가' 또한 때로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주민들은 선선한 바람을 들이기 위해 안쪽의 두꺼운 대문은 열어둔 채 핀투 파가만 잠그고 생활했다. 하지만 성인이 마음만 먹으면 안쪽 빗장을 풀거나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구조 탓에, 집안에 사람이 있어도 좀도둑이 침입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게다가 공공 통로인 파이브-풋 웨이를 지나는 행인들이 문틈이나 위쪽 공간으로 집안 내부를 엿보면서 거주자와 눈이 마주쳐 시비가 붙는 등의 사생활 침해 다툼도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비밀 결사(삼합회)의 아지트가 된 숍하우스

 

차이나 타운의 숍하우스 골목인 트렝가누 스트리트(Trengganu Street)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숍하우스의 연결 구조는 삼합회의 완벽한 아지트이자 치외법권 지대로 기능했다. 갱단들은 숍하우스를 거점으로 도박장이나 아편굴, 매춘소 등을 운영했으며, 경찰의 기습 단속을 피하기 위해 벽을 몰래 뚫어 비밀 통로를 만들거나, 2층 창문을 통해 옆집 지붕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건물을 개조했다. 정문으로 경찰이 들이닥치면 뒤쪽 중정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지붕을 통해 유유히 도망쳤기에 당시 경찰들에게는 가장 까다로운 작전 구역이었다고 한다. 또한 외부의 눈과 귀를 차단할 수 있는 깊숙한 안쪽 방은 신입 조직원의 피의 맹세 의식을 치르거나 배신자를 심판하는 지하 법정으로 쓰였는데, 좁고 깊은 터널형 구조 덕분에 내부의 비명이나 소음이 거리로 쉽게 새어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후조절의 혁신 중정(Air Well)의 한계

 

한 채의 숍하우스에 1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칸막이방(큐비클)을 치고 밀집해 살다 보니, 건물 중간의 중정은 자연 환기구가 아닌 오물 배출구로 전락하기도 했다. 상층부 주민들이 요강에 담긴 배설물이나 쓰레기를 1층까지 들고 내려가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중정 공간을 향해 그대로 던져버리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층 중정 바닥은 늘 오물로 가득 차 건물 전체에 지독한 악취가 진동했다. 결국 맑은 공기를 순환시켜야 할 중정이 모기와 쥐들의 서식지가 되었고,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항상 열어두어야 했던 구조 탓에 19세기 말 콜레라, 결핵, 페스트 같은 전염병이 차이나타운 일대를 휩쓰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이러한 위생 문제와 더불어, 건물 중간이 위아래로 완전히 뚫려 있는 구조적 특성은 물리적인 위험을 낳기도 했다. 공간이 과밀화되면서 2층과 3층의 좁은 복도와 난간 주변까지 생활 공간으로 쓰이게 되었는데, 복도에서 뛰어놀던 어린아이나 발을 헛디딘 노약자가 상층부 난간에서 중정 바닥으로 추락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속출하곤 했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중정 상부 장대에 무거운 빨래를 널다가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안타까운 일도 잦았다.

 

2024년 10월 8일 시드 알위(Syed Alwi Road) 로드 84번지 내부에서 발생한 가스 폭발 사고

 

최근까지도 노후화된 숍하우스는 구조적 균열, 기둥변형, 지붕 누수로 인한 붕괴위험을 안고 있다. 구조가 길고 밀폐된 숍하우스 특성상,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중정과 연결된 건물 후면부(Real Portion)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초고층 빌딩이 거대한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싱가포르에서, 숍하우스는 낮고 좁은 틈새로 하늘을 내어주는 도시의 숨통이자 이 땅의 역사를 견뎌낸 시간의 흔적이다.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묵묵히 버텨내야 했던 중국인 이민자들의 땀방울, 생존을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목소리를 높였던 노점상들의 치열함, 그리고 미로 같은 중정 틈새로 피어오르던 슬픈 비극까지, 이 작은 건축물은 실로 다양한 궤적을 몸으로 받아내며 싱가포르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 이 오래된 방화벽 사이로 감각적인 카페가 들어서고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생기가 채워지는 것은, 과거를 허물지 않고 그 위에 현재의 삶을 영리하게 덧댄 이 도시만의 아름다운 공존 방식이다. 다음에 다시 싱가포르의 다채로운 골목을 걷게 된다면 파스텔톤 외벽 너머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가만히 되짚어보게 될 것 같다. 이 블로그를 쓰기 위해 숍하우스를 더 깊게 들여다보는 동안, 나 역시 이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도시에 조용히 젖어 들고 있었다.

 

피너클 앳 덕스턴 스카이브리지에서 바라본 차이나타운의 숍하우스와 불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