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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냐짱] 4박 5일 가족여행 2탄 - 원숭이 섬과 해양박물관, 바다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

by 조타 2026. 10. 8.

냐짱(나트랑)으로 여행의 목적지를 정한 가장 큰 이유는 바다에서의 온전한 휴양이었다.

아미나 나트랑 리조트(Hotel Amina Natrang) 해수풀과 바다
아미나 나트랑 리조트(Hotel Amina Natrang) 해수풀과 바다, 우리가 2박 묵은 호텔이다.


푸른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고급 리조트들, 그리고 그 투명한 바다 위에서 스노클링과 수영을 즐기며 다채로운 바닷속 생태계를 마주하는 상상은 언제나 설렌다. 우리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워낙 바다를 좋아해 진작부터 오리발과 물안경, 그리고 스노클(호흡관)까지 완벽하게 개인 장비를 갖춰두었다. 게다가 수영이 조금 서툰 남편과 나를 위해 안전을 책임져줄 구명조끼까지 든든하게 챙겼다.

문득 여행을 준비하며 호기심이 생겼다. 왜 수많은 여행자는 이곳의 바다에 열광하는 걸까. 그리고 왜 베트남의 유서 깊은 국립 해양박물관과 베트남 해양연구소 본원이 하필 이곳 냐짱에 자리 잡고 있는 걸까. 또 하나, 원숭이들은 어떻게 배를 타고 10분은 족히 가야 하는 저 먼 섬에 터를 잡고 살아가게 되었을까.

냐짱 바다가 품은 수많은 이야기에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겼다. 결국 우리는 그 해답을 찾아, 냐짱 바다의 깊은 역사를 보여주는 해양박물관과 신비로운 원숭이 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라오(Hòn Lao)섬 - 일명 원숭이 섬 (Đảo Khỉ)

 

롱푸 선착장(Bến tàu Long Phú)
롱푸 선착장(Bến tàu Long Phú)
원숭이섬 배표(입장권과 왕복 배 운항비가 포함되어 있음)
원숭이섬 배표(입장권과 왕복 배 운항비가 포함되어 있음)

 

우리는 아침 일찍 냐짱 북부에 자리한 냐푸만(Vịnh Nha Phu)의 롱푸 선착장(Bến tàu Long Phú)으로 향했다. 미리 예약해 둔 모바일 바우처를 보여주니 직원분이 무언가 적힌 커다란 종이를 건네며 20분 후에 배가 올 거라고 일러주었다.

 

선착장 안내판- 왼쪽부터 냐푸 투어(Nha Phu Tour), 원숭이 섬(Đảo Khỉ), 화란섬(Đảo Hoa Lan)
선착장 안내판- 왼쪽부터 냐푸 투어(Nha Phu Tour), 원숭이 섬(Đảo Khỉ), 화란섬(Đảo Hoa Lan)


선착장 안내판에는 서로 다른 세 가지 목적지가 적혀 있었다. 냐푸 투어(Nha Phu Tour), 화란섬(Đảo Hoa Lan), 그리고 우리가 갈 원숭이 섬(Đảo Khỉ)이었다. 냐푸 투어는 냐푸만 일대의 아름다운 해안과 섬들을 둘러보며 스노클링 포인트 등을 즐기는 맞춤형 프리미엄 코스다. 하지만 우리는 리조트에서도 충분히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어 냐푸 투어는 제외했다. 수많은 종류의 난초와 나비, 조류 등을 감상할 수 있는 화란섬 역시 젊은 딸들의 취향을 고려해 선택지에서 뺐다.

 

롱푸 선착장(Bến tàu Long Phú)에서 배를 기다리며
롱푸 선착장(Bến tàu Long Phú)에서 배를 기다리며


결국 우리의 목적지는 예정대로 원숭이 섬 하나로 좁혀졌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선착장 너머로 펼쳐진 잔잔한 바다와 흩어진 섬들을 감상했다. 그사이 딸들은 바다 풍경 대신, 선착장 주변을 느긋하게 배회하는 길고양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원숭이 섬으로 가는 배안에서 찍은 뗏목 집인 냐베(Nhà bè)
전통 어업시설인 거대한 들망과 페트병들


배가 선착장을 벗어나자,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뗏목 집인 냐베(Nhà bè)가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으로는 둥둥 떠 있는 페트병들과 거대한 나무 지지대에 걸려 있는 커다란 그물들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베트남 중남부 지역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어업 시설이었다. 베트남어로 '로 쪼(Rớ chồ)' 또는 '로 지안(Rớ giàn)'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거대한 들망(Giant Lift Net)을 이용한다. 그물을 바다 깊숙이 가라앉혀 두었다가, 타이밍에 맞춰 빠르게 수면 위로 들어 올려 그물 안의 물고기를 가두어 잡는 형태다.


우리가 탄 배가 조업을 끝내고 정비나 건조를 위해 공중에 팽팽하게 들어 올려진 그물 옆을 지나갔다. 이 거대한 그물이 물속에서 찌그러지지 않고 사각형의 형태와 일정한 깊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부표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바다 위의 페트병들이었다. 어부들은 이 작은 수상 가옥에 머물며 밤낮으로 조업을 이어갔다고 한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전통적인 어업 방식 속에서, 둥둥 떠 있는 페트병들이 뜻밖의 훌륭한 재활용 부표가 되어준 셈이다.

 

원숭이 섬 선착장의 환영 조형물들
원숭이 섬 선착장의 환영 조형물들원숭이 섬 선착장의 환영 조형물들
원숭이 섬 선착장의 환영 조형물들


섬에 도착하니 누가 봐도 원숭이 섬이었다. 'MONKEY ISLAND'라고 적힌 거대한 글자 조형물과 환영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우리를 맞이했다.

 

다양한 원숭이 캐릭터들
관람시 유의사항에 그려진 원숭이 그림
관람시 유의사항에 그려진 원숭이 그림

 

정작 진짜 원숭이는 보이지 않았고, 사방에는 원숭이 캐릭터들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려져 있었다. 특히 관람 시 유의해야 할 행동 수칙에 그려진 원숭이 그림은 묘하게 기괴해서, 더 이상 진짜 원숭이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영화 혹성탈출에 나왔던 공포스러운 원숭이들의 모습이 언뜻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싱가포르를 여행하며 원숭이들의 난폭함을 이미 경험했던 터라, 큰딸의 애칭이 '연숭이'임에도 불구하고 섬에 들어선 마음은 설렘보다 경계심이 더 컸다.

 

원숭이 섬 지도
원숭이 섬 지도(왼쪽의 잘려진 부분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열대우림의 숲으로 대부분의 원숭이가 살고 있다)
원숭이 섬 초입
원숭이 섬 초입


섬에서 관광객이 다닐 수 있는 길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했고, 보행로 역시 단조로웠다. 음식을 먹으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지나자 드디어 진짜 원숭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기하게도 원숭이들은 식당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교육받은 결과인 듯했다.

 

원숭이에게 빨간 원피스를 입히고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
원숭이에게 빨간 원피스를 입히고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


원숭이가 전혀 보이지 않던 식당 근처를 지나갈 때였다. 베트남 전통 모자(논라)를 쓴 한 여성이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의 손을 잡고 무언가 말을 건네며 호객 행위를 하는 듯 보였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무심히 지나치려는데, 뒤따라오던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고개를 돌려 다시 바라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여인의 손을 잡고 서 있던 빨간 치마의 아이는 다름 아닌 원숭이였다.


사람처럼 옷을 입혀 호객 행위에 동원하는 모습은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 아직도 이런 비윤리적인 동물 착취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지만, 그 낯선 풍경을 외면할 수 없어 멀찍이 떨어져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원숭이들이 나타나는 지점에는 어김없이 먹이를 파는 점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먹이를 사 들고 원숭이와의 교감을 준비했지만, 나는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원숭이가 얼마나 영악하고 사나운 존재인지 이미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싱가포르 맥리치 저수지를 여행할 때, 내 손에 들려 있던 땅콩 봉지를 순식간에 낚아채 가던 원숭이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양한 원숭이 모습


조금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찬찬히 뜯어본 원숭이들의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었다. 유독 어린 새끼를 품에 안고 젖이 불어 있는 암컷 원숭이들이 많이 보였다. 먹이를 얻기 위해 사람 곁으로 다가오면서도, 품 안의 새끼를 지키려는 팽팽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그 주변에는 여차하면 모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격 태세를 갖추고 주위를 매섭게 살피는 수컷 원숭이도 서성이고 있었다.

 

나무위에서 주변을 경계하며 바나나를 먹는 원숭이


그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엄격한 서열 구조도 흥미로웠다. 원숭이들은 사람뿐 아니라 서열이 높은 원숭이의 눈치도 끊임없이 보아야 했다. 대장 원숭이에게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입안 가득 음식을 쑤셔 넣은 채 나무 위로 도망치거나, 먹던 것을 내팽개치고 달아나는 녀석들이 허다했다. 반면 서열이 높은 우두머리 원숭이는 결코 뛰어다니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걸어올 뿐인데도, 주변에 있던 원숭이들이 썰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풍경은 묘한 긴장감마저 주었다.


이 작은 섬에 1,200마리가 넘는 원숭이들이 거대한 왕국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단 몇 시간 동안 마주한 모습만으로 그들의 생태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낯선 섬에 정착해서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원숭이 서커스 안내판
원숭이 서커스 안내판


여전히 원숭이 쇼가 열린다는 빛바랜 안내판을 따라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까 보았던 빨간 치마를 입은 원숭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기에, 더 이상 마음이 무거워질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지 않았다. 대신 섬의 자연 풍경을 눈에 담으며 울타리 밖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원숭이들을 조금 더 관찰하기로 했다.

 

다이빙과 수영을 즐기는 원숭이
다이빙과 수영을 즐기는 원숭이
촬영을 위해 조성한 세트장(이런 집들이 여러 채 있음)
촬영을 위해 조성한 세트장(이런 집들이 여러 채 있음)


홍보물에는 원숭이 수영대회도 열린다고 적혀 있었는데, 마침 물을 가둬 둔 어느 작은 웅덩이에서 어린 원숭이들이 연신 다이빙을 하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찌나 몸이 날렵한지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고 하면 벌써 물속으로 퐁당 들어가 버렸고, 단단히 준비를 마치고 렌즈를 겨누면 도통 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녀석들이 영악하게 나를 조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결국 셔터를 누르겠다는 욕심을 비우고 그들의 천진난만한 놀이를 가만히 구경하다가, 간신히 물살을 가르는 원숭이 한 컷을 카메라에 건져 올릴 수 있었다.

 

낮에는 여전히 후끈한 열기가 남아 있는 9월의 냐짱. 몇몇 러시아 관광객들은 이 더위를 식히려는 듯 섬 한쪽 바다에 거침없이 몸을 담그고 있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시원한 망고 스무디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다시 우리를 육지로 태워다 줄 배를 기다리는 동안, 낯선 이 섬이 남긴 착잡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명백한 동물 학대의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걸까. 아니면 그저 거대한 원숭이 사파리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여행자의 얄팍한 호기심과 욕심이었을까. 아름다운 풍경 뒤로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남는 원숭이 섬의 바다 위로, 우리가 탄 배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베트남 해양학 연구소 (Viện Hải dương học) - 산하 국립 해양박물관( Bảo tàng Hải dương học)

 

그랩을 불러 이곳으로 오는 내내 딸들의 불만 섞인 소리가 이어졌다. 나의 갑작스러운 호기심 때문에 즉흥적으로 행선지를 바꿨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줬으면 동선에 맞게 효율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을 텐데 왜 그랬냐며 투덜거리는 딸들의 눈치가 살짝 보였지만, 슬그머니 모른 척하며 박물관 입구로 들어섰다. 다행히 생각보다 매표소 앞이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국립해양박물관 입구
국립해양박물관 입구

 

볼거리가 얼마나 많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까 싶어 기대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입장료도 1인당 40,000동(VND), 우리 돈으로 약 2,000원 남짓이라 무척 저렴했다.


그러나 기대감을 안고 들어선 내부의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더위를 식혀줄 에어컨은 어디에도 없었다. 낡고 해묵은 시설 사이로 전시된 표본들은 묘하게 기괴한 분위기를 풍겼고, 출구가 명확히 보이지 않아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복잡한 이동 동선까지 우리를 지치게 했다. 9월의 후끈한 열기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딸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국립해양박물관 앞마당에 설치된 상징물 쏠배감펭(Lionfish)
국립해양박물관 앞마당에 설치된 상징물 쏠배감펭(Lionfish)
국립해양박물관 앞마당에 설치된 상징물 쏠배감펭(Lionfish)
국립해양박물관 앞마당에 설치된 상징물 쏠배감펭(Lionfish)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베트남 국기 앞에 세워진 강렬한 주황빛의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박물관의 상징이기도 한 쏠배감펭(Lionfish)이었다. '바다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화려한 지느러미와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아름다운 가시 속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물고기이기도 하다. 당당하게 펼쳐진 지느러미를 보고 있자니, 마치 '이곳은 너희가 생각하는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다'라며 무언의 경고를 보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대 혹등고래(Humpback Whale)의 실제 골격 화석
국립해양박물관의 거대 혹등고래(Humpback Whale)의 실제 골격 화석
거대 혹등고래(Humpback Whale)의 실제 골격 화석
국립해양박물관의 거대 혹등고래(Humpback Whale)의 실제 골격 화석


이 묘한 긴장감을 안고 안으로 발을 들이면, 이번에는 압도적인 크기의 전시물이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바로 거대 혹등고래(Humpback Whale)의 실제 골격 화석이다. 길이만 18미터에 무게가 무려 10톤에 달하는 이 거대한 뼈는 과거 냐짱 인근의 어느 해안가 땅속에서 묻힌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본래 베트남 어부들은 고래를 바다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신성한 수호신 같은 존재로 여겼다. 고래가 죽어 해안가로 밀려오면 정중히 장례를 치르고 뼈를 사당에 모셨을 정도다. 고래를 '까옹(Cá Ông, 할아버지)'이라 부르며 신성시하는 베트남 특유의 경외 문화가 이 거대한 골격에 깃들어 있었다. 나 역시 그 압도적인 규모와 화석이 뿜어내는 기묘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국립해양박물관의 바다악어(Saltwater Crocodile)
국립해양박물관의 바다악어(Saltwater Crocodile)
국립해양박물관의 바다악어(Saltwater Crocodile)
국립해양박물관의 바다악어(Saltwater Crocodile)


혹등고래를 보며 느꼈던 벅찬 감정은 열악한 시설에 갇힌 바다 생물들을 마주하는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그곳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파충류라는 바다악어(Saltwater Crocodile)가 낡은 수조 속에 갇혀 그저 갑갑하게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안내판에는 녀석들이 과거 맹그로브 숲과 강 하구에 서식했으나, 현재 베트남 야생에서는 완전히 멸종했다는 서글픈 사실이 적혀 있었다. 순간 마음이 씁쓸해졌다. 박물관이 잡아둔 덕에 지금도 살아있는 바다악어를 볼 수 있다고 다행스러워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살아있는 동물을 이토록 좁은 곳에 가두는 잔인한 행위를 비판해야 하는 걸까.

 

강아지를 닮아 도그페이스 퍼퍼(Dog-faced Puffer)라고 부르는 복어


비단 악어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 얕은 수조를 무력하게 헤엄치는 상어들과 비좁은 어항에 갇힌 물고기들까지. 해양 생물 고유의 아름다움에 눈길이 가다가도, 저 좁은 틈에서 얼마나 갑갑할까 하는 안쓰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원숭이 섬에서 느꼈던 복잡한 심경이 이곳 해양박물관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었다.

 

황사(파라셀)·장사(스프래틀리) 군도 해양 자원 전시관 입구


이어서 황사(파라셀)·장사(스프래틀리) 군도 해양 자원 전시관이라 적힌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터널 내부를 둘러보며 베트남 사람들이 왜 이곳을 이토록 중요하게 여기고 열광하는지 비로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터널은 1920년대 프랑스 식민 정부가 조성한 곳이라고 한다. 보통 터널이라 하면 주변에 산이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푸른 바다와 평평한 대지 위에 연구소 건물만 들어서 있어 무엇을 뚫어 터널을 만들었다는 건지 처음에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내막을 살펴보니 원래 이곳은 바다를 향해 거대하게 솟아 있던 '칸롱산(Cảnh Long)'이라는 바위산이었고, 프랑스 식민 정부가 이 산을 통째로 깎아내 평지로 만든 것이었다. 그들이 이토록 무리해가며 이곳에 해양연구소를 지은 이유는 명확했다. 바다와 수직으로 맞닿아 있는 지형 덕분에 심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수조로 곧바로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육지와 가깝지만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멀리 나가지 않고도 심해의 희귀 생물들을 쉽게 채집하고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컸다. 더불어 바위산의 일부분을 허물지 않고 남겨둔 데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이 튼튼한 암석 터널은 강력한 태풍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전쟁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값비싼 연구 장비와 수만 점의 희귀 표본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완벽한 방공호 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황사(파라셀)·장사(스프래틀리) 군도 해양 자원 전시관의 터널식 수족관
황사(파라셀)·장사(스프래틀리) 군도 해양 자원 전시관의 타원형 수족관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래상어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래상어


터널 내부에는 고래를 비롯한 거대한 물고기 뼈 몇 점이 고적한 분위기 속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 어두운 동선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자 커다란 타원형 수족관과 머리 위로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좁은 터널식 수족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뜩이나 시설이 낡은 탓에 '혹시라도 이 수조 유리가 깨지면 어쩌지?' 하는 불길한 상상이 스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경쾌한 꽹과리 소리와 그 앞을 빽빽하게 가로막은 사람들 때문에 도무지 움직일 수 없었다.

 

국립해양박물관 터널식 수족관에서 열린 사자춤 이벤트
국립해양박물관 터널식 수족관에서 열린 사자춤 이벤트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던 수조 안에는 뜻밖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푸른 물속에서 커다란 붉은 사자탈을 쓴 잠수부가 물방울을 일으키며 유연하게 사자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추석 무렵이었으니, 베트남의 큰 명절을 기념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운 좋게 마주한 셈이었다.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포름알데히드에 담겨있는 듀공(Dugong) 사체 (출처 : vinpearl.com)


수족관 터널을 빠져나와 닿은 표본 전시실은 마지막까지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곳에는 바다 생물을 포획해 내장을 제거하고 형태를 고정한 뒤, 부패를 막고자 포름알데히드 희석액에 담가 둔 액체 표본들이 가득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빛바랜 채 투명하고 하얗게 변해버린 피부, 초점을 잃고 굳어버린 눈동자는 마치 시체가 물에 불어버린 것 같은 기괴한 불쾌감을 주었다. 그런 공간 속에서 박물관 측은 전설 속 인어라 불리는 '듀공(Dugong)'의 사체를 두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일하고 귀한 표본이라며 자랑스럽게 소개해 놓고 있었다.

 

국립해양박물관 전시실 전경
국립해양박물관 전시실 전경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시이라(Bull Mahi)라는 최상위 포식자의 골격 표본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시이라(Bull Mahi)라는 최상위 포식자의 골격 표본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개복치 건조 표본


주변을 채운 다른 건조 표본들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살을 다 발라먹은 생선 가시처럼 변해버린 박제들과 거무튀튀하게 말라비틀어져 흡사 건어물 시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들의 최애 물고기 개복치까지.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허름한 연구소실에 갇혀 박제가 된 생물들을 마주하는 일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되지 못했다.

 

국립해양박물관 전경
국립해양박물관 전경
물고기로 재미있게 표현한 화살표
물고기로 재미있게 표현한 화살표


후끈한 더위 속에서 왔던 길을 다 되돌아가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불편한 동선을 탓하며, 우리는 드디어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의 즉흥적인 선택에 고생만 했다며 쏟아질 두 딸의 불만을 지레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걱정과 달리 딸들은 뜻밖의 이야기를 건넸다. “엄마, 생각보다 좋았어요.”


무거운 마음으로 마주했던 낡은 전시실과 기괴한 표본들이 아이들에게는 되려 신선한 경험이자 진지한 생각거리였던 모양이다. 딸들의 의외의 한마디를 듣고 나니, 나를 내내 불편하게 만들었던 이 해양박물관의 풍경들이 마음속에서 다시금 다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예쁘고 화려한 바다를 소비하는 관광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이기심과 역사의 아픈 흔적을 마주하는 일. 어쩌면 이번 즉흥적인 냐짱 북부 여정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가볍지만은 않은 묵직한 생각거리를 안겨준, 꽤 의미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우리가 여행에서 진짜 보아야 할 것

 

두 곳 모두 프랑스 식민 지배와 구소련 동맹이라는 베트남 근현대사의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100년 전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에게는 탐나는 해양 자원의 보고였고, 50년 전 소련 과학자들에게는 비밀스러운 생물학 실험실이었던 아픈 과거를 품고 있다.

 

나짱 해양학 연구소 건물동
나짱 해양학 연구소 건물


베트남 국립 해양박물관(냐짱 해양학 연구소)은 1922년 프랑스 식민 정부가 설립한 '인도차이나 어업 해양연구소'를 기원으로 삼는다. 당시 외세의 자원 수탈 기지로 출발했으나, 오늘날에는 방대한 데이터와 표본을 갖춘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해양 연구 기지로 자리 잡았다.

 

표지석 '쯔엉사 군도 주권 수호 기념비'
원숭이섬에도 남중국해의 국가 영유권 분쟁의 흔적이 있다. 이 바다와 섬은 명백히 베트남의 영토라는 의미의 표지석 '쯔엉사 군도 주권 수호 기념비'


원숭이 섬으로 불리는 혼라오 섬 또한 냉전 시대의 산물이다. 1975년 베트남 전쟁 직후 구소련의 의과학자들이 백신 개발 등의 시험을 목적으로 이 섬에 원숭이들을 들여와 비밀리에 사육하기 시작했다. 이후 연구 기지는 폐쇄되었지만, 홀로 남겨진 원숭이들이 이 외로운 섬 환경에 적응하고 자연 번식하면서 지금의 거대한 원숭이 왕국을 이루게 되었다.


이 두 곳을 모두 다녀온 나는 단순히 '재미있다' 혹은 '지루하다'라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이곳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원숭이 섬은 인간을 위해 잘 훈련된 원숭이들의 서커스를 구경하고 무작정 먹이를 쥐여주며 가까이서 만져보는 자극적인 체험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그들이 이 섬에서 이룩한 삶의 방식을 멀찍이 떨어져 존중하고 관찰하는 '날것 그대로의 생태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국립 해양박물관 역시 살아있는 해양 생물들을 좁은 수조에 가두어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동물원 역할보다는, 본연의 해양학적 가치를 탐구하는 연구 기능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을 가둔 전시는 현대적인 과학기술을 활용한 생생한 시각 자료나 미디어아트로 대체하는 편이 훨씬 인도적이고 세련된 방식일 테다. 물론 그 전에, 관람객들이 지치지 않고 이 뜻깊은 연구의 흔적들을 마주할 수 있도록 전시실 내부에 쾌적한 에어컨이라도 제발 설치해 주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도 함께 남겨본다.

 


 

냐짱의 원숭이 섬과 해양박물관은 인간의 이기심과 외세의 침략이라는 어두운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이제 이 공간들은 과거의 상처를 넘어, 지구의 유전자를 지키고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평등하게 공존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미래의 교과서'로 변모하고 있다. 동물을 잡아 죽여 포르말린 병에 가두던 과거의 박물관은, 이제 '기후 위기와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되는 지구의 심장(산호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논하는 행동주의 기지로 진화했음을 박물관 안내판에서도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진짜 보아야 할 것은 동물의 기이한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 인간들의 무거운 책임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