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타운(George Town) 외곽의 아에르 이탐(Ayer Itam) 언덕에는 말레이시아 최대 규모의 불교 사찰인 켁록시 사원(極樂寺)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말로 풀면 극락사(極樂寺)다. 불교에서 극락이란 지극한 즐거움만 가득한 세계이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살고 있는 서쪽의 깨끗한 땅인 '서방정토'를 뜻한다.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번뇌와 윤회의 고통이 없으며, 마침내 부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흔히 세상을 떠난 이에게 극락왕생(極樂往生)을 기원하는 것 역시, 이처럼 평온하고 복된 극락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변에서는 제법 높은 축에 속하는 언덕(해발고도 약 150m)에 위치하고 있다. 언덕 정상에서 페낭 시내를 인자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관음상을 만나려면 그래도 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살아서 극락에 가려면 이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입구에서 푸니쿨라 표를 파는 매표소가 눈에 들어왔다. 표를 파는 아주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중국어로 말을 건넸다. 정확히 무어라 물어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낯선 발음 사이로 "니라이~(你来~)"라는 소리가 들렸다. 관광객에게 으레 던지는 "어디서 왔냐"는 질문인 줄 알고 당당하게 "총한궈라이더(从韩国来的,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답했다. 그 순간 아주머니가 빵 터지셨다.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다시 말씀하셨다. "워스원니야오라이후이더하이스단청(我是问你要来回的还是单程, 왕복 표 끊을 건지 편도 표 끊을 건지 물어본 거야)"라고. 잠시 민망함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편하게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손에 쥔 티켓은 생각보다 무척 복잡했다. 정류장이 4개나 되어서 무려 세 번을 갈아타야만 꼭대기에 계신 관음보살을 만날 수 있는 구조였다. 게다가 갈아타는 수단도 푸니쿨라와 버기(Buggy)를 번갈아 이용해야 했다. 아주머니는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두 여행객을 위해, 티켓을 사용하는 방법을 몇 번이고 천천히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우리는 가장 꼭대기까지 먼저 올라간 뒤, 아래로 내려오면서 사찰을 하나씩 둘러보기로 했다. 이미 오전에 페낭힐(Penang Hill)을 한 바탕 다녀온 터라 배가 무척 고픈 상태였다. 이곳을 관람한 뒤에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기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며 마주한 정류장마다 불교 성물들만 가득할 뿐, 허기를 달랠 만한 간식거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관음정(觀音亭, Guan Yin Pavilion)


아예르 이탐 언덕에 조성한 이 사찰은 중국의 보타산(普陀山)을 축소해 놓은 형태라고 하지만, 관음상만큼은 그 규모를 훌쩍 능가한다. 관음보살 청동상 본체의 높이만 30.2미터에 달하고, 좌대까지 포함하면 약 37미터나 된다. 게다가 이 관음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둔 거대한 정자 모양의 전각 높이는 무려 70미터에 이른다.


막상 현장에 와서 보니 '왜 탁 트인 공간을 놔두고 갑갑하게 거대한 정자를 세워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보통 사찰에 가면 산꼭대기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공간에 전각을 짓고 그 안에 불상을 모시지, 불상 전체를 거대한 구조물로 덮어씌운 모습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다녀온 광저우의 남사천후궁(南沙天候宮)에서 만난 마조상 역시 탁 트인 야외에 당당히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처음부터 이 정자가 세워졌던 것은 아니었다. 켁록시 사원의 관음상은 원래 1977년에 처음 완성되었는데, 당시에는 플라스터(석고 재질)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지붕도 없는 야외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동남아 특유의 강한 폭우와 뜨거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며 점차 파손되어 갔고, 결정적으로 1993년 큰 화재와 집중호우를 겪으며 심각하게 훼손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결국 사찰 측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2002년 현재의 거대한 청동 관음상을 새로 제작하면서, 이를 안전하게 감싸는 거대한 정자 형태의 전각을 함께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관음상과 전각의 규모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너무 가까이 서면 불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담을 수가 없다. 전각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곳에서 마주한 관음상은 지하 법당으로 쓰이는 기단과 거대한 기둥들에 가로막혀 여전히 온전하게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들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전각 양옆에는 험상궂고 무서운 표정의 금강역사(金剛力士)가 나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위엄 있게 버티고 서 있었다. 중국의 용문석굴(龍門石窟)이나 우리나라 석굴암에서 보았던 익숙한 도상이지만, 이곳의 금강역사는 어딘지 모르게 약간 경직된 듯한 어색함이 묻어났다. 형태나 세부 묘사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를지라도, 한쪽은 입을 벌리고 다른 한쪽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특징만큼은 어디나 똑같다. 입을 벌려 우주의 시작을 뜻하는 '아(A)' 소리를 내고, 다른 쪽은 입을 다물며 끝을 뜻하는 '훔(Hum)' 소리를 내는 것. 시작과 끝을 아우르며 불법을 수호하겠다는 심오한 의미가 그 입 모양에 담겨 있다.

사찰 한편에서는 코끼리 상도 만날 수 있었다. 불교 사찰에서 코끼리를 보면 몇 가지 상징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먼저 코끼리의 색이 하얀색인지, 그리고 양쪽에 상아가 3개씩 총 6개가 돋아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이는 불교에서 육아백상(六牙白象)이라 부르는 성물이다.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여섯 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꾼 뒤 싯다르타를 잉태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하여, 부처님의 탄생과 거룩함을 상징한다. 또한 우리나라 사찰에서 자주 볼 수 있듯,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살은 행원(行願)과 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다. 따라서 사찰을 관람할 때 코끼리의 존재는 불상의 이름을 구별하는 아주 유용한 힌트가 되기도 한다.


중국식 사원이나 궁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자상도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자가 아니라 상상 속의 영물인 기린(麒麟)이었다. 기린은 사자와 용이 결합한 독특한 도상을 하고 있다. 사자의 우렁찬 포효와 용이 지닌 뿔, 온몸을 덮은 비늘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발만큼은 맹수의 날카로운 발톱이 아닌 뭉툭한 발굽 형태를 띤다. 용과 사자의 신성함과 용맹함을 품었으면서도, 걸을 때 풀 한 포기 밟지 않고 벌레 한 마리조차 죽이지 않는다는 '불살생(不殺生)'의 정신을 저 발굽으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영물 중의 영물이라 할 만하다.

그렇게 시간을 두고 사찰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펴보던 중, 우리가 방금 걸어 나왔던 건물 쪽에 길쭉한 머리 하나가 쑥 솟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거대한 머리가 붉은 현수막 뒤로 슬며시 내밀고 있는데, 그 표정이 묘하게 심상치 않았다. 지긋이 뜬 눈과 입가에 살짝 머금은 미소, 그리고 후덕한 볼살이 한데 어우러져 얼핏 기괴한 느낌마저 풍겼다. 알고 보니 이 불상은 1977년에 완공되었던 첫 번째 관음상이었다. 1993년의 재해로 전신이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다행히 머리 부분만큼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이 전각 지붕 위에 따로 안치해 둔 것이라고 한다.

훼손된 불상의 머리만 지붕 위에 올린다는 이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과연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을까. 어쩌면 독특한 예술적 취향이나 뚝심을 가진 주지 스님의 고집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모진 날씨로 인해 한 차례 부서졌던 보살상을,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덩그러니 지붕 위에 다시 세워둔 마음. 그것은 어쩌면 이 조각상의 마지막 수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 사찰과 중생들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염원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그런 깊은 뜻을 헤아리며 다시 바라본 관음상의 얼굴에서는 처음에 느꼈던 기괴함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잔잔한 감사와 경건한 기도의 마음이 차올랐다.

이 사당 안에는 준제보살(准提菩薩)이 모셔져 있다. 힌두교의 신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여 나타나듯 불교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 준제보살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대표적인 화신이다. 세 개의 눈으로 중생이 겪는 세 가지 어려움(어리석음, 죄업, 괴로움)을 꿰뚫어 보아 없애주고, 열여덟 개의 손에 쥔 다양한 지물(持物)로 인간 세상의 수만 가지 고통을 맞춤형으로 해결해 준다. 한마디로 인간들의 온갖 현실적인 고민과 고통을 남김없이 구제해 주는 '만능 보살'인 셈이다.


준제보살 앞에 서 있는 배가 통통하게 나온 동상은 영락없는 재물신(財物神)의 모습이다. 한 손에는 돈주머니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한 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린 '시무외인(施無畏印)' 수인(손모양)을 하고 있어 중생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부드러운 메시지를 건넨다. 반면 그 옆에 서 있는 동상은 중국인들이 지극히 사랑하는 금괴(원보)를 들고, 남은 한 손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넓게 펼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내 손바닥 위로 모든 재물을 다 받아내겠다!" 하는 강렬한 의지의 표명처럼 다가왔다. 저 금괴를 받는 대가로 다른 쪽 손바닥 위에 지폐를 두둑이 얹어드릴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기꺼이 그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많은 전각과 탑의 미로

리프트를 타고 세 번째 정류장에 내리면 이 사찰의 중심 법당인 대웅보전이 나타난다. 이 구역을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법당과 정원, 탑을 하나씩 돌다 보면, 굳이 두 번째 정류장까지 버기(Buggy)를 타고 이동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보로 두 번째 정류장에 닿게 된다.


불교나 힌두교, 심지어 도교 사원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의 사찰들은 한 공간에 단 하나의 신만을 모셔두지 않는다. 덕분에 전각마다 모셔진 신의 이름을 맞춰보거나, 서로 다른 도상(圖像)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는 쏠쏠한 즐거움이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불상의 섬세한 조각 양식이 자아내는 미적 정수와 종교적인 아우라를 감상하는 묘미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켁록시 사원은 거대한 규모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을 선사하는 한편으로, 광활한 사찰 구역을 억지로 채워 넣기 위해 급조한 듯한 어설프고 조잡한 조각상들로 진한 아쉬움도 남기는 공간이었다. 대웅보전의 삼존불과 우주의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상,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아미타불 입상 회랑까지 불상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다만 신실한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회랑을 따라 가볍게 산책하며 연못 속에 세워진 7층 소형 불탑을 감상하거나,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중국식 지붕들이 주변 풍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경치를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또한 정상의 관음보살상과 함께 켁록사의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꼽히는 만복보탑(萬福寶塔) 역시 훌륭한 볼거리다. 1915년에 착공해 1930년에 완공된 이 탑은 높이가 약 30미터에 달하는데, 서로 다른 세 가지 문화권의 건축 양식을 한 몸에 품고 있어 무척 독특한 형태를 보여준다. 탑의 하부(1~3층)는 중국 남방식 전각 양식을 따르고 있어 팔각형 구조 위에 정교한 처마 곡선과 붉은 단청이 돋보인다. 중부(4~5층)는 태국 스타일의 체디(Chedi) 양식을 접목해 아치형 감실(창문)이 촘촘히 뚫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상부(6~7층 및 황금 탑두)는 미얀마의 상징인 쉐다곤 파고다 양식을 그대로 가져와, 뾰족하게 솟은 황금빛 나선형 지붕으로 화려함의 정점을 찍는다.
탑 내부로 들어서면 벽면 전체가 수만 개의 황금 불상과 도자 불상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중앙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갈 때마다 수많은 부처님이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압도적인 장엄함을 선사하여, 왜 이곳을 '만불탑'이라 부르는지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다고 한다.(추가 비용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굶주린 우리는 더이상 오를 수 없었다 TT)

거기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대사전(大士殿, Avalokiteshvara Hall)이 나온다. 이곳은 앞서 본 대웅보전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커 보였는데, 홀 내부가 탁 트여 있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던 전각과 탑의 답답함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게 해 준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면, 관음보살의 각기 다른 화신들이 엄숙하게 좌정하고 있다. 벽면 상단의 천장 바로 아래쪽에는 벽화와 부조를 통해 관세음보살의 성지인 포탈라카 산(보타산)의 풍경과 그를 호위하는 수많은 나한, 그리고 천인들의 모습을 화려하게 시각화해 두었다. 사방의 벽면 역시 작은 감실(창문 모양의 공간) 안에 수많은 소형 불상들이 빽빽하게 안치되어 있어 만불(萬佛) 신앙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드러낸다. 우주 곳곳에 무수한 부처님과 보살이 존재하며 중생들을 항상 굽어살피고 계신다는 불교의 거대한 우주관이 온전히 전해지는 듯했다. 화려한 천장은 우주의 진리가 가득한 천상의 정토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고, 그 사이로 유려한 옷자락을 휘날리며 춤추듯 날아다니는 비천(飛天)의 모습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시 첫번째 정류장으로....

이젠 주린 배 때문에 주변 풍경조차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어서 밥을 먹으러 가자며 우리는 서둘러 리프트를 타고 내려왔다. 그렇게 출구를 향해 조금 걸어가다 보니, 연못이 있는 산책길가에 동글동글한 돌멩이들이 무리 지어 있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무심코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났다. 이곳은 다름 아닌 거북이 방생지였다. 수많은 거북이가 연못 곳곳에서 평화롭게 쉬고 있었는데, 불교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생'을 통해 큰 공덕을 쌓고 죄업을 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지 그야말로 '물 반 거북이 반'인 상태였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나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솔직히 귀엽다기보다는 징그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세상을 조금은 삐딱하게 바라보는 내 성격상, 아무래도 불교에 온전히 귀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사원의 연혁을 살펴보면서, 주요 기부자 중 한 명이 페낭의 유명한 '블루맨션' 원래 주인이었던 청팟제(Cheong Fatt Tze)라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찰이 들어선 이 언덕을 신성한 영적 공간인 '학산(鶴山)'이라 칭하면서, 사원의 정식 명칭도 '학산극락선사(鶴山極樂禪寺)'가 되었다고 한다.
| 연도 | 구분 | 주요 사건 | 상세내용 |
| 1885 | 시작 | 묘련 스님 페낭 도착 | 중국 푸젠성 출신의 묘련스님이 관음사 상주스님으로 부임, 사원건립의 발판 마련 |
| 1890 | 착공 | 사원 건설 공식 착공 | 에어 이탐 언덕의 명당 학산(Crane Hill) 부지 매입 및 중국 거상들의 후원 |
| 1891~1899 | 완공 | 사원 단계별 완공 | 보살전(1891), 천왕전(1895), 천왕라전(1896), 장경각(1899) 완공 |
| 1904~1905 | 완공 | 1단계 사원 단지 공식 완공 | 청나라 광서제와 서태후가 직접 쓴 현판과 7만 권의 대장경을 하사받음 |
| 1915 | 착공 | 만불탑 정초석 거행 | 태국의 국왕 라마 6세가 사원을 방문하여 '만불탑'의 정초석(머릿돌)을 놓음 |
| 1930 | 완공 | 만불탑 완공 | 15년 공사끝에 7츱 규모 탑 완공(중국, 태국, 미얀마 양식 혼합) |
| 1977 | 완공 | 거대 관음보살 완공 | 1대 석고 관음보살상 완공 |
| 1993 | 철거 | 거대 관음보살 손상 | 화재와 폭우로 관음보살상의 심각한 손상으로 철거 |
| 2002 | 완공 | 거대 청동 관음보살 완공 | 높이 30.2m의 거대한 청동 관음보살상 완공 |
| 2009 | 보완 | 관음상 보호 전각 설치 | 16개의 화강암 기둥으로 전각세움(중국 베이징 천단공원을 모티브로 함) |
| 2021 | 화재 | 중간 전각 심야 화재 | 원인모를 화재로 70%가 소실됨(본당 불상과 문화재는 무사) |
<켁록시 사찰 연표>
하지만 찬란한 역사와 달리 현재의 모습은 다소 아쉬웠다. 지난 2021년 원인을 밝히지 못한 화재가 발생해 건물 일부가 소실되는 피해를 보았다고 하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건물 외벽을 보면 보수의 손길이 완벽하게 닿지 않은 듯했다. 경내 곳곳이 낡고 부서진 채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과거 청팟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후손들이 거대한 저택을 온전히 관리하지 못해 빛이 바랬던 것처럼, 이 엄청난 규모의 사찰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비록 지금은 세월과 재해의 흔적이 묻어있지만, 앞으로 수많은 신도의 정성과 기부의 손길이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까지도 완벽하게 보수되어, 말레이시아 최대 사찰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장엄함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해 본다.

웅장한 역사와 솔직한 아쉬움, 그리고 엄청난 수의 거북이 떼에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드디어 사찰 문을 나섰다. 영혼까지 털린 듯한 허기를 채우는 것이 그 어떤 공덕을 쌓는 일보다 시급했다. 이제 사찰의 장엄한 여운은 잠시 뒤로하고, 오직 생존을 위해 미리 알아둔 근처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금강산도, 아니 극락사도 결국 식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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