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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사이트/동남아시아 인문기행

[말라카] 부킷 치나(Bukit Cina, 삼보산), 화교 그리고 강대국의 패권 경쟁까지

by 된장언니 2026. 2. 11.

부킷 치나 (Bukit Cina), 항리포 우물 (Perigi Hang Li Po), 포산텡 사원 (Poh San Teng Temple, 보산정 保山亭),  말라카 항일 투쟁 기념비 (Melaka Anti-Japanese War Memorial) 
 
부킷 치나(Bukit Cina), 말 그대로 '중국 언덕'에 다녀왔다. 그 옛날 이주해온 중국인들의 묘가 있는 언덕 전체를 부르는 명칭인데 삼보산(三寶山)이라고도 불린다.  부킷 치나(Bukit Cina)를 찾아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포산텡 사원 (Poh San Teng Temple, 보산정 保山亭), 항리포 우물 (Perigi Hang Li Po)이다.  이 두 곳을 보고 삼보산을 오르는 코스가 동선이 가장 좋다.

 

산을 지키는 사당 : 포산텡 사원 (Poh San Teng Temple, 보산정 保山亭)

 

연중무휴, 입장료 없음

 

언덕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아담하지만 분위기 있는 포산텡 사원(Poh San Teng Temple)이다. 1795년에 세워진 이 사당의 중국식 명칭은 보산정(保山亭)으로 '산을 지키는 정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산'은 뒤편에 자리한 거대한 중국인 묘지, 부킷 치나(삼보산)을의미한다. 
 
향냄새가 강하게 배어있는 사당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이 곳 제단 중앙에는 토지신 대백공이 모셔져 있지만 실제 주인은 명나라 정화(鄭和)장군이라고 한다. 그의 영혼이 삼보산 전체를 지키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머나먼 타국까지 와서 자신들을 지켜준 정화 장군을 말라카의 중국 이주민들은 신처럼 여겼다. 안쪽 깊은 곳까지 들어가니 정화 장군의 조각상이 기세를 뿜으며 서있다. 정화(鄭和)장군의 또다른 호칭은 세가지 보물이라는 뜻의 三寶(삼보)이다.  삼보산(三寶山, 부킷 치나),삼보정(三寶井, 항 리 포의 우물) 등의 이름에서 그에 대한 중국 이주민들의 흠숭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포산텡 사원 (Poh San Teng Temple, 보산정 保山亭)

 

경내에 있는 안내서에 의하면... 세월이 흘러 수많은 중국인이 돈을 벌기 위해 거친 바다를 건너 말라카로 왔지만, 많은 이들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삼보산 여기저기에 묻혔다. 그러나 이 언덕에 묻힌 중국인 중 대다수는 말라카에 연고가 없어 제사를 지내줄 가족조차 없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갑탄 '차수청(Chua Su Cheong)'이 1795년 부킷 치나 기슭에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공간으로 포산텡 사원을 세웠다. 현재 포산텡 사원의 중앙에는 토지신인 대백공(Tua Pek Kong)이, 왼쪽에는 바다의 신 마조(Mazu)가 모셔져 있으며, 오른쪽에는 이 사당을 세운 차수청의 신위가 모셔져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왼쪽부터바다의 신 마조(Mazu), 토지신 대백공(Tua Pek Kong), 차수청(Chua Su Cheong)의 신위

 

마르지 않는 전설의 샘 : 항리포 우물 (Perigi Hang Li Po)

 
연중무휴, 입장료 없음
 
포산텡 사원 바로 옆에는 그 유명한 항리포 우물(Perigi Hang Li Po)이 있다. 겉보기엔 그저 오래된 우물 같지만, 절대로 그냥 지나치면 안되는 사연이 있다. 15세기, 명나라 황제는 말라카 술탄에게 자신의 딸 항리포 공주를 시집보냈다. 그때 공주를 따라온 500명의 시녀들이 이 언덕에 살며 마셨던 물이 바로 이 우물이다. 가뭄에도 절대 마르지 않았다는 전설의 우물.
 
하지만 전쟁 때마다 적군들은 이 우물에 을 풀어 많은 말라카 사람들이 죽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네덜란드 통치때 아예 담을 쌓고 아치형 철문을 달아 독극물 투입을 막으려했다. 지금은 철망으로 보호받고 있어 우물물을 마실 수는 없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발길을 붙잡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길 빌며 던진 동전들이 적도의 태양 아래서 반짝거린다.)

이 우물물을 마신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말라카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항리포 우물은 현지 화교들은 정화장군의 이름을 따서 삼보정(三宝井)이라 부른다. 1400년도 초반 정화장군이 이 곳에  와서 군대의 식수 공급을 위해 파놓은 우물 중 하나를 나중에(1400년도 중후반) 항리포공주가 시집와서 이 우물을 사용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항리포 우물 (Perigi Hang Li Po)

 

명나라 공주가 살던 언덕이 공동묘지가 된 사연 : 부킷 치나 (Bukit Cina)

 

1459년 명나라 황제는 자신의 딸인 항리포(Hang Li Po) 공주를 말라카의 술탄(만수르 샤)에게 시집보낸다. 이때 공주를 수행하기 위해 무려 500명의 시녀와 시종들이 함께 왔는데, 술탄이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통째로 내어준 땅이 바로 이 언덕이다. 현재는 7만5천평 부지에 12,000개가 넘는 무덤이 있는, 중국 밖에서 가장 큰 중국인 묘지가 되어 초기 정착민들의 삶과 죽음을 이곳에 다 모아 놓았다. 
 
언덕을 오르면서 그 옛날 고향을 등지고 살아보려고 이곳까지 왔던 중국인들의 '고단함과 한' 같은게 느껴진다. 독특한 형태의 무덤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오메가(Ω) 모양이나 자궁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죽어서 다시 어머니의 품(대지)으로 돌아간다"는 도교적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한다. 

 

부킷 차이나 (Bukit Cina) 언덕의 중국인 묘지들

 
입구를 찾기 애매한데 SJK(C) Pay Fong 3 (培風第三小學)를 찾으면 학교 옆 주차장 쪽에 언덕을 오르는 입구가 나온다.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한바퀴 돌다 나왔다. 한번 들어가면 오래 걸어야하므로 적당히 오르다 내려오길 권한다. 오전에 일찍 가도 적도의 날씨를 무시할 수 없어서 ....^^ 시내에서 30분정도 도보로 떨어져 있으니 그랩을 이용하면 좋다. 

 

삼보산을 오르다보면 이런 나무열매가 자주 보인다. '퐁퐁 나무(Pong Pong Tree)'라고 하며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정말 주의해야한다. 
열매가 덜 익었을 때는 초록색 망고나 사과처럼 탐스럽게 생겨서 '바다 망고(Sea Mango)'라고도 불리는데 식물 전체, 특히 씨앗에 '세르베린(Cerberin)'이라는 강력한 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청산가리보다 독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험하며, 과거에는 독살이나 자살 도구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자살나무'라고도 불리나보다.) 섭취 시 구토, 복통을 일으키고 심하면 심장 마비에 이를 수 있으니 절대로 먹어선 안된다!!!!

사진처럼 초록색이었다가 익으면 붉은색이 되고, 나중에는 껍질이 벗겨지며 거친 섬유질의 갈색 씨앗만 남는다. 

 

 

 

피맺힌 충성의 기록 : 말라카 항일 투쟁 기념비 (Melaka Anti-Japanese War Memorial) 

 

'부킷 차이나(Bukit Cina)' 입구, 포산텡 사원 바로 옆에 무심코 지나치기 쉽운 곳에 기념비가 있다. 믈라카에서 일본군의 흔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일본군은 점령 직후, 중국 본토와 싸우고 있던 일본에 저항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계 남성들을 색출해 무자비하게 학살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 믈라카 시민들이 학살당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는 한자로 '충정족식(忠貞足式 - 충성과 곧은 절개는 본받기에 충분하다)'이라고 쓰여 있다. 당시 중국 국민당의 지도자였던 장제스가 직접 쓴 글씨로 알려져 있다.

 

말라카 항일 투쟁 기념비 (Melaka Anti-Japanese War Mem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