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폴 교회(St. Paul's Church),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 쿠부르 블란다(Kubur Belanda) 혹은 네덜란드인 묘지(Dutch Graveyard)
세인트 폴 교회 (St. Paul's Church) :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의 안식처
연중무휴, 입장료 없음
적도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부킷 말라카(Bukit Melaka, Bukit은 언덕이란 뜻) 언덕길을 올라, 숨이 가빠질 때쯤 마주한 세인트 폴 교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려한 랜드마크이지만, 온몸으로 풍파를 견뎌낸 노병의 뒷모습처럼 쓸쓸했다. 교회라기 보다는 큰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왔으나, 결국 돌아가지 못한 자들의 거대한 무덤이었다고나 할까...
세인트 폴 교회는 1521년 포르투갈인이 세운 말라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물이다.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말라카 시내 전경과 멀리 말라카 해협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그러나 오랜세월 방치되어 지붕은 소실되고 벽면만 남아있다. 그 벽면에는 라틴어와 네덜란드어가 새겨진 거대한 묘비들이 줄지어 기대어 있다.






세인트 폴 교회의 천장은 왜 사라졌을까?
사실 이 교회는 전쟁 때문에 한순간에 폭격으로 무너진 것은 아니다. 역사의 주인이 바뀌면서 '용도가 변경되고 방치된'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1641년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말라카를 차지했을 때, 처음에는 이 교회를 사용했다.
하지만 1753년에 언덕 아래에 더 화려하고 튼튼한 그리스도 교회(Christ Church)를 새로 지으면서, 세인트 폴 교회는 더 이상 교회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이 교회는 군사적인 용도로 쓰이게 된다. 특히 영국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교회를 화약고로 쓰기도 했고, 심지어 등대 역할을 하는 건물을 교회 바로 앞에 세우기도 했다.
지붕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한 채 화약고 등으로 쓰다 보니, 목조로 된 지붕 구조물들이 열대 지방의 뜨거운 햇볕과 습기, 폭풍우를 견디지 못하고 썩어서 내려앉게 된 것이다. '지붕 없는 교회'의 진실은 '수백 년간의 방치가 만들어낸 쓸쓸한 풍경'인 셈이다.


교회 내부에 들어서자 벽면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거대한 석조 묘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육중하고 화려한 묘비들은 대부분 네덜란드 통치 시기(1641~1795년)의 것들이다. (일부 포르투갈인의 묘비도 있지만 대부분이 네덜란드인의 묘비이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세인트 폴 교회를 자신들의 전용 교회과 묘지로 사용했고, 그래서 당시 말라카에서 힘 좀 썼던 고위 관리들이나 부유한 상인,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죽으면 이 교회 바닥이나 벽면에 묻고 커다란 석조 묘비를 세운 것이다.
나중에 영국인들이 오면서 바닥에 있던 이 묘비들을 정리해, 지금처럼 벽에 세워두게 된 거라고 한다. 영국인들에게 이 교회는 더 이상 성스러운 교회가 아니라 군사적 요새, 화약고였기 때문에 바닥을 평평하게 다져서 물건을 쌓아두기 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거추장스러운 돌판(묘비)만 옆으로 치워버린 것이다.
교회 앞 안내판에는 이 곳에 있는 묘비 주인들이 어느 집안 누구이고,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묘비의 내용이 정리되어있다. 안내판에서 눈길을 끈 것은 1살도 안되어 죽은 아이들 3명이다. 그 옛날 그 머나먼 유럽에서 부모에 안겨 거친 바다를 건너온 아이들. 긴 여행 끝에 도착하자마자 낯선 땅의 열병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을 그 어린 영혼들 묘비를 찾아 보았다.
정복과 무역이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 곳으로 보내진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본다.
포르투갈이 세운 건물 안에서,
네덜란드인들이 묻힌 흔적을,
영국인들이 벽에 세워 정리한 묘비들은
말라카의 역사적 상처의 추모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부러진 손의 인사
언덕 정상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건 흰색의 오른 손이 없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동상이었다. 동방 선교의 열정을 품고 이 땅을 5번 정도 밟았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흔적은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일본 나가사키에 갔을 때도 일본 선교에 몸 바치신 분으로 공경 받고 있었다.)
1952년, 그가 이 땅에 온 지 400주년을 기념해 세운 이 동상은 제막식 다음 날 우연한 사고로 손목이 부러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부러진 동상의 손을 고치려고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어? 로마에 계신 신부님의 실제 유해도 딱 이 부분(오른팔)이 없는데, 말라카의 동상도 똑같이 오른손이 없어졌네?" 그래서 오른 팔이 부러진채 지금까지 서 있다고 한다. ^^
- 실제 신부님의 오른팔 : 1614년, 가톨릭 교황청은 하비에르 신부님을 성인으로 추대하기 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인도 고아(Goa)에 안치된 신부님의 시신에서 오른쪽 팔꿈치 아래 부분만 따로 잘라냈다. 이 팔은 수천 명에게 세례를 주었던 '거룩한 손'이라 하여 현재 이탈리아 로마의 일 제수(Il Gesù) 성당, 유해함에 담겨 보관되어 있다.
- 동상의 오른손: 그런데 1952년 말라카 언덕에 세워진 대리석 동상이 제막식을 마친 바로 다음 날, 거센 폭풍우에 나무가 쓰러지면서 동상의 오른쪽 손목 부분을 쳐서 똑 부러뜨린 것을 그대로 보존 하고 있다.



미사를 드리던 성당 안 그 깊숙한 곳, 원래는 사제가 가장 거룩한 미사를 봉헌했을 제대 앞 바닥에 철창으로 둘러싸인 구덩이가 보인다. 이 구덩이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이 중국에서 돌아가신 뒤, 현재 시신을 모셔놓은 인도 고아로 옮겨지기 전 9개월 동안 잠시 머물렀던 '임시 무덤'이다. (유럽에서는 제대 앞이 무덤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성직자들의 ... ) 9개월이 지나도 썩지 않았다고 하는 신부님 시신 ... 그 기적이 머물던 자리.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여행자들이 던져놓은 반짝이는 동전들이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쿠부르 블란다(Kubur Belanda) 혹은 네덜란드인 묘지(Dutch Graveyard)
언덕에서 조금 내려오면 있는 네덜란드 묘지(Dutch Graveyard)라고 불리는 곳 있다. Kubur Belanda (쿠브르 블란다)라고도 불리는데 'Kubur'는 말레이어로 묘지(Grave)를, 'Belanda'는 네덜란드(Dutch)를 의미한다고 한다^^
명칭은 네덜란드인 묘지인데, 막상 가서 비석을 자세히 읽어보면 영국인들의 묘가 더 많다. (네덜란드인 묘 5기, 영국인 묘 33기) 17세기 후반에 네덜란드인들이 먼저 묘지로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 말라카를 넘겨받은 영국인들이 이 묘지를 이어받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는 교회 안처럼 석판만 있는 게 아니라, 땅 위에 세워진 비석이나 기념비 형태가 많다.
정리하자면~^^
세인트 폴 교회 안 : 주로 네덜란드 황금기 시절의 귀족과 관리들 (가장 크고 오래된 묘비들)
언덕 아래 공동묘지 : 네덜란드인이 시작했지만, 영국 군인과 가족들이 대거 묻힌 곳
크리스트 교회 : 네덜란드 시대에 지어졌으나 영국 시대의 흔적과 묘비들이 섞여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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