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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사이트/동북아시아 인문기행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 (Gorkhi-Terelj National Park) : (1) 어워, 거북 바위, 아리야발 사원, 말타기 그리고 게르

by 된장언니 2026. 7. 6.

두 번째 방문 장소는 테를지 국립공원(Gorkhi-Terelj National Park)이다.  울란바트르에서 60km, 버스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 해발 1,600미터 켄티 산맥 품에 안긴 테를지는 빙하가 빚은 U자 협곡 위로 화강암 기암괴석이 솟아 있고, 톨 강이 그 사이를 조용히 흐른다. 게르와 말, 라마 사원과 샤먼의 돌무더기가 공존하는 이곳은 단순한 국립공원이 아니라, 유목 문명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땅이다. 

아라야발 사원에서 내려다본 테를지 국립공원 전경

몽골에서,  초원을  다시 정의하다.

몽골에 오기 전, 내게 초원이란 그저 넓고 평탄한 풀밭 정도였다. 키 작은 잡초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과 양,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 그리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 아름답지만 고요한 그냥 풍경사진 같은 초원 이미지를 품고 몽골에 갔다. 

그런데 몽골의 초원은 달랐다. 살아 있었다. 시간이 정지해 있고,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 같아 보이지만 대지가 용트림하며 숨 쉬고 있었다. 초원의 바람과 그 내음은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초원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낮이든 밤이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거친 날씨든 맑은 날씨든,
초원은 언제나 자유를 말한다. 자유를 잃은 사람에게 초원은 그것을 일깨워 준다.
-
러시아 작가 바실리 그로스만,  《삶과 운명》

 

초원(풀), 바위, 바람으로 상징되는 바로 이 자유의 땅에서 칭기즈칸이 자랐다. 혹한과 굶주림, 초원의 거친 바람 속에서 그는 말을 타고, 활을 쏘고, 마침내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했다. 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단일 제국을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몽골 유목민들이 세운 것이 늘 의아했다. 이 막막해 보이는 광활함... 그들은 오히려 비워냄으로써 채우는, 초원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제패한 게 아닐까. 초원은 더 이상 빈 공간이 아닌 채워지고 있는 공간이라고 새롭게 정의 내려본다. 

첫날 숙소였던 농장에서 ... (전형적인 몽골의 초원)
첫날 숙소였던 농장의 저택(?) 그리고 광란의 밤, 캠프파이어

 

광활한 초원을 농장이라고 칭하고, 울타리를 박아 놓은 농장 한복판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날씨가 흐려 별을 보지 못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사방에 집이라고는 우리가 머문 숙소 하나뿐인 이곳에서 몽골의 전통 음식 허르헉(Khorkhog)을 먹고, 통나무를 쌓아 캠프파이어를 하며 광란의 밤을 보냈다. 여긴 분명 지구가 아닌 다른 별이인 것 같다.

몽골 전통 음식, 허르헉(Khorkhog) 
: 찜통에 양고기를 토막내서 넣고, 감자와 당근을 넣은 후 약간의 물과 뜨거운 돌을 넣고 쪄서 먹는 양고기 찜이다.  


몽골 유목민들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목축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환경은 음식을 조리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무거운 조리 도구나 복잡한 과정은 유목 생활에 적합하지 않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과 가축인 양, 그리고 불을 이용해 풍성한 만찬을 준비한다. 


허르헉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몽골인의 환대와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잔치의 음식이다. 손님이 찾아오거나 가족의 기념일, 유목 공동체의 축제가 열릴 때면 어김없이 허르헉이 준비된다. 뜨겁게 달군 돌과 양고기, 채소를 통 안에 넣고 밀봉하면, 통 내부는 천천히 피어오르는 증기로 가득 차며 음식은 고요한 열 속에서 부드럽게 익어간다. 허르헉을 만드는 동안 사람들은 불가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완성된 음식을 함께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풀어낸다. 함께 허르헉을 나누는 일은 단순한 식사 이상의 몽골식 환대의 표현인 것이다.


허르헉 조리가 끝난 후 뜨거운 돌은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몽골인들은 이 돌을 손에 쥐고 온기를 나누거나, 몸의 특정 부위에 대어 피로 해소와 혈액 순환에 도움을 받는다. 단순한 식사를 넘어 자연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유목민의 깊은 통찰이 아닐까.

숙소인 농장을 떠나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

"몽골의 초원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것이다."
- 역사학자 잭 웨더포드, 《몽골비사》

 

테를지 국립공원 가는 길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옛날 다리

 

테를지 입구의 이 나무 다리는 톨 강(Tuul River)을 건너는 오래된 목교(木橋)이다. 영화에 나오는 콰이강의 다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은 차량은 못 다니게 하고, 사람들만 걸어서 건너게 한다.) 사진에서 보이듯 통나무를 X자로 엮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판재를 깐 통나무 트러스 구조로, 붉은 난간이 인상적이다. 

 

특별히 기록된 역사가 있는 다리는 아니지만, 나름 이 다리가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경계선이기 때문인데, 이 다리를 건너는 순간 포장도로가 끊기고 비포장 초원길이 시작된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강물이 상당히 얕고 강바닥에 돌이 많이 드러나 있다. 톨 강(Tuul River)은 최근 수십 년간 수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울란바토르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기후변화로 인한 결과인데, 몽골 정부와 환경단체들이 매우 우려하고 있다. '여왕 톨'이라 불리던 강이 갈수록 가늘어지고 있으니까...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목교 (라오스에 지은 셋트라고 한다.)

 

톨 강(Tuul River)을 건너면서 점차 풍경이 바뀌었다. 높지 않은 산들이 능선을 이루며 겹겹이 펼쳐졌다. 울퉁불퉁하지 않고 부드럽게 물결치는 능선, 그 위를 초록이 덮고 그 사이사이 흰 점들(게르^^)이 박혀 있었다. 게르 군락이 언덕마다, 능선 아래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풀밭 위로 말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테를지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냥 다른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시간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테를지 국립공원 안의 전경
테를지 국립공원 안의 전경 (게르 리조트 군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어워(Ovoo), 몽골의 성소

테를지 국립공원 입구 근처, 길가에 큰 돌무더기 하나가 서 있었다. 돌을 쌓아 올린 꼭대기에 나뭇가지에 색색의 천 조각(히모리)이 감겨 나부끼고 있었다. 이것이 '산신령이 머무는 곳', 혹은 '하늘과 땅이 맞닿는 자리'라고 불리는 몽골의 성소, 어워(Ovoo)다. 우리나라 서낭당과 닮았지만, 느낌은 조금 달랐다. 더 거칠고, 더 오래된 것 같은... 

테를지 국립공원 입구에서 처음 만난 어워(Ovoo)

 

어워(Ovoo)는 몽골 토속신앙인 '텡그리(Tengerism, 하늘 숭배)' 샤머니즘의 상징이다. 산 정상에도, 길가에도, 초원 한복판에도 있다. 유목민들은 새로운 길을 떠나거나 낯선 땅에 들어설 때 반드시 어워(Ovoo) 앞에 멈추어 돌 하나를 얹고, 세 번 돌고, 소원을 빈다. 아직도 몽골인들은 이곳을 지날 때 이 예식을 반복하고 있다. 무사함을 빌고, 행운을 구한다. 라마 불교가 들어온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어워(Ovoo) 앞에서의 이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진화한 새 종교의 거대한 그늘 아래에서도, 기도로 간절함을 달래던 토착 신앙은 지워지지 않은 채 그 품에 깊숙이 스며있다. (나는 왜 이 시점에 우리 성당에서 열심히 묵주기도하시는 등 굽은 할머니가 생각났을까.)
 
우리도 돌 하나를 주워 얹었다. 무엇을 빌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얹고 싶었다. 어워(Ovoo) 앞에서 잠깐 멈추고 돌을 얹고, 세 바퀴 도는 이 짧은 시간이 이 땅의 신령에게 '테를지에 들어가는 허락'을 구하는 의미라고 한다. 초원 위의 바람에 잠시 마음이 숙연해진다. 

테를지 국립공원 입구 근처 어워(Ovoo) 옆, 기념품 가게 (멀리 언덕에 welcome이라고 돌로 써 놓은게 보인다.)
테를지 국립공원 입구 근처 어워(Ovoo) 옆, 독수리 (사진을 찍게 하고 돈을 받는다.)

거북 바위,  보물과 원혼이 잠든 곳

테를지 국립공원의 상징이라면 단연 거북 바위(Turtle Rock)이다. 수백만 년의 풍화가 빚어낸 이 화강암 덩어리는 놀랍도록 정교하게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다. 목을 뻗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자세, 등 위의 주름진 질감까지. 신이 빚은 테를지 국립공원 최고의 조각품이다.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그 웅장함에 놀랐다. 또한 거북의 형상이 너무나 또렷해서 한번 더 놀랐다. 멋지다!!!!

거북 바위(Turtle Rock)

 

고개를 꼿꼿이 들고 계곡을 굽어보는 이 바위는 그 자체로도 경이롭지만, 슬프고도 매혹적인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17세기 몽골 오이라트 부족의 갈당 칸(Galdan Khan)만주군(청나라)과의 전쟁에서 열세에 몰리자 이 거북 바위 앞에서 병력을 정비했다고 한다. 서쪽으로 퇴각하면서 가지고 있던 금은보화를 거북 바위 협곡에 숨겼다. 하지만 그의 만주족 왕비가 보물을 놓고 갈 수 없다며 끝까지 고집을 부렸고, 분노한 갈당 칸은 결국 그 자리에서 왕비를 베어버렸다고 한다. 이후 보물을 찾으러 온 자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손을 뻗을 때마다 왕비의 원혼이 조소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며 보물과 함께 바위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기억해 내고, 거북 바위를 다시 보니 느낌이 달랐다. 고요하게 목을 뻗은 그 자세가 정말 보물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거북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장수와 수호'의 상징이었다. 보물을 지키는 수호자! 그리고 원혼을 품은 바위...  그런데 왜 그 후로도 왕비의 원혼을 달래지 못했는지 문뜩 궁금해졌다. 아무튼 지금, 현지 유목민들에게 거북 바위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수호신이다. 몽골 사람들은 거북 바위를 산신령의 화신으로까지 여기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부와 건강을 기원하며 정성스레 기도를 올린다. 

거북 바위(Turtle Rock) 옆에 늘어선 푸르공(Furgon)

🚙 푸르공(Furgon)이 뭐예요?

몽골 여행을 하다 보면 자주 보이는 차가 있다. 네모난 몸통에 둥그스름한 지붕, 바로 푸르공(UAZ-452)이다. 러시아어로 '밴(van)'이라는 뜻이고, 러시아 UAZ 사가 1965년부터 지금까지 생산하고 있는 4륜구동 승합차이다. 냉전 시절 구소련군 병력 수송차로 태어난 이 차가, 지금은 몽골 초원에 낭만을 실어 나르고 있다. 빵 덩어리를 닮았다고 해서 러시아에서는 '부한카(Буханка, 식빵)'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구조가 단순해서 고장 나도 운전자가 그 자리에서 직접 수리할 수 있다. 험한 지형에서도 끄떡없는 강한 내구성을 자랑하기 때문에  비포장 초원을 거침없이 달리고, 사람도 짐도 많이 실린다. 몽골을 위해 태어난 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산 중인 승합차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에어컨도 없고 승차감도 매우 안 좋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몽골만의 빈티지 감성과 인생 사진을 얻고자 하는 많은 여행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아리야발(Aryabal) 명상 사원,  108 계단이 묻는 번뇌와 위로

거북 바위에서 멀지 않은 산자락에 아리야발(Aryabal, Aryapala) 명상 사원이 있다. '아리야발(Aryapala)'은 중생의 고통을 자비로 듣고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을 뜻하는 범어(산스크리트어)식 이름이다. 그래서 이곳은 거창한 종교적 의식을 치르는 곳이라기보다는, 대자연의 품 안에서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고 번뇌를 내려놓는 '명상 사원(Meditation Temple)'으로서의 목적이 크다고 한다. 

 

1937년의 대숙청 시기에 19세기 초에 지어졌던 이 아름다운 사원 역시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곳에서 수행하던 승려들이 희생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오랫동안 터만 남아 있다가 몽골에 종교의 자유가 찾아온 이후,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지금의 웅장한 모습을 되찾았다. 아픈 역사를 딛고 다시 피어나 '새벽 사원'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 새벽 사원이란 별칭은 한국 관광객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입구에서 본당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총 144개의 팻말이 늘어서 있다.(아래 사진들 참조) 팻말에는 몽골어와 영어로 불교의 지혜, 깨달음, 인과응보(업), 자비, 인내 등에 대한 짤막한 격언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적혀 있는데,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것을 넘어 걸음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세속의 번뇌를 조금씩 덜어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거창하고 어려운 교리라기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감정들을 다스리는 법이 쓰여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꿈꾸지 마라. 마음을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라.')

아리야발(Aryabal) 사원 입구부터 본당까지 오르는 길에 늘어선 144개 부처님 말씀이 적힌 팻말들
입구부터 본당까지 오르는 길에 늘어선 144개 부처님 말씀이 적힌 팻말들

(바로 윗 사진 맨 앞의 팻말 내용) 
"You save yourself from thorns by covering the soles of your feet with shoes, and you save yourself from ignorance by guarding your mind.

(번역) "발에 신발을 신어 가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듯, 마음을 잘 다스려 어리석음(무지)으로부터 자신을 구하십시오."

* 세상의 모든 가시를 없애겠다고 땅 전체를 가죽으로 덮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내 발에 신발 한 켤레를 신으면, 어디를 걷든 가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세상을 바꾸려 하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다스리라는 것 - 이것이 이 가르침의 핵심이다.

본당으로 가는 길에 만난 흔들다리

 

본당에 도착하기 전,흔들 다리가 있다. 길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많이 흔들려서 깜짝 놀랐다.^^ 이 다리는 속세에서 고요한 깨달음의 공간으로 넘어가는 경계를 상징한다고 한다.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고요한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숙연해졌다. 그 옛날, 무언 수행을 하며 이 길을 걸어 올라갔을 승려들과 신도들을 상상해 보았다. '깨우침을 얻는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수행과 비움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리라... 

코끼리의 형상을 하고 있는 아리야발(Aryabal) 사원 (출처 : https://www.tripadvisor.co.kr)

 

이 라마 불교 사원은 코끼리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며, 코끼리의 긴 코는 108 계단이고, 코끼리의 머리는 사원 본당이다. 108개의 가파른 돌계단, 불교에서 이 숫자는 인간이 지닌 욕망과 번뇌를 의미한다. 108가지 욕망과 집착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야 비로소 사원에 닿을 수 있으며, 이 계단을 오르는 것 자체가 야생의 마음을 한 걸음씩 길들이는 수행인 것이다. 번뇌 하나하나를 밟고 올라, 마침내 지혜의 머리에 닿는 것.

아리야발(Aryabal) 사원의 108계단 측면

불교에서 코끼리는 단순한 동물이 아닌 '마음(心)'을 상징한다. 
불교 수행론에서 '훈련되지 않은 마음'은 회색 코끼리에 비유된다. 언제 폭주할지 모르고, 닥치는 대로 부수는 야생 코끼리. 분노, 욕망, 무지에 끌려다니는 우리의 일상적인 마음 상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반면 수행을 통해 '잘 다스려진 마음'은 흰 코끼리이다. 강하고 묵직하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고, 어떤 장애물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지닌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불교에서 코끼리는 지혜·인내·영적 지구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탄생 설화에도 코끼리가 등장한다. 마야 왕비가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뒤 싯다르타를 낳았다는 설화가 있다.

 

아리야발(Aryabal) 사원으로 오르는 108계단의 마지막 부분
아리야발(Aryabal) 사원에서 내려다본 테를지 국립공원 전경, 멀리 거북바위도 보인다.

 

천천히 올랐다. 만만치 않은 경사에 점차 숨이 가빠졌다. 그러나108 계단을 다 오르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테를지 국립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초원과 바위들이 바다의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고, 멀리 미니어처 같은 거북바위가 보였다. 또한 초원 위를 수놓은 하얀 바둑돌 같은 게르들이 이곳이 몽골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우와 ~~~!!!!  가슴이 두근거리고, 몹시 설레었다. 이 매력적인 경치를 보고 가슴이 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아리야발(Aryabal) 사원, 본당 입구
아리야발(Aryabal) 사원의 본당 내부, 간절한 마음을 담아 108배를 하는 가족들

 

이 사원 내부에는 가장 크게 천수관음이 모셔져 있고, 녹색 법의 차림을 한 겔룩파의 창시자 쫑카파가 바로 앞에 모셔져 있다. 또한 화려한 5색 천들로 장식해 놓은 법당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서양 종교 건축이 높이와 엄숙함으로 신성을 표현한다면, 티베트·몽골 불교는 색과 빛으로 불국토(佛國土)를 지금 이 자리에 구현하고자 한다. 화려한 천들은 "여기가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표식이고, 불보살의 세계가 현실에 내려온 것을 시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아마도 혹독한 기후에서 살아온 유목민들에게 이런 색채의 풍요로움은 그 자체로 위로가 아니었을까? 긴 겨울의 회색빛 초원과 설산 속에서, 사원 안의 붉고 금빛 찬란한 공간은 다른 신성의 세계로 들어서는 경계였으리라. 마침 한 가족이 108배 절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 뒤에서 조심스레 합장하고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아리야발(Aryabal) 사원 측면 (사원 옆면에 마니차(Mani wheel)가 줄지어 있다.)
아리야발(Aryabal) 사원을 양옆과 뒷부분을 가득 채운 마니차(Mani wheel)

 

사원 본당의 양옆면과 뒷면에는 불교 경전과 주문(呪文)이 담긴 마니차(Mani wheel)가 줄지어 있었다. 돌리면 한 바퀴에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한다. 하나씩 돌릴 때마다 손바닥에 차갑고 묵직하게 닿는 금속의 감촉이 좋았다. 마니차를 돌릴 때는 규칙이 있다. 반드시 시계 방향(오른쪽으로) 돌려야 한다. 태양이 도는 방향, 우주의 순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돌리자!

 

역사적으로 티베트인이나 몽골인은 거의 대부분 문자를 몰랐다. 방대한 불경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도 수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승려들이 고안한 방편이 마니차(Mani wheel)이다. "경전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읽은 것과 같은 효과"라고 가르치며 마음을 한껏 모아 마니차를 돌리라고 한다.  지혜를 독점하지 않고 모두에게 열어두려는 불교의 평등 정신이 아닐까.

 

아리야발(Aryabal) 사원 오르는 길의 부처님상, 토속 샤머니즘인 어워(Ovoo)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아리야발(Aryabal) 사원 입구 매표소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흔하게 보이는 말들

유목민 기분으로, 말타기

몽골에서 말은 교통수단이 아니라 몽골인의 영혼 그 자체이다. 몽골인은 자신의 영혼을 '히이모리(바람 말)'라 불렀고, 죽은 전사의 말을 함께 묻는 관습이 있었다.(칭기스칸 장례식에는 말 40마리가 함께 희생되었다 한다.) 몽골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려면,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말을 타고 초원을 달려보길 추천한다. 넓은 초원에서 말을 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니까. 

 

승마체험장에서 배정받은 말은 진한 갈색 몸에 검은 등줄기와 꼬리를 가진, 그러나 조금 마르고 작은 말이었다. (올라타고 움직이려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을 태운 말 2마리를 다른 말을 탄 몽골인이 고삐를 잡고 끌고 간다. 안내를 맡은 몽골인은 30대로 보이는 여성과 어린 소년들이었다. 말 다루는 솜씨가 아주 능숙했다. 오호~~~!!!  역시 몽골인이군!!!  말들은 아주 온순했다. 아니 힘이 없는 건지, 내가 무거운건지 ... 또는 많은 걸 내려놓고 다 포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몸이 경직되고 힘이 빡~ 들어가 있었는데... 점차 나도 여유가 생겨 주변 경관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리고 곧 말의 발걸음이 리듬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말의 숨결, 근육의 움직임, 발걸음의 박자. 몸이 그것에 맞춰지기 시작하자 비로소 초원이, 언덕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언덕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상쾌했다. 빠르게 달리면 정말 신나겠구나 싶었다. (물론 나의 말은 끝까지 리듬을 타며 천천히 걷기만 했다.) 바람이 귀를 스치고, 풀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수천 년 동안 유목민들은 이 초원을 말을 타고 달렸을 텐데... 오늘 우리를 안내하는 이 몽골인들은 어떤 마음일까...  큰 언덕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짧은 체험이 아쉬웠다. 오래오래 톨강을 따라 말을 타고 내려가고 싶었는데... 말에서 내리자 허벅지 안쪽과 무릎이 얼얼했다. 살아보겠다고 온 다리에 힘을 주었나 보다 ㅎㅎㅎ 하지만 그 통증이 싫지는 않았다. 잠시지만 나도 이 초원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으니까.

테를지 국립공원에서의 말타기
테를지 국립공원에서의 말타기
테를지 국립공원에서의 말타기

"그들의 조상은 천 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살았다. 계절의 변화를 기분처럼 느끼며, 그 변화와 함께 움직였다. 
바람은 그들의 숨결이고, 대지는 그들의 침대이며, 초원의 먼지는 그들의 피 속을 흐른다."
- 여행작가 이언 D. 로빈슨, 《간차라》

테를지 국립공원에서의 말타기
테를지 국립공원에서의 말타기
테를지 국립공원에서의 말타기

수호의 흰 말, 모린 호르(마두금, 馬頭琴)의 탄생 전설

몽골에서 가장 유명한 말 전설이다. 가난한 목동 소년 수호는 초원에서 쓰러진 흰 망아지를 발견해 키운다. 그 말은 수호와 형제처럼 자랐고, 나담 경주에서 왕의 말들을 모두 이겼다. 욕심 많은 왕은 말을 빼앗으려 했지만 수호가 거절하자 병사들이 강제로 빼앗아 간다. 말은 도망쳐 수호에게 돌아왔지만, 화살에 맞아 수호의 품에서 죽는다. 그날 밤 꿈에 흰 말이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지 마세요. 내 뼈로 목을, 내 가죽으로 울림통을, 내 꼬리털로 현을 만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 있어요."

수호가 그 악기를 켜자, 소리는 초원을 가로지르는 바람처럼, 말발굽 소리처럼 울렸다. 이 악기가  '모린 호르(마두금, 馬頭琴)'이다. 오늘날도 몽골 사람들은 마두금 소리를 들으면 수호의 흰 말을 떠올린다고 한다.

 

게르, 3,000년이 켜켜이 쌓인 집

우리가 머물렀던 Terelj Lodge 리조트의 게르

 

우리는 테레지 국립공원 안의 'Terelj Lodge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모양만 게르지 화장실이나 식당은 4성급 호텔 수준이었다. 아쉬웠던 건 날씨였다. 게르에서 자면서 쏟아지는 별들을 보고 싶었는데 구름 끼고 비도 살짝 왔다. 

 

Terelj Lodge 리조트, 게르(일종의 호텔방) (출처 : https://www.tereljlodge.com)
Terelj Lodge 리조트, 야경 (출처 : https://www.tereljlodge.com)
Terelj Lodge 리조트 전경 (출처 : https://www.tereljlodge.com)

 

게르의 역사는 약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과 거의 같은 형태로 완성된 것은 약 500년 전이지만, 이 구조는 수천 년의 지혜가 모여진 결과다. 둥근 외형은 중앙아시아의 강한 바람을 흘려보내기 위한 공기역학적 설계다. 또한 가축 털로 짠 펠트(Felt)는 영하 40도의 혹한도 버텨내고, 여름에는 통풍이 된다. 


내부에는 방향과 위치에 따른 규칙이 있다. 문은 대부분 남쪽을 향한다. 북쪽 중앙, 즉 문을 등지고 정면이 되는 자리가 가장 귀한 공간으로, 손님이나 가장(家長)이 앉는 곳이다. 동쪽은 여성의 공간, 서쪽은 남성의 공간으로 나뉜다. 그리고 중앙에 놓인 난로, 이것이 게르의 심장이다. (우리가 머문 게르는 중앙 통제식의 온돌 시스템이라 난로가 없었다.) 단순히 밥을 짓고 몸을 녹이는 도구가 아니라, 가족의 생명과 연속성을 상징하는 존재다. 남의 게르를 방문했을 때 난로를 넘어서는 안 되고, 두 기둥에 기대거나 만져서도 안 된다. 기둥은 하늘과 이 집을 잇는 통로이자, 음양(陰陽)의 부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게르(Ger)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벽 (하나) : 격자 모양으로 짜인 나무 패널(하나, Khana)을 옆으로 펼쳐서 원형으로 연결한다. 접었다 펼쳤다 하는 병풍 구조라서 혼자서도 다룰 수 있고, 보통 4~8개 패널을 이어 붙여 벽 둘레를 완성한다. 격자벽(하나) 개수가 실제로 신분의 척도였다. 일반 유목민은 4~5개, 귀족은 6~8개, 10개 이상은 대귀족 혹은 칸에게 허용된 크기이다. 

2. 지붕 골조 (토노 + 우니) : 중앙에 둥근 원형 틀(토노, Toono)을 세우고, 거기서 벽 상단까지 서까래처럼 기다란 막대(우니, Uni)를 방사형으로 꽂는다. 토노가 먼저 공중에 고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긴 막대 두 개로 임시 지지한 뒤 우니를 하나씩 꽂아나가는 방식이다. 못을 쓰지 않고 끼워 맞추는 구조다.

3. 외피 (펠트 + 천막) : 골조가 완성되면 가축 털로 만든 펠트(Felt)를 바깥에 덮고 끈으로 묶는다. 여름용은 얇게, 겨울용은 두껍게 여러 겹 덮는다.

이 구조의 설치/철거가 빠른 이유는 못·접착제·특수 공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연결이 끼워 맞추기나 끈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숙련된 가족 2~3명이면 설치에 1~2시간, 철거에 30분~1시간이면 된다고 한다. 말이나 낙타 몇 마리에 전부 실을 수 있을 만큼 부피도 작아진다. 유목민에겐 딱이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 테를지에서의 밤, 게르 문을 열고 나갔지만 하늘은 두꺼운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곳까지 와서 별을 못 본다니... 솔직히 꽤 많이 아쉬웠다. 몽골 테를지는 빛 공해 없는 해발 1,600미터 초원이다. 날씨만 맞으면 은하수가 머리 위를 가로지르고, 별이 너무 많아 오히려 별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카시오페아도 북두칠성도 다른 별 무더기에 묻혀버릴 만큼. 그 하늘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참으로 아쉽다.

 

그래도 구름 덮인 하늘을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이었지만, 그 너머에 별들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구름이 가렸을 뿐 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깐.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닌 거지. 아마도 또 다른 밤이 되면 저 하늘 아래로 별들이 쏟아지겠지...  

 

하루 동안 테레지 국립공원을 다녀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저 게르 안에 3,000년의 지혜가 있고, 저 바위에 전설이 잠들어 있고, 저 산에 야생화가 가득하다는 것을...  초원은 비어있지 않았다. 몽골은 넓고, 나는 찰나의 시간, 초원의 작은 공간에서 숨 쉬다 왔지만, 그때 보고 느낀 것들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물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이 초원에 서고 싶다.

 

 

 

(2편에서 테를지 국립공원, 열트산 트레킹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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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테를지 국립공원 (Gorkhi-Terelj National Park) : (2) 열트산 트레킹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에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대표적 트레킹 코스로는 열트산 (Yolt Uul / Ёлт уул)과 야마트산 (Yamaat Uul / Ямаат уул)이 있다. 현지인에 의하면 몽골인들은 잘 모르고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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